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위대하게 - 소설
혜경 지음, 최종훈 원작 / 걸리버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은밀하게 위대하게

 

김수현이 바보역활을 한다는 영화로만 알고 있다가 책을 읽으며 깜짝 놀랐다.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책에 푹 빠져들었다. 소설을 보고 정말 재밌어서 웹툰까지 봤다.

리해랑, 리해진, 원류환

은밀하게 위해하게는 간단히 말하자면 간첩이야기이다. 오성조 조장 원류환은 북에서는 '초엘리트 혁명전사'이지만 남에서는 '달동네 슈퍼에 사는 바보 방동구'일 뿐이다. 그가 바보 생활을 한 지 2년 째, 당에서 내려오는 임무는 책으로 보는 나는 참 재밌었지만 어이없는 것들이 많았다. 계단에서 굴어떨어지기, 노상방뇨와 뇨상배뇨 등.. 바보를 연기하기도 참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 아니라 동네 소년과 동네 꼬맹이들 한테도 이리 저리 맞는 신세다. 때릴 걸 알면서도 맞아주는 장면에서 간첩은 정말 별걸 다 해야 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게 중점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저 위에 높은 분들은 말이야, 우리 같은 혁명전사를 쉽게 '연어'라고 불러. 고향으로 돌아와 산란을 하는 연어처럼 큰일을 하고 오라는 뜻이라나 뭐라나...참, 류환 동무. 그거 알아? 연어 말이야. 연어는 목숨 걸고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도 산란을 마치면...죽어."

 

그들은 들개로 자랐고, 연어라 불린다. 들개같이 치열한 삶의 경쟁 끝에 조원이 되고 조장이 된다. 그런 그들은 결국 죽는다. 인간은 누구나 죽지만, 그들의 죽음은 어쩐지 가엽다. 이 글은 재밌으면서도 감동적이다. 재밌는 가운데 감동의 끈을 놓치 않는다. 동시에 감동적이면서도 재밌다. 동네 바보 방동구 옆에는 우체부로 잠입해 있는 '서상구'와 기타리스트를 꿈꾸는 소년으로 잠입한 '리해랑', 그리고 좋아하는 윤유란의 동생 윤두준의 꼬봉으로 잠입한 '리해진'이 있을 뿐 아니라 달동네 마을 주민들이 있다.

 

"내 생각에는 말이다. 사람은 각자 자기 삶이 있기 마련이다. 그 삶에 너무 깊이 관여하고 속박하면 참 힘들거야. 조용히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건만. 동구야. 네가 누구든 어디서 뭘 하던 사람이든, 좋은 놈이든 나쁜 놈이든 이 동네에서 동구 넌 누구나 웃게 만드는 착하고 순박한 슈퍼집 동구란다. 적어도 넌 지금 여기서 필요한 존재야."

 

전직 순사인 고영감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적어도 넌 지금 여기서 필요한 존재라는 말. 독자인 내 맘도 울리는데, 글 속 동구의 아니 류환의 마음은 얼마나 만졌을까. 그는 북한의 주민으로, 오성조 조장으로, 혁명전사로 원류환이었지만, 남한에서는 그저 바보 방동구. 바보지만 그에게는 그 삶이 소중하지 않았을까. 북측의 도발 사건을 묻기 위해 북한 정부는 남한에 투입한 간첩에 대한 정보를 남한 정부에 건네주기로 하면서 류환과 해랑과 해진에게는 자결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그러나 세 명은 이유를 듣고 싶어하고 가족의 안위를 확인받고 싶어하면서 명령을 미루게 된다. 결국 마지막에 북에서 내려온 처형단의 사람들과 맞서게 되고 싸운다. 류환은 그가 몰랐던 '사실'들에 류환은 패닉에 빠진다.

 

'돌아가고 싶어...아무것도 몰라도 괜찮았던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갈래.'

옷에서 삐죽이 나온 통장이 류환의 눈에 들어왔다. 슈퍼를 나서기 전 할매가 준 통장이었다. 류환은 팔을 뻗어 통장을 집어 한 장 한 장 넘겼다. 거기엔 할매가 거르지 않고 매달 입금한 월급이 들어 있었다. 처음 일곱 달엔 '동구 월급'이라는 항목으로, 다음 여섯 달렌 '우리 동구 월급'이라는 항목으로. 그다음 석달엔 '우리 둘째아들', 그 뒤로는 '아들 장가 밑천...' 류환은 통장을 움켜쥐었다. 울음이 목구멍을 틀어막아 숨이 막혀왔다.

'돌아가고 싶어. 그렇게...살고 싶어.'

바보 동구로 살아온 2년의 시간이 들짐승처럼 산 십여 년의 시간을 넘어 류환을 지배했다. 류환의 심장이 전기에 덴 것처럼 빠르게 뛰었다. 

 

많은 사람들이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결말이 새드인딩이라고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열린 결말이라고 한다. 나는 열린 결말 쪽이라고 말하고 싶다. 들개로 살아온 이들이 연어로 끝나지 않고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얼마 전에 라오스에서 강제로 북송된 꽃제비 아이들로 인해 나라가 들썩였다. 이 책을 보면서 좀만 더 남한 정부의 대처가 빨랐다면...하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국적은 다르지만, 같은 민족인.. 북한 사람들과 한민족으로 웃으며 손 잡을 수 있는 사이로 만날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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