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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비정근"
보스 원숭이의 말에 주위의 새끼 원숭이들이 끄덕이기 시작했다.
시험을 치는 동안 나는 교단의 의자에 앉기도 했다가 창가에 서 있기도 하면서 아이들을 살폈다. 정교사들 중에는 이런 때 스리슬쩍 조는 사람도 있다지만 기간제 교사인 우리들한테 그런 사치는 있을 수 없다. 정교사라면 학교가 감싸주기도 하지만 우리는 사정없이 짤릴 뿐이다. 그리고 단 한 번이라도 나쁜 소문이 돌면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일하는 건 싫지만 역시 먹고는 살아야 한다.
비정근의 첫 인상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님의 작품이라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비정한 비정규직이라는 타이틀이었다. 그리고 초반에 무감각이랄까 조금은 시니컬한 그는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사건이 터지고, 실은 추리작가가 꿈이라는 그에 대한 인상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상대가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믿지는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의미도 없이 믿는 시늉만 하는 것보다 건강에 훨씬 좋거든요. 정신 건강에요."
"저기, 얘들아. 인간이란 약한 존재야. 그리고 교사도 인간이고. 나도 약해. 너희들도 약해.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가면서 살지 않으면 아무도 행복해질 수 없어." 내 말을 듣고 있는지 어던지는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은 눈물을 그칠 줄을 몰랐다.
"사람이란 말이야. 당연히 호불호라는 게 있는 법이야. 하지만 확실한 건, 사람을 좋아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주 많지만, 싫어해서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는 거야. 그런데 굳이 싫어하는 사람을 찾아낼 필요는 없지 않겠어?"
작은 힌트 하나 하나를 찾아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모습도 참 멋있었지만,
아이를 믿어주는 교사로서의 그의 모습은 참 멋있었다.
또 비정규 교사라서 그런지, 그의 어떤 성격인지는 몰라도
한 발짝 떨어진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의 객관적이고도, 조금은 아이 편인 그의 모습은
책을 보는 내내 날 유쾌하게 했다.
"아래를 봐. 사람들이 우글우글하지? 학교 운동장에도 있고 길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 달리는 차 안에도 다 사람이 타고 있지. 너희들도 저 아래로 가면 저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야. 그런 작은 존재인 한 인간의 다리가 빠르거나 느리거나, 배에 흉터가 있거나 말거나, 세상 전체로 보자면 아주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물론 그런 사소한 일 하나로 웃고 놀리는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항상 너희들 생각만 하고 있는 건 아니야. 야노의 다리가 느리다거나 나카야마의 배에 흉터가 있다는 사실 따위 다들 금방 잊어버려. 그런데 혼자서 끙끙대며 고민하는 거,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희들은 그보다 훨씬 스케일이 큰 것을 생각하란 말이야. 어떤 일이건 도망치면 안 돼. 도망쳐서 해결되는 일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어."

"물론 나쁜 짓은 아니야. 하지만 보살피는 이상 책임도 져야 해. 자식한테 밥만 먹이고 그 자식이 어떤 식으로 클지는 내 알 바 아니라고 하는 부모님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런데 그런 부모들 많아요."
"그래서 요즘 세상이 미쳤다고 하는 거야."
어쩌면 그는 비정규직이라 불량해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런 불량한 교사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도망쳐서 해결 될 일은 없다고 말해줄 사람, 싫어하는 사람을 찾아낼 필요는 없음을 말해줄 사람,
때론 못난 나를 응원해주고, 때론 나의 못남을 꾸짖어 줄 수 있는 사람.
미쳐가는 이 세상에 이런 교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학생이라면 이런 교사에게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