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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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작품 중 은근 흔한 소재가 자신의 본 신분을 속이고 다른 사람의 생을 사는 것이다. 이 소설은 신빙성이 꽤나 있었고, 서문부터 시작해서 이게 실제 있는 사건으로 소설을 쓴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적인 면이 있었다. 일본에서 딴 작품들 읽다보면 신분세탁이 이렇게 쉬운건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이 소설은 그런 작품과는 궤도가 달라서 좋았다.


이 소설의 핵심 스토리는 두께에 비해서 꽤나 간단하다. 우여곡절이 많은 재혼녀 리에 씨의 현남편이 죽었는데, 연락이 닿은 남편의 친족이 영정사진을 보고 자신의 형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름도 모를 남편은, 그 남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런 스토리에 리에씨만큼이나 가족의 죽음을 겪은 리에의 아들 유토, 이름 모를 남자와의 딸인 하나, 그리고 이 스토리를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인 '차별' 이런 것들이 묘하게 버무려져 스토리를 탄탄하게 만들고 있다.

나는 차별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혼녀의 자식이 겪는 차별, 재일동포가 겪는 차별, 살인자의 아들이 겪는 차별...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혹시 작가가 재일동포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이 적나라하게 나왔다. 직업을 얻는데서 오는 차별, 결혼을 하는 데서 오는 차별, 사회에서 겪는 '조선인'에 대한 차별... 소설에서는 간동대학살에 대한 내용도 나오고, 혐한 시위에 대한 내용도 나왔는데, 아직도 일본 내에 이런 차별이 만연하다는 건 정말 어이없는 일인 것 같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죄를 전가하는 것만큼 어이없는 일이 어디 있을까... 한국인으로서 너무나 어이없고도 슬펐다.

누구나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한 번 쯤은 해 봤을 법하다. 차별까지 당했다면... 내가 만약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소설은 두 번, 세 번 읽었을 때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 것 같다. 전 남편의 정체도 정말 궁금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전 남편의 정체보다는 사회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글이 무겁지 않았고 술술 읽혔다. 히라노 게이치로라는 작가가 궁금해지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문득 내가 '다른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다시 한 번 정주행해도 참 좋을 작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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