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를 합시다 새소설 6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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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책을 받았을 때 흥미로웠던 것은 복수를 합시다라는 그 제목과 "가징 보통의 복수를 상상하다"라는 띠지의 글이었다. 치밀하진 않지만 치열하고 가장 보통인 복수는 어떤 것일까? 표지의 사람은 왜 케이크에 얼굴을 묻고 있는 것일까? 과연 이 책은 어떤 내용을 품고 있으며 화자는 어떤 복수를 꿈꾸는 것일까?

소설의 내용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총평을 살짝 해보자면 미약하게 시작해서 스펙터클하게 끝난달까. 일상에서 시작해서 007로 끝난달까하는 기분이다. 띠지의 글대로 치밀하지 못한 이들이 모여서 복수의 반전의 반전의 반전을 기록한다.

내가 하는 일은 온갖 사연들이 올라오는 게시판을 관리하는 것이다. 중소 규모의 포털 사이트이다 보니 사연 게시판에 올라온는 각종 사연이 우리 회사가 내세우는 중요한 콘텐츠 중 하나다. 게시판 조회수가 저조한 남이면 사연을 창작해서 올리기도 한다. 나는 특히 이혼을 앞준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을 때가 많다.

p.9

이 소설의 시작은 갑질 사장 아래에서 온갖 사연들을 올라오는 게시판을 관리하는 화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처음에는 사연을 올라오는 게시판을 관리하는 것이지만, 올라오는 글의 관리가 아니라 오히려 글을 창작해서 다른 이의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는 고충을 가진 화자의 이야기를 보며 과연 어떻게 전개가 될까 흥미로웠다.

창작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화자의 본인의 이야기로 넘어갔고,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왕따를 당했는데, 그 친구가 왕따를 당하게 된 원인이자 왕따를 주도하면서 돈을 뜯길 뿐아니라, 변기에 머리를 박게 하고, 심지어 편을 들어줬던 유일한 친구와 서로 때리게 하여 화자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학창시절을 보내게 된다.

우연히 침대를 사러 갔다가 자신을 왕따시켰던 그 친구가 가구 설치 기사라는 것을 알게되고 화자는 소소한 일상의 복수를 꿈꾼다.


중간챕터 표지인데, 챕터 제목인 르상티망이 뭔지 궁금해졌다. 르상티망은 원한, 복수감을 뜻하는 말이다.

대신 나는 진지하게 놈에 대한 복수를 생각했다. 그러다 불법적으로 복수하기 어렵다면, 합벅적으로 복수를 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합법적인 복수'를 떠올리고 보니 '합법'과 '복수'의 결합이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보다 안전하고 이상적인 복수가 어디 있을까. 문제는 연인으로 이상형을 만나기 어렵듯 이상적일수록 달성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p.48

화자의 복수는 과연 소소했다. 바로 가구 설치 관련하여 흠을 만들어 컴플레인을 거는 것. 그러나 이 소소하고 합법적이며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복수는 친구가 화자의 정체를 알고 그의 굴욕적인 사진을 보관하고 있음으로 실패하고, 심지어 처지가 역전되어 버린다. 화자에게 가구를 강매하고, 휴일에도 가구 배달 및 설치를 돕게 하고 사진으로 협박을 계속한다. 화자는 결국 복수를 돕는 모임에 가입하게 된다.

직접 당하지 않은 자가 그 고통을 어떻게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같은 고통이라도 아픔의 크기는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른 법이다. 그래서 나는 레몬의 고통이 그녀 자신에게 얼마나 클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전적으로 이해해줄 수는 있었다.

p.73-74

소소하게 시작했던 화자의 복수는 역풍을 맞고, 이 복수를 같이 생각하는 모임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다른 사람의 분노에 공감해주고, 익명의 그 사람들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음을 보여주며, 복수가 터닝포인트, 즉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소설에는 몇몇 복수들이 있다. 고등학교 때 왕따한 이에게의 복수, 자신에게 컴플레인 건 사람에게의 복수, 자신의 공을 가로채는 남편에게의 복수, 자신의 친구와 바람핀 약혼자에의 복수, 인생을 망친 이에게의 복수, 갑질 사장에의 복수 등등.

이 복수들이 전개되면서 화자의 인생은 점점 스펙터클해 진다. 어떻게 007이 되어가는지는 소설을 보면서 확인하시기 바란다. 재미를 위하여 스포는 자제하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결코 치밀하지 않다는 것에 공감했다. 이 소설에 치밀한 인간이 한 명도 없다. 나는 복수를 생각하는 모임에서 셜록에 모리어티같은 건가 하는 생각을 했으나 그런 생각이 부끄럽게도 그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복수였다. 등장인물 '앙칼'의 경우 치밀한 것 같으면서도 엉성한 매력을 보였고, 그것은 소설 전체에서도 매력이자 아쉬운 맛으로 남았다.

그러니까 복수의 대상은 뜻밖에도 가까이 있으며, 의외로 복수는 마음만 먹으면 시도 해볼 수 있는 만만한 것일지도 모릅니다.-245

힐링과 달리 복수는 격렬한 마음 씀이고, 복수에 성공해도 누군가를 상처 입혔다는 생각에 찜찜한 기분이 들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분노라는 감정이 존재하고, 복수라는 행동에 열광하려는 마음 역시 존재한다면, 우리의 삶에 그것이 필요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니까요. 힐링은 지갑을 비게 만들지만, 분노는 우리 삶의 조건을 바꿉니다. 깐족거리는 인간에게 치받았을 때, 잔소리하는 어른 앞에서 과감하게 짜증을 냈을 때, 그리고 거대한 분노가 촛불로 타올랐을 때,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떠올려보았으면 합니다. 그게 이 소설을 쓴 이유이기도 합니다.-246

p.245-246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바로 작가의 말이었다. 요즘의 트렌드는 분노보다는 힐링이고, 복수보다는 용서이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용감하게(?) 복수를 말하고, 분노와 복수가 우리 삶에 필요하다고 말해준다. 가장 인상적인 글은 힐링은 지갑을 비게 만들지만, 분노는 우리 삶의 조건을 바꾼다는 것이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분노가 조절이 안 되는 사람과 분노를 표출하지 못해 다른 돌파구를 찾는 사람들로 양분되어 있는 것만 같다. 이 소설은 소소하고 합법적인 복수에서 시작해서 창대하게 끝이 났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작은 것들에 당당히 이야기하는 그런 것이야말로 소소한 복수가 아닐까. 때로는 소소한 복수가 힐링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을 가져오게 된 소설이었다. 그런 소소한 일상이 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 수 있고, 결국 스펙터클 해지지 않게 도와주지 않을까.

누구나 복수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복수는 거창할 것일수도 있지만, 때론 너무나 평범하고 사소한 것일 수 있다. 분노가 조절이 안 될 때까지 눌러 담지 말고, 사소한 터트림으로 삶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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