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 - 행복은 삶의 최소주의에 있다
함성호 지음 / 보랏빛소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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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 책 소개에 정말 정말 보고 싶던 책 중 하나이다. '그의 들쑤심이 고맙다'라니 얼마나 멋진 추천인가. 게다가 최소주의라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이라는 그 제목도 맘에 들었다. 솔직히 세상은 얼마나 빠르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걸 잡으려고 하는지. 집을 지으려고 하면 처음엔 간단하다가 점점 원하는 게 많아진고, 결국 마지막에는 뭘 원했었는지 알 수 없게 된다는 저자의 말이 이해가 갔다. 

 
결국 아주 어릴 때부터 내 삶의 일부처럼 여기던 그림을 버리게 되었지만, 인생에서 낭비하는 시간이란 없다. 낭비든 아니든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바로 그 시간들이니까.
나무는 건축을 이루는 최고의 장식이다.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 최고급의 소재로 집을 짓는다 해도 나무가 없으면 그 집은 기계의 부품처럼 그저 하나의 구조물에 불과하다. 집에는 나무가 자라야 한다. 막대한 돈을 들여 지은 집 한 채가 나무 한 그루만 못하다. 나무는 곧 세월이고 집도 그렇다....나무 한 그루는 시간을 뛰어넘어 나에게 그 나무를 심은 이의 마음을 알려준다. 책에서 고인의 뜻과 만난다는 말도 있지만, 나무 한 그루를 보면서도 고인과 만날 수 있다. 더군다나 그 그늘에 들어갈 수 있으니 나무는 천지 사방이 트인 끝없는 도서관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참 멋있다. 건축가가 막대한 돈을 들여 지은 집 한 채가 나무 한 그루만 못 하다니... 이 어떤 나무에 대한 찬양인지! 책에서 고인을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무에서 나무를 심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저자는 독서는 실은 듣는 것이라 말했다. 바람의 소리를, 물의 소리를, 바다의 소리를 나무 그늘 아래서 듣는것이... 저자에게는 최고의 독서가 아닌지 짐작해 본다. 아니더라도 바다가 보이고 파도 소리가 들리는 언덕 위에 있는 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읽는다면...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갑자기 나를 둘러싸고 있던 울타리가 와장창 무너지며 내 생각이 무한대로 확장하고 있었다. 나는 그 경험으로 모든 예술을 본다. 인간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키지 못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대상에 대한 인식을 통해 대상을 넘어서는 것. 지은이가 누군지도 모르는 글이 내게 준 충격이었다.

이 글을 읽으며 나도 언젠가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에게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글이라니. 정말 욕심이 난다. 저자는 '장 두려운 것은 망각'이라는 할아버지의 말을 읽고 나쁘게 말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이고, 좋게 말하면 세상이 무너지고 더 큰 세상을 보게 되었다. 나도 언젠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걱정반 설렘반 목표가 생겼다.

어느 순간처럼 비가 오는 날이 있었으리라. 오늘도 그렇게 가을비는 끝없이 내리고 있었다. 잊혀지는 것은 하나도 없고, 그저 흐르고 흐를 뿐이니, 이 가을이 준비한 겨울에 성큼 다가설 것이다.

 

별 말 아닌데 가슴을 울린다.

오늘도 비가 온다. 가을비는 아니지만... 오늘도 잊혀지는 것은 없고 그저 흐르고 흐를 뿐이다. 가을이 준비한 겨울은 아니지만, 내 인생의 어딘가에 한걸음... 성큼 다가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이게 시인의 필력인가 싶었다.

 

인간은 항상 풍경이 아니라 풍경 너머를 본다. 어쩌면 사람들은 창을 통해 창 너머의 풍경을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을 보는 건지 모른다.

우리가 만든 것에 스스로 모독당하는 행위가 도시에서는 자연스럽다.
인간이 자연의 길을 막아설 때 자연은 인간에게 막대한 보복을 행한다......분명, 인간의 기술력은 점점 진보할 것이다. 그 진보가 로테크 속에서 진정한 하이테크를 발견하는 진보였으면 좋겠다.

 

지하에 뭐 볼게 있다고 지하철에 창문을 만드냐고 했던 사람들, 지하지만 창문을 만들어 달라고 했던 사람들... 저자는 이 창을 통해 풍경은 보이지 않더라도 나가 보인다고 말하는 것 같다. 창문에 비친 나. 오늘 출퇴근 길에 비친 나는 떡진 머리의 피곤 가득한 어떤 여자사람이다.

우리가 만든 것에 스스로 모독당하는 느낌이 드는 이상한 나라의 도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잘 가고 있는 길을 망가뜨리는... 그리고 그로 인해 자연의 보복을 받는 그러한 곳을 가고 있는 걸까? 저자가 말하는 로테크 속의 진정한 하이테크가 궁금해진다.


어떤 자리든 나를 소개하는 사람은 횡설수설할 수밖에 없다...시인, 건축가, 건축평론가는 공식직함이고, 그림에 미술비평도 손대고, 만화에 만화비평, 영화비평, 전시 및 공연기획자에다가 아예, 세상에 없는 직업까지 만들었다.
쏴아아아아아 하고 뿌리고 가는 비의 커튼이 내 방 창문을 가리며 지나갈 때 나는 바쁜 일손을 놓고 그 순간만큼은 멍하니, 무엇을 가리기 위한 커튼이 아닌 하나의 광경인 커튼을 감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권하고 싶다. 책을 읽지 말자고. 나에게 책을 읽는 다는 행위는 대충 두 가지 경우이다. 재미 혹은 심심해서 읽는 경우, 아니면 필요해서 읽는 경우.....'책은 마음의 양식이다.'라는 흔한 말은 틀렸다. 마음의 양식은 책 따위를 읽는 단순한 행위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책은 철저하게 하나의 수단이다. 그 속에서 보이는 길들은 모두 남의 길이지 자신의 길이 아니다.
어떤 책은 누군가에게는 운명 같은 예감을 준다. 책이 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것도 천차만별이다......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글을 읽는 것이 과연 맞을까?.....무엇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고, 생각할 줄 안다는 것은 자신만의 실을 갖는 일이다. 그 실로 단 몇 개의 구슬이라도 꿸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독서다. 

 

이 책은 위의 저자에 대한 소개가 복잡한 만큼 복잡하다. 시, 건축, 미술을 넘나드는 작가에 처음 잡았던 최소주의가 주제라기 보다는 책 소개의 들쑤심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초반에 작가가 말했던 그 집과 같이 된 느낌이랄까. 이런게 아쉽지만, 또 좋았다. 

작가의 시인으로서의 감성과 그의 많은 재능과 여러가지 복합적인 것들이 가득한 책인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않는 즐거움에 대해서는 조금 아쉬웠지만, 여러가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해준 것 같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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