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카타야마 쿄이치 지음, 안중식 옮김 / 지식여행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제목이 참 멋지구리하다. 세상의 중심이 어딜까... 왜 거기서 사랑을 외치나.. 전에 한 번 읽었던 책이지만, 이렇게 서평이라는 형태로 남기기 위해 다시 읽다보니 그 때 안 보였던 게 지금은 보이는 것이 있다. 전에 봤을 때에도 이런 내용이었던가... 생각하면서 읽게 되었다.

꿈이 현실이고, 이 현실이 꿈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깨어났을 때 나는 언제나 울고 있다. 슬프기 때문이 아니라 즐거운 꿈에서 슬픈 현실로 돌아올 때 넘어서지 않으면 안되는 균열이 있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그곳을 넘을 수 없다. 몇번을 해도 안되는 것이다.
그런것이다. 아키가 없어졌다는 사실은, 그녀를 잃는다고 하는 것은 곧 내가 볼 것이 모두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보는 것, 아는 것, 느끼는 것.....내가 살아가는 것에 동기를 부여해주는 사람이 없어져버렸다. 그녀는 더이상 나와 함께 살아주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같은 길도 혼자서 걸으면 길고 따분하게 느껴지는데, 둘이서 이야기하면서 걸으면 언제까지라도 걸어가고 싶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것도 그럴지 모르겠다고 몇년이 지난 후 생각한 적이 있다. 혼자서 살아가는 인생은 길고 따분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느새 갈림길까지 와버리는 것이다.


한 사람을 이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 이 글의 처음은 '아침에 눈을 뜨니 나는 또 울고 있었다.'로 시작한다. 늘 울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싫은.. 꿈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남자.. 그 남자는 '아키'가 없으면 보는 것도, 아는 것도, 느끼는 것도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읽으면서 정말 절절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와.. 이런 사랑이 있을까. 그런데 몇 페이지가 지나서 이것이 중학생의.. 아니 이제는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의 사랑이야기라고 하니.. '순수해서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그러고는 역시 세상을 살게 되면 저런 사랑이 어려운 걸까싶을 때, 이번엔 할아버지의 사랑이 나온다.

 폐렴에 걸렸던 할아버지의 사랑 역시 비극적이다. 병은 이겨냈지만 결국 서로 다른 사람과 살 수 밖에 없어서 결국 죽어서 다시 만나 사랑하자고 약속했다던 할아버지와 그 분. 서로의 배우자가 죽으면 다시 만나려고 했지만, 할머니는 먼저 죽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어느날 손자를 데리고 그 할머니의 무덤에 가 뼈를 조금 훔쳐나와 같이 뿌려달라고 한다. 아키와 사쿠는 이것이 불륜이냐 진정한 사랑이냐 놓고 언쟁이 오갔지만, 나는 아키의 편이다.


"아키의 생일은 12월 17일이잖아."
"사쿠짱 생일은 12월 24일이고."
"그렇다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나서 아키가 없었던 적은, 지금까지 단 일 초도 없었 어."

"내가 태어난 이후의 세계는 전부 아키가 있는 세계였던거야."

"나한데 있어서 아키가 없는 세계는 완전히 미지의 세계이고, 그런 것이 존재할지 모르겠어."

 

 아키는.. 언젠가 사쿠가 거짓으로 보냈던 라디오 엽서처럼 백혈병에 걸리고 만다. 창백해지고, 키스를 할 수 없게 되고, 혹은 소독 후 몰래 키스를 해야 하고, 머리가 뭉텅이 빠지고... 아키는 점점 삶에 대해 자신이 없어지고 자신이 없는 세상을 생각하게 된다. 사쿠는 그런 아키에게 자신에게는 아키가 없는 세계는 지금까지 단 일 초도 없었다면서 그런 세계는 미지의 세계라고 말한다.


매일 사는 것은 하루하루 정신적인 자살과 부활을 반복하는 것과 같았다. 밤에 잠들 때에는 이대로 두 번 다시 깨어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적어도 아키가 없는 세계에 두 번 다시 깨어나는 일이 없도록.
하루가 시작되면 밥을 먹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도 한다. 비가 내리면 우산도 쓰고 젖은 옷을 말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행위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엉터리로 두드린 피아노 건반이 엉터리 소리를 내는 듯한 것이었다.
어떤 하루를 택해도 그 앞의 하루와는 단절되어 있었다. 연속적인 시간은 내 안에 흐르지 않았다. 무언가 계속되어 간다는 감각, 무언가가 자라서 변화해 간다는 감각을 잃어버렸다. 살아가는 것은, 한 순간 한 순간의 존재로만 있는 것이다. 미래는 없고 어떤 전망도 열리지 않았다. 과거에는 건드리면 피가 나올 것 같은 추억이 뒹굴고 있었다. 나는 피를 흘리며 그런 추억을 가지고 놀았다. 흘린 피는 이윽고 굳어져서 딱딱한 딱지가 되겠지. 그러면 아키와의 추억을 건드려도 아무겨도 느껴지지 않게 되는 것일까.

 

 결국 아키는 죽는다. 둘이서 시도했던 호주로의 도망은 결국 무산 되고 그것 때문이었는지 결국 아키는 죽고 만다. 그리고 사쿠는 오늘을 살면서 과거에 있다. 그런데 그 과거는 피가 나올 것 같은 추억으로 가득한 과거이다. 피를 흘리며 추억을 가지고 노는 기분은 어떠할까... 그리고 그 피가 굳어져 딱지가 되어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은 얼마나 다행이면서도 얼마나 끔찍할까. 사쿠는 할아버지처럼 아키의 뼈 한 줌을 유리병에 담아 가지고 다닌다. 그 뼈를 뿌리지 못하고 살아있는 한 몸에 지니고 있을 작정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에 사쿠는 다른 여자와 고향을 찾았다. 여전히 뼛가루가 든 유리병을 지니고 있었지만 모교의 교정에 흩날리는 벚꽃잎과 함께 그녀를 보낸다.

 사쿠에게 아키는 딱지가 되었을까? 그는 단절을 이겨낸 걸까? 사람마다 의견은 다르겠지만... 결국 상처는 다시 나지 않는 한 시간이 지나면 아물게 되어있다. 아무리 끔찍한 상처라도 그렇다. 물론 그가 아키를 온전히 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설레었던 짝사랑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데.. 이런 사랑이라면 절대 잊지 못 할 것이다. 사쿠의 미지의 세계는 꿈이 더 행복한 세계였다. 비록 그 꿈에서 조차 아키를 구할 수 없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역시 사람이란... 미지의 세계는 현실이 되었다. 사쿠는 다른 여자와 교정에 서 있고, 아키는 벚꽃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가슴 절절한 사랑이야기는 중고등학생의 라디오 엽서와 같고, 현실은 교정의 다른 여자와 같다. 슬프고 절절하지만, 어딘가 씁쓸한 이야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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