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돌이킬수 없는 약속'의 작가인 야쿠마루 가쿠의 신작이라는 말에 책을 펴보기 전부터 설렜다. 어느 도망자의 고백이라니. 책을 읽기 전 읽은 책 소개에는 뺑소니로 할머니를 치어 죽인 한 대학생과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그 할머니의 남편과 가족이 나왔다.


이 소설의 내용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 대학생이 밤늦게까지 술을 먹고 여친의 문자에 음주운전을 하게된다. 빗길 음주운전. 고열이 오른 할아버지를 위해 얼음과 약을 사러 나온 할머니를 치게 되고, 겁에 질려 뺑소니를 치는 과정에서 할머니가 200m 끌려가서 죽게 된다. 그는 뺑소니라는 걸 알지만, 아닐 거라고 자기최면을 걸어보지만, 결국 용의자로 잡혀 실형을 받고 감옥에 가게 된다. 출소 후 피해자를 찾아갈 엄두도 나지 않는 그의 앞에 전여친과 치매에 걸린 죽은 할머니의 남편이 나타난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이 책이 그 야쿠마루 가쿠의 신작이라는 것도 있지만) 책뒤편에 써 있던 "벌이 속죄가 아니라면,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죠?"라는 그 말이었다. 과연 법이 정한 그 형벌과 처벌이 과연 속죄가 되는가. 누구를 위한 속죄인가. 하는 그 물음이 이 책의 내용을 궁금하게 하고, 그 결말을 궁금하게 했다. 많은 추리 소설에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다. 이 책도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다. 보통은 결말도 뻔하다. 범인이 잡히고 알리바이와 그 모든 것이 밝혀지고 해피엔딩. 그런데 이 책은 뭔가 다를 것 같았다.


먼저, 가해자가 왜 가해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핑계가 있다. 이건 솔직히 많은 소설들에도 나타난다. 요즘은 입체적인 인물이 대세이기 때문에 가해자라고 무조건 죽일놈인 경우는 범인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인 경우 말고는 별로 없다. 심지어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들에게도 의미부여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의 가해자들은 매우 평범한 인물이다. 너무 평범해서 길가다 마주칠 수 있을 법한 사람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지도 않은, 일반 시민이 가해자다. 소설에도 나오지만, 내가 피해자 또는 피해자의 가족이 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가해자가 될 수도, 가해자의 가족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시킨다. 만약 내가, 내 가족이, 내 가까운 사람이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는 법이 정한 형벌에 대해, 과연 사람을 죽인 죄에 대해 4년 10개월이라는 수용 시간이 정당한가에 대한 질문도 던지고 있는 것 같다. 돌이킬 수 없는 약속에서도 그랬지만, 가해자도 피해자도 인정하지 않는 그 시간이 타당한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소설 속의 가해자들은 책제목을 대로 도망자였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죄에 대해, 피해자에 대해, 그 피해자의 가족 및 주변사람들에 대해서 말이다. 책을 읽기 전, 그리고 초입 부분을 읽었을 때, 나는 책의 제목이 말하는 가해자가 단순히 뺑소니범인 마가키 쇼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지금 이 책에는 많은 도망자들이 나오고, 그들의 고백이 쓰여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뒷 장에 작가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누구나 사건의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가해자가 된다면, 당신은 자신이 저지른 죄와 마주할 수 있을까요?"



과연 나는 자신이 저지른 죄와 마주할 수 있을지, 아니면 누군가와 같이 도망자로 도망만 다닐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