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답안에 반역을 권함 - 후회 없는 인생을 위한 청춘 설계서
허우원용 지음, 김태성 옮김 / 공명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모범답안에 반역을 권함

 

처음엔 책 제목의 강렬함에 이끌렸다. 모범 답안에 반역을 권하라니.. 순종하고, 착한아이가 되라는 기성세대의 말과는 전혀 정반대의 이야기 아닌가. 둘째로는 표지가 강렬했다. 망치의 머리.. 그리고 그 아래 계단들에 서있는 인부들.. 셋째는 소개에 끌렸다. 젊은이가 실패해도 된다는 무책임한 위로가 아닌 청춘을 설계할 수 있게 해준다는... 책을 펴보니 과연이었다.
 
삶도 마찬가지다. 교과서 뒷부분에 나오는 어려운 부분처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해답 없는 문제가 궁금해진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서도 명쾌하게 설명해준 곳은 없다. 설령 그 설명이 그럴듯해도 사는 데 정답은 되지 못했다.... '젊은이는 실패해도 좋다'는 식의 기성세대들이 던지는 위로, 나는 그것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실패를 피해가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기술적 방법론일지도 모른다.-추천의 글 삶의 주체가 자신임을 잊는 순간, 인생은 쓴 맛으로 다가온다. 이기진

우리의 인생은 교과서 뒷부분의 어려운 풀 수 없는 문제와 같다. 해답은 없지만, 우리는 명쾌한 해답을 찾아 이 책을 찾아보고 저 책도 찾아본다. 위의 인용문은 추천의 글이었지만, 추천의 글 마저 나의 마음을 만졌다.


착한 문명이 뛰어넘을 수 없는 고인 물과 같다면 반면에 착하지 않은 문명은 시간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변혁의 능력을 갖고 있다. 이런 제도 속에서 아들은 아버지와 같을 필요가 없고 제자는 스승과 같을 필요가 없지만 창의성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번성하고 축적될 수 있다.
착하지 않은 것은 사물에 대한 진정한 인식이자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탐색과 시행착오의 한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사람이 한때 경박하게 미쳐보지 않는다면 소년기를 낭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말하자면 인생에 반항과 방황이 없다면 소년기가 억울할 수밖에 없다. 
내가 말하는 이른바 '착하지 않은 것'은 '사고가 결여된 채 말 잘 듣고 무조건 순종하는 태도에 반대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말을 잘 듣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일에 자신의 사고와 가치판단을 거쳤느냐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해 봐야 비로소 자기 인생의 선택에 대해 더 깊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착하다와 착하지 않다... 저자는 착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 사고해고 인식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한다. 읽으면서 와닿았던 것은 아이의 생각을 계속해서 물어 보는 부분이다. 외적으로 볼 때 아이는 빙 돌아 같은 것을 하게 되었지만, 아이는 다르다고 말한다. 솔직히 아이들의 반항에는 이유가 있다. 나도 왜 이걸 해야하는지 이해 못하고 일을 할 때와 이해하고 일을 할 때 능률이 다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천부적인 자질에 기회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 그 능력을 발전시켜 자신의 장래와 인생의 발전방향으로 삼아야 한다. 
애써 자기를 압박하고 아이에게 진지하게 공부할 것을 강박하면 아이가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인생이 화학변화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무언가로 변하는 것은 실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수많은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변화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화학적 변화 속에서 뭔가를 좋아하는 것과 그에 대한 열정은 곧바로 변화를 촉진하는 가장 중요한 촉매제가 된다. 
진지함은 반드시 보상이라는 유혹을 필요로 하지만 열정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목숨도 아끼지 않을 정도의 열정적인 빠져듦과 애써 힘들기 전에 멈추는 진지함의 대결에서 진지함이 열정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인생은 화학변화다. 열정이 그 화학변화의 촉매제이다. 우리는 뭔가 우리 자신을 바칠만한 것들을 찾는다. 인생에서, 직업에서 젊을을 바칠 무언가를.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지금껏 이해하지 못하고 커왔기 때문이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고, 내가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모르고, 내가 무슨 일을 해야 좋을지 모르고.. 그저 애써 자기를 압박하고 진지하게 공부할 것만을 강요하는 이 시대에서 자라버린 것이다. 이제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왔는데 열정이 생기질 않는다. 목숨을 아낄지 않을 정도의 열정적 빠져듦이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전업작가라는 나의 직업은 한 그루 묘목처럼 수많은 시간과 보살핌을 통해, 천천히 건강하고  큰 나무로 성장한 것이다.
젊은이들, 계속해 나가기만 한다면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든 간에 누구에게나 인생은 이제 시작일 뿐일야.
기왕에 성공과 실패가 모두 인생에서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태도를 바꿔 성공과 실패에 모두 태연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생명은 끊임없는 선택의 과정이다. 실패가 유감스러운 것은 성공을 놓쳤기 대문이지만, 성공이 유감스러운 것은 자신이 더 많은 무엇을 놓쳤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공이든 실패든 모두 인생의 풍경들 중 하나일 뿐이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면 운명이 우리에게 어던 풍경을 보여주든 상광없이 대범하고 자유롭게, 계속해서 걸어가면 된다. 그렇지 않고 한때의 실패로 오랫동안 평온함과 집중력을 잃는다면 어떻게 더없이 아름다운 길 위의 풍경을 바라 볼 수 있겠는가
?

