모던 하트 -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모던하트" 

모던한 심장은 어떤 심장일까? 모던 하트는 헤드헌터인 '미연'의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헤드헌터인 우리 입장에서는 '안 될 가능성이 99퍼센트이니 괜히 업계에 이직쟁이라고 소문만 나지 말고 지원하지 마시라'고 말해줄 수 없었다. 헤드헌터는 가능성이 0.000000001퍼센트만 있어도 열심히 후보자를 들이밀어야 한다. 이 바닥에서는 예상을 깨고 의외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굴 탓하겠는가. 이직이 잦은 우리들의 시대, 그것이 시대를 대표하는 그의 숙명인 것을. 

 

 

이 책은 정말 현실적이다. 헤드헌터 직업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묘사가 되어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적나라해서 씁쓸할 정도이다.

출신 대학은 입사때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직 할 때도 본다는 걸 알게 되었다.

환상이라는 건 밖에 있기 때문에 가질 수 있고, 현실에 환상따윈 힘들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갑자기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 섬광처럼 펼쳐지면서 마음에 온수가 차올랐다. 예전에 다녔던 가게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상한 안도감을 주었다. 그 시절에 나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라고 해야 할까. 

"네, 김미연입니다." 이름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주어 또렷하게 말했다. 순간, 공기 중을 부유하는 듯한 환상은 사라지고 내 앞에는 살아 있는 한 영원히 끝나지 않을 나의 업보-수많은 염원과 의무와 희노애락으로 채워가야 할 '현실'-가 웅장하게 펼쳐젔다

 

이 책은 우리나라 삼십대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누구는 결혼을 하고, 누구는 직장을 갖고, 누구는 이직을 하고...

그러나 누구는 결혼을 하지 않거나 못하고, 직장을 아직 못 잡고... 이직에 실패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눈 내리는 3월의 밤. 저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왕복 다섯 시간이 걸리는 도시로 올라와 싸락눈을 맞으며 열정적으로 몸을 놀리고 있다. 그것에서 기쁨을 느끼고 있다. 그 감정에 순수하게 빠져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갑자기 저릿한 쾌감이 몰려왔다. 흐물과 나는 지금 싸락눈처럼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날리는 우리네 인간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명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김미연'이라는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를 보면서 정말 씁쓸했다.

'흐물'을 어장관리하면서.. 자신은 '태환'에게 어장관리 당하는 그녀...

40이 다 된 나이에 차장이라는 직위를 뒤에 달았지만,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아이들에 치여 걱정하는 그녀...

여전히 결혼과 가정에 환상을 가지고 있을 뿐 노처녀인 그녀...


모르겠다. 그 장면들이 실제였는지, 혼은 만취한 밤이면 벌 떼처럼 달려드는 집요한 꿈들 중 하나였는지.

전철에 타서도 여자의 말이 계속 뇌리에 맴돌았다. 결혼해도 애도 잘 안 생길걸. 결혼해도 애도 잘 안 생길걸. 결혼이나 아이를 특별히 갈망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얘기를 들으면 덜컥 겁이 난다. 뭔가 엄청난 것을 놓친 것 같은, 대오에서 뒤쳐져 앞사람들을 영영 따라잡지 못하게 된 것 같은 느낌. 

 

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권의 소설 안에서 화자는 많은 일을 겪는다.

자신보다 잘난 동생의 가정생활을 보면서 제부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직장에서 정말 좋은 성과를 냈다가 최악의 결과가 오기도 하고,

자신이 좋다고 직접 고백은 안 했으나, 자신과 만나기 위해 적금도 깨고 빛까지 진 남자가 딴 여자와 결혼하고,

자신이 좋다고 만나던 남자에게 이용 당했다가 자고 나니 환상이 깨지고....


지나고 보면 이 봄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다시 봄이 올 것이다. 이 봄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새로 오는 봄 또한 오직 하나뿐인 향기로 눈부신 아름다움을 연출해 내리라. 물론 내게도,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아름다운 봄이 다시 올 것이다. 살아있기만 한다면, 그러므로 나는 돌아보지 말고 걸어가자. "세상에는 미쳐 인식하기도 전에 지나가버리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렇게 되뇌어 보았다. 그러자 굉장히 세련된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이렇게 끝난다. 그녀는 흐물을 사랑한 걸까? 알 수 없다.

이 책의 제목은 모던 하트이다.

모던한 심장은 어떤 심장일까?

화자가 마지막에 말한 세련된 인간...?

나는 씁쓸하고 외로운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그녀는 아직도 혼자다. 사회에서 혼자고, 가정에서 혼자고.... 집에서 혼자고.

 

나는 이 책의 결말이 열린 결말인 건 맞지만, 새드거나 해피라고 단정지을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이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의 끝이고 시작이 아닐까...

 

나도 그녀에게 봄이 오길 기대해 본다.

그녀와 같은 한 명의 직장인 여성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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