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아이 창비청소년문학 50
공선옥 외 지음, 박숙경 엮음 / 창비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창비 청소년 문학 50권 기념 소설집인 파란아이... 처음엔 내가 재밌게 봤던 글들의 작가들의 단편선이라고 해서 호기심에 보았다. 그러나 다 보고 나서 책 뒤페이지에 있는 "진짜 청소년 소설이란 이런 것이다!", "이곳에 모인 작품은 결코 만만하고 소소한 이야기가 아닙니다."라는 말이 눈에 박혔다.

 

이번에 모인 작품은 결코 만만하고 소소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청소년에게 적절한 이야기인 줄 알고 이 책을 펴 든 독자가 있다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무대는 중학교 교실부터 미래의 우주 공간까지 넘나들고, 사람뿐 아니라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주제는 인생 그 자체의 핵심으로까지 파고들어 갑니다. 예상보다 훨씬 담대하고 깊은 이야기들이 모였습니다.


이 해설은 참 맞는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 말이다. 소소하다기 보다, 청소년이 봐야하는 글이기 보다...뭐랄까 마치 어른을 위한 동화를 보는 기분이랄까...? 화자들은 어린이들이들이다. 소년, 소녀, 때론 아기고양이, 때론 세살박이 아기, 중학생... 한 이야기, 한 이야기가 무척이나 깊다. 이 책은 7명의 작가가 7편의 소설로 7개의 색다른 청소년문학을 보여준다.

 

아무도 모르게-공선옥
내가 생각하기에 인간이 외롭다는 것은 날씨와 관계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인간은 외로움을 느끼며 배가 고프거나 아플 때는 더욱더 외로움을 느끼게 되지요. 내가 관찰해 본 결과로는  나의 아버지 되시는 오상봉 씨께서는 담배가 떨어지면 외로워하시지요. 또한 저의 어머니 되시는 김숙자 씨께는 돈이 떨어지면 외로워하시지요. 나의 형되시는 오영호 씨는 여자친구와 싸우고 나서 외롭다 하더군요. 인간은 그렇게 모두 외로운 겁니다.

 
나는 그렇게 강릉 아이가 되었다. 엄마의 강릉 생활은 여수에서와 하나도 다른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여수 살 때의 내가 아니었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다른 아니가 되어 버렸다. 사람이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
 

그렇게 소년은 강릉아이가 되었다. 서울아저씨에게 버림받은 엄마가 정처없이 이삿짐센터 아저씨의 고향인 강릉으로 오게 되고. 소년은 그렇게 강릉 아이가 되었다. 엄마의 생활은 변함이 없었지만, 소년은 아무도 모르게 다른 아이가 되었다. 잔잔한 파문같은 소설인 것 같다. 사람이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화갑소녀전-구병모

두 번째 글인 화갑소녀전은 개인적으로 참 어려웠다. 성냥팔이 소녀가 살기위해 들어갔던 공장에서 모든 에너지를 빼앗기고 결국 죽는다는 건지... 뭔가 승화된 결말인 것같은데... 아.. 참 어렵다. 찬찬히 시간을 내어 다시 읽어봐야 할 글이다.


파란아이-김려령
 오는 길에 버스가 줄줄이 이어진 긴 터널을 통과하던데, 그때 세계가 바뀐 것은 아닐까. 이곳에서 무사히 지내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터널을 통과하면, 그제야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 친구, 상상력도 좋다.
 

소년은 책갈피 속에 끼워 둔 사진을 꺼냈다. 누나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린 꼬마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소년의 파란 입술도 배시시 웃는다. "니가, 나란 말이지?"

 

 익사로 죽은 누이의 이름을 쓰는 입술이 파란아이. 누이의 입술도, 소년의 입술도 파랗다. 소년의 엄마는 누이를 잊지 못하고, 소년에게서 자꾸 누이의 모습을 찾아내고 겹춰본다. 그래서 도시에서는 수영장이나 물 근처에는 가지도 못한다. 하지만 방학이 되면 할머니가 계신 시골에서 지내는데 그는 수영도 잘하고 물을 좋아한다. 결국 소년은 소녀가 그와 같으면서도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소년은 이름을 바꾸고, 사진 속의 누나와 대화한다.

 
푸른과 피망-배명훈
 채은신지를 만나서 하루 종일 싸울 수 없게 된 것. 우리가 싸우지 못하도록 서로를 떼어 놓는 것. 나에게 전쟁은 그런 일이었다.
 전쟁은 폭력적인 수단을 통해 펼쳐지는 정치의 연장이지만, 이 순간 전쟁의 양상은 그보다는 훨씬 더 단순해져 있었다. 위가 시키는 대로, 그리고 혀가 이끄는 대로! 무기도 필요 없었다. 그냥 입 속으로 집어넣으면 그만이었다. 다른 건 이제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리고 모두가 동의하는 휴전 협정이 맺어졌다. 입 밖으로 직접 소리를 내어 휴전이라는 말을 꺼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입 밖에서가 아니라 입 안에서 맺어진 협정이었다. 종이 위에 쓰인 그 어떤 협정보다도 오래오래 지속될 신성한 약속
.
 