"기왕에 실패에서 시작한 바에야 실패를 두려워할 이유가 뭐가 있나요?"
실패를 대하는 관점을 바꾸기만 하면 실제로 실패에서 배울 수 있느 일이 성공보다 훨씬 많다.
"바보야. 우리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실패에서 시작했다. 실패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젊음은 아픈게 아니라 성장하는 시간이라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계속해 나가면 그것을 성공했든 실패했든 이제 시작일 뿐이다. 나는 아직 성공과 실패에 초연하지 못하다. 성공하면 기쁘고 실패하면 실망하고 좌절할 때도 있다. 그러나 뭘 얻고 뭘 잃는지 명확히 안다면... 성공을 실패같이, 실패를 성공같이 여길 날이 올 수 있을까? 평온함 가운데 대범하게 걸어가고 아름다운 길 위의 풍경을 바라 볼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생각을 하려면 자기 머리를 써야지!

모든 사고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질문이 없으면 사고도 없다. 뿐만 아니라 '질문'의 수준이 사고의 '깊이'를 결정하는 동시에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수도 있다.
왜 모범답안은 반드시 모범적이어야만 할까? 모범답안을 초월하는 답안은 없는 것인가?
변증법의 대단함은 우리가 과거 절대적으로 믿었던 '맞음'과 '틀림', '옳음'과 '그릇됨'이 더 이상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치는 현실에 따라 끊임없이 사유하고 변화하는 개방적 과정임을 믿게 하는 데 있다.
좋은 계획은 현재의 나에 대해 미래의 내가 던지는 기대이자 요구인 동시에 현재의 내가 미래의 자신에게 하는 책임과 의무에 대한 동의이자 다짐이다
.

 

모든 사고는 질문에서 부터 시작된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다. 계속해서 부모에게 물어본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아이들은 질문을 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된다. 초등학교만 가도 아이들은 질문이 없다.

선생님은 늘 똑같은 걸 물어본다. "질문 있는 사람?"

나이가 들어갈 수록 입은 점점 무거워진다. 업무상 문제가 있어도 상사에게 묻기 어렵다.

누가 우리의 질문을 없애버린걸까?

모범답안이 모범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느 책에서 한 평론가가 실려있는 책을 평론하면서 왜 성장소설의 주인공이 청소년이어야 하는가? 어른이 주인공이면 안 되는가? 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왜왜왜왜?

사고의 깊이 뿐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 더 질문해야 겠다,


쯧쯧, '아는'자신이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속았으니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늘 할 일이 많고 힘들다고 원망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우리가 집중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다른 것은 전부 천천히, 나중에 해도 되지만 즐거움만은 절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해서는 안된다. 분노를 힘으로 전환하라!
그렇다. 비록 눈물이 바닷물보다 많을지라도,받아들여야만하는 영원한 이별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내가 이 자리에서 숨 쉬고 있는 한 인생의 성대한 연회를 즐기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인생은 원래 시합이 아니다. 우리가 중요한 것,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것들이 결국에는 모두 인생이라는 다채로운 풍경속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최종적으로 갖게 될 직업 때문에 현재의 경험을 쌓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현재의 경험이 미래에 얻을 수 있는 직업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만든 승패라는 틀 안에서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넓게 인생을 보고 내 미래를 보고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 중에 하나는 "쯧쯧, '아는'자신이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속았으니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이다. 나는 너무나 많은 때 하지 못하는 나에게 속는다. 넌 못할거야라고 말하고, 포기를 종용하는... 이로 인한 결과에 누구를 탓 할 수 있겠는가.... 이제 그만 속고 싶다. 아는 나여! 속지마라. 즐거움을 포기하지 말고 성대한 연회를 즐기자.

 

시야=견문(안목)+경험(수완)+상상력(지혜)
 진정한 여행은 오직 하나뿐이다. 청춘의 샘에서 목욕하는 방법 역시 오직 하나뿐이다. 기이한 세상을 탐험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눈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백 쌍의 눈에는 백 개의 세상이 있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백 쌍의 눈에는 백 개의 세상이 있다. 사람들의 보는 시야가 다 다르다. 각각의 안목과 경험과 지혜가 다르기 때문에말이다. 내 눈으로 세상을 볼 뿐 아니라 타인의 눈으로도 세상을 바라보기를 힘써라. 상인이라면? 여행자라면? 정치가라면? 그 사람이었다면? 등장인물이었다면? 많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나를 본다면... 나의 열정을 바칠 수 있는 것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착하고 순종적이고..생각할 줄 모르던 하지 못하는 나가 아닌, 세상이 말하는 모범은 아니나 내가 생각하고 내가 이해하고 내 열정으로 살아가는 아는 나를 만나고 싶다.

청춘은 아픈 거야야 아니라 이해하고 사고하라는 작가의 말이 참 와닿았다. 백 쌍의 눈에 백 개의 세상이 있다면 내 두 눈에도 다른 사람과는 다른 어떤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세계가 아름다운 길 위에 있을 수 있도록 나를 불태울 열정을 찾기 위하여 과거를 보지 않고 달리고 싶다. 모범이 아니면 어떤가. 내 세상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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