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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력 - 예능에서 발견한 오늘을 즐기는 마음의 힘
하지현 지음 / 민음사 / 2013년 3월
평점 :
예능력을 처음 받았을 때, 예능 안에 어떤 힘이 있는지 궁금했다. 내가 즐겨보는 예능에 어떤 힘이 있는지 궁금했다. 책 표지에는 '고단한 하루를 버티게 하는 마음의 힘은 무엇인가'라는 소제목과 함께 박수치는 손이 보인다. 예능이 하루를 버티게 하는 마음의 힘을 준다는 이야기일까? 박수는 리액션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고단한 하루를 버티게 하는 것보다 제목 아래에 있는 '오늘을 즐기는 마음의 힘'이라는 말에 더 눈이 간다.
예능력의 저자는 신경정신과의다. 신경정신과의가 본 예능은 어떨까? 궁금증에서 시작한 책은 감탄사로 끝났다. 그럴 뿐 아니라 정신학이 쉬었다. 말들이 쏙쏙 보였다. 솔직히 책이 술술 읽혔다. 그는 우리가 쓸모 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바보상자 티비를 보며 웃는 시간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힘을 주는 시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비록 사람들이 바라보는 내 모습이 처음에는 마음에 안 들고, 왜 내가 이런 캐릭터로 비치는지 속이 상할 수도 잇다. 그러나 모습 역시 내 모습이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김제동은 자기 눈이 작은 것을, 강호동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것을, 하물며 김국진은 이혼의 상처라는 콤플렉스를 캐릭터의 일환으로 이용하고 있지 않은가. 캐릭터가 내 인생의 짐이 아니라 힘이 되도록 하는 것은 내 인식에 달려 있다.
세상에는 불가능한 일보다는, 어렵지만 오래 걸리는 일이 더 많다. 둘을 혼동하면 안 된다.
포지션을 잘 잡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는 우리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질 줄 아는 것, 그리고 자기 포지션이 지금 여기서는 어디인지 빨리 깨닫고 자리를 잡는 것은 어느 곳에서든 중요하다.....병풍 역활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거나 슬퍼하거나, 여기에 화를 낼 필요가 없다. 어제의 일인자가 오늘은 병풍이 될 수 있고, 상황과 장소에 따라 우리의 포지션을 달라진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는 일인자인 회장님도 전경련 모임에 가면 병풍으로 서 있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리액션을 지금껏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았던 소통의 중요한 요소이다. 말을
맛깔나게 잘하는 것보다 리액션을 잘 하는 것이 관계를 매끈하게 이끌어 가고, 만나는 상대가 내게 만족하고, 나에 대한 호감을 갖게 하는 데에 더 중요하다. 리액션은 소통과 관계의 기본이다.
캐릭터, 포지션, 리액션... 예능에서 쉽게 들어볼 수 있는 단어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능은 세상을 희화화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최근의 예능들을 하나 하나 예를 들면서 연예인들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적용시켜 말한다. 처음에는 그저 '예능에서 힘을 얻는다'라는 측면에서 저자가 말하고 있다고 생각 했는데 그게 정신 분석학과 잘 버무려져서 '너도 하면 된다. 즐겁게 오늘을 살자!'라고 말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의미 없는 개그와 말장난으로 즐겁게 보내는 모습을 부러워하지만 말고, 쓸모없어 보이는 ' 잉여의 시간' 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이것을 '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기' 라고 말한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온 시간이 있다면 나머지 시간만큼은 그 어떤 이유도, 의미도 없이 게으름을 즐길 여유가 필요하다.
예능 프로그램이 보여 주는 쓸데없는 짓의 반복은 우리가 살면서 가져야 할 삶의 중요한 태도를 알려준다. 쓸데없는 게 분명하지만 재미있는 것에 낭비적으로 몰두해 보는 것이 보이지 않는 마음의 곳간을 채워주는 힘이 된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언제나 100퍼센트 충전된 채 지낼 수 없다. 절대 소진되지 않는 아이언맨의 양자 원자력 발전기를 가슴에 달고 살지 않는다. 많이 쓰면 닳고, 그냥 가만히 둬도 알아서 조금씩 줄어드는 그런 평범한 자아 에너지원을 갖고 있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 불안은 '죽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연사가 아니라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것이다. 잡아먹힐 것 같은 불안은 몸에서 원초적 반응으로 나타난다. 쫓기는 자의 공포와 불안은 생명이 붙어있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사라져서는 안 된다. 불안이 존재하는 것은 예방할 준비를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 삶이 고단할 때 무의미하게 웃고 떠드는 예능을 찾는 것은 배고플 때 밥을 찾는 것만큼 당연한 욕구다. 예능을 보며 우리는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갈 필요를 본능적으로 느낀다. 하루, 일주일의 고단함은 풀 수 있지만 거기에 더해서 내일, 다음 주를 살 에너지와 동기부여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내 삶의 '의미와 가치'다. 이것을 찾아야 우선 '오늘'이 만족스러워진다. 오늘의 만족은 자아 정체감과 존재감을 단단히 받쳐 주는 주춧돌이 되고, 더 괜찮은 내일을 만들 낙과의 마중물이 된다. 이것들이 쌓여 나가면서 더 먼 미래를 볼 여유가 생긴다.
그런 인식에서 자유록지 못한 채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들이기 때문에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이런 현실 지향적 모습이 새롭고 색다르게 보인다. 우리도 그렇게 오늘만 즐기면서 살고 싶다.
오늘을 만족해야, 내일이 되면 어제에 대한 좋은 기억이 하나 더 만들어지면서 과거를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리얼 버라이러티쇼에서 매일매일 웃고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다짐을 하는지 모른다. "나도 오늘을 즐겨야지."
이번 서평은 내가 읽고 '평'하는 것보다 인용이 더 많은 것 같다. 솔직히 체크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줄이고 줄인게 이 정도이다. 나에게 와 닿는 글과 다른 사람이 이 책에서 와 닿았던 글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예능이, '때로는 무의미하다..' 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시간들이 실은 우리에게, 우리의 일상에, 우리의 생활에, 우리의 삶에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에 감동했고, 위로 받았다. 그저 지나가는 시간이 아니라 내일 더 잘 사기 위해 즐기는 시간들인 것이다.
솔직히 이 책을 보면서 예능을 좋아하는 나는 예능 안에서 삶의 지혜를 발견하고, 사회에 예능을 적용하면서 많은 부분이 밝아지고, 위로 받고, 바보상자에 빠지는 것에 대해 타당성이 생긴 것 같아서 좋았다. '무의미한 것이 나쁘지만은 않아! 오늘의 일인자가 내일의 병풍이 될 수있고, 그저 웃고 떠드는 게 아니라 그 안에는 많은 '삶'이 들어 있어. 사회가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이 느꼈다. 이 작은 책 안에 참 많은 내용이 있다. 언제 여유를 잡고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