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더트
제닌 커민스 지음, 노진선 옮김 / 쌤앤파커스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책을 봤다. 요새 책이 땡기지 않아 근 한 달 만에 책을 손에 쥐었다. 제목은 "아메리칸 더트" 난민의 삶을 그린 책이라고 했다. 몇 년 전 예맨 난민으로 우리나라가 시끌했었기에, 나는 그 정도 생각을 하고 책을 폈다.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육백페이지가 넘는 책을 다 봤다. 생각보다 몰입감 있고, 생각보다 현실은 잔인했다.

이 책의 처음은 총기난사로 시작된다. '멕시코의 어느 마을에서 총기난사로 일가족 사망' 우리나라에는 이런 기사 한 줄로 이해되거나 또는 기사 한 줄 나지 않는.. 그 나라에서는 흔한 일이라는 것이 놀랍니다.

아이들은 부유하건 가난하건 중산층이건 모두 길에서 시체를 본 적이 있다. 살인은 흔한 일이다. 그리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위험에도 계급이 있고 어떤 가족은 다른 가족보다 위험에 훨씬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따라서 루카는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러나 알고 있다고 해서 이 일을 받아들이기 쉬워지는 건 아니다.-15


이 소설은 멕시코와 카르텔과 난민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나는 솔직히 난민하면 전쟁난민을 생각했지 카르텔로 인한 난민이라니.... 우리나라로 치면 조폭에게 쫓겨 일본이나 중국으로 넘어가는 그런 일 아닌가 싶었는데... 소설 속 카르텔의 행태는 솔직히 생각보다 너무 잔혹했다.

리디아의 몰살된 가족들 시신 위로 성호를 긋는 스물내 명이 넘는 경찰과 의료진 중 일곱 명이 이 지역 카르텔로부터 정기적인 뇌물을 받고 있다. 이 불법 수당은 정부가 주는 월급보다 세 배나 많다. 사실 이미 한 명이 헤페(보스)에게 리디아와 루카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문자로 전했다. 나머지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로 그러라고 카르텔이 돈을 주기 때문이다.-24

이 길은 오로지 다른 선택이 없는 사람, 고향에 폭력과 고난만이 기다리는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매사에 틀어져서 좌절하게 될 겁니다. 기차에서 떨어지기도 할 겁니다. 불구가 되거나 다치는 사람이 다반사일 겁니다. 죽는 사람도 속출할 겁니다. 납치와 고문, 인신매매, 몸값 요구에 시달리는 사람은 아주 아주 많을 겁니다. 운이 좋아서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미국까지 간다고 해도 기껏 타락한 코요테에게 버림받아 사막의 뙤약볕 아래서 홀로 죽을 겁니다. 아니면 당신의 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카르텔 조직원에게 총을 맞아 죽을 겁니다. 그리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돈을 털릴 겁니다. 한 사람도 빠짐 없이요. 엘 노르테까지 가는 데 성공한다면 땡전 한 푼 없이 가게 될 겁니다. 내가 장담하죠. 주위를 둘러보세요. 어서요. 서로를 바라보세요. 셋 중 한 명 꼴로 살아남아서 목적지에 도달하게 될 겁니다. 그게 당신일까요?-280

살기 위해서 떠나는 여정은 잔혹했고, 온 가족이 다 죽고 아들하고 둘이서 떠나는 여정은 잔인했다. 작가가 난민 중이 여자와 아이들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말했던 걸 소개글에서 읽었는데.... 보면 볼수록 숙연해지는 것이 있었다.

사랑에 빠질 뻔했던 남자가 자신의 가족을 다 죽이고, 경찰이고 같은 처지의 사람이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어딜가나 돈을 뜯어내거나 사람을 팔아먹거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그래도 제정신인 몇몇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

멕시코장벽을 세운다는 트럼프의 말이 나에겐 그저 뉴스 한 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생존을 막는 장벽이고, 가족을 막는 장벽이라는 것을 소설을 보면서 느끼게 되었다. 내가 읽은 이 조금은 두꺼운 책으로 '엘 노르테' 로 가는 여정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같은 여자로서 분노되는 부분이 있었고,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생존욕구를 동감했고, 또 한 인간으로서 인간이 얼마나 양면적인 존재인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세상에는 무조건 나쁜 인간이나 착한 인간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조금은 착하거나 조금은 나쁜 사람들이 주이다.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사람이 마약왕일수도 있고, 좋다고 느꼈던 기사가 한 사람을 자살로 몰고 갈 수도 있고, 위험하다고 느꼈지만 실은 선량한 사람일수도 있고 말이다. 물론 나쁘다고 생각했던 놈이 끝까지 나쁜 놈일 때도 있고 말이다.

보면서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그리고 총과 범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총기 금지국가라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어느날 우리동네에서 총기난사가 일어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짭새라고 말은 하지만, 그래도 공권력이 살아있으며, 공공연연하게 도시에서 폭력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소설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물론 멕시코의 모든 도시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삶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보면서 또 흥미로웠던 것은 하단에 챕터 명이 나와있었는데, 이 챕터가 소설이 진행될수록 점점 위치가 변경되는 것이 흥미로웠다. 또 나는 멕시코 지리를 1도 모르지만, 지리천재 루카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도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4,257킬로미터를 살기위해 이동한 사람들..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고, 때로는 자신의 몸마저 비용으로 바쳐야 하고, 돈을 뜯기는 게 차라리 베스트인.... 그런 삶을 보면서 나는 일제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났다. 집을 잃고 땅을 잃고 나라를 잃고 삶을 찾아서, 살 곳을 찾아서 뒤돌아 보지 못하고 달려갔을 사람들... 이 이야기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카르텔 난민들의 이야기이지만, 나에게 적용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몰입감으로 볼 때는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하다가 덮고 나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다.

#아메리칸더트

#쌤앤파커스

#제닌커민스

#카르텔난민

#난민

#멕시코난민

#오프라윈프리추천

#장벽이쪽에도꿈이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