이 글은 정말 어른을 위한 동화같은 느낌이다. 어른들에게는 만나서 싸우는 게 전쟁이지만, 이 작은 아이에게는 만나지 못해서, 싸울 수 없는 게 전쟁인 것이다. 작은 별을 놓고 벌어지는 전쟁에서 소년, 소녀는 싸움이 오히려 전쟁을 끝내는 일이 되었다. 얼마나 재밌는 설정인지.


고양이의 날-이현
 -이것이 고양이의 눈이다.
잿빛 고양이는 하염없이 펼쳐진 세상의 풍경에 그만 넋을 잃었다.
-주차장에서, 컨테이너 위에서, 식당 앞에서, 카페 문 앞에서... 그건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일일 뿐, 고양이의 눈은 하늘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돼.

-...제 아무리 왕초라도 다른 영역을 침범하지는 않아. 저마다 마땅한 영역을 가질 뿐, 그 이상을 탐하지 않는다. 그것이 고양이가 함께 사는 방식이야. 개처럼 서열을 짓거나, 인간처럼 끝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아. 우린 저마다의 영역에서 저마다 주인으로 산다. 그게 고양이다. 고양이가 사는 법이다.
 어차피 어미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누구든 마찬가지였다. 한 번에 한 걸음씩, 두려워도 조금씩, 그렇게 제 발로 내려가야 했다. 제 발로 달리고 오르고 내려가는 일. 어미 고양이는 바로 그런 하루를 선물하고 싶었던 것이다. 잿빛 고양이는 이제야 어미의 뜻을 알 것 같았다.
고양이의 날. 잿빛 고양이는 어제를 그렇게 불렀다. 그 신비로운 하루가 지나고 이제 새로운 날이었다.

 

참 멋진 소설이다. 주인공이 고양이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성장소설이라고 느껴졌다. 어미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에게 떠나기 전 주는 선물같은 하루. 고양이의 눈에 대해서, 영역에 대해서 어미 고양이는 말한다. 그리고 아기 고양이가 나무에 스스로 오를 수 있도록, 그리고 스스로 내려 올 수 있도록 그저 기다린다. 이 책의 7편의 소설 중에 개인 적으로 가장 재밌게 봤다.


졸업-전성태
"나는 아침에 일기를 써. 밤에 쓰는 일기는 하루 동안 저지른 잘못을 고백하라고 강요당하는 반성문 같잖아. 반성은 지긋지긋하지. 이젠 누구한테 보일 일도 없고 쓰라고 강요 받지도 않으니까 일기장을 가지고 다니며 아무 때나 써. 특히 아침에 쓰는 일기는 아주 특별하지. 난 문장 하나를 쓰고 등교해. 너도 해 봐."
 

타임캡슐을 묻고 그들은 졸업한다. 인용한 문구가 참 마음에 남았다. 문장 하나를 가지고 되새기며 하루를 보낸다는 학생. 얼마나 멋진지. 나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덩어리-최나미
찬옥이는 절망적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제 찬옥이의 충격적인 얘기보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더 믿을 수가 없었다. 자기들한테 맞설게 아니면 가만 있으라는 건가? 내가 아니라 찬옥이가 제 입으로 그랬다고 하잖아. 자기들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은, 그게 찬옥이라도 봐주지 않겠다는 거야? 쟤들이 지금 믿고 있는 건 뭐지? 울컥해서 돌아보는데 경이와 눈이 마주쳤다. 경이가 남들 눈에 안 띄게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게 말이 되느냐고 묻고 싶었다. 경이는 이제야 알겠냐는 듯이 피식 웃고는 안경이나 올리라는 시늉을 했다. 안경 닦은 지가 오래됐는지 눈 앞이 부옇게 흐려졌다. 
 

찬옥이의 거짓말로 따돌림을 당하게 된 경이, 사실을 알고 말리려다 따돌림을 당하게 된 화자, 그리고 찬옥이. 현대의 청소년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지메, 왕따를 보여주는 소설. 따돌림에는 이유가 없다. 그런데 실재로 따돌림이 이런 것 같다. 이유는 없고 피해자들만 있는..... 왜 그 때는 알지 못하고, 늘 지나서 후회하는지... 요즘 청소년들은 가슴에 정말 이런 덩어리들을 품고 있는 것 같아 슬프다.  

 

만만하고 소소한 이야기가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재미없거나 인상깊지 않은 이야기도 없다. 책을 덮고서 청소년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이여.. 방황하다 지친 어른들이여. 이 책을 추천해 드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