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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 따위는 없다 - 교양으로서의 동양철학
신메이 P 지음, 김은진 옮김 / 나나문고 / 2025년 7월
평점 :
* 협찬 도서

도쿄대 법학부 출신 니트족이 동양철학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왜 무려 도쿄대 출신 엘리트가 니트(백수)가 되었을까? 또, 동양철학이 어떻게 그를 구원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책 제목이 『나 자신 따위는 없다』라니. 요즘처럼 “진짜 나를 찾아야 한다”, “나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대세인 시대에 정반대로 “나 자신은 없다”라고 선언하다니......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도쿄대 법대를 졸업하고 대형 IT 기업에 입사했지만, 스스로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퇴사했다. 그 후 교육사업도, 개그맨 도전에도 실패하고 히키코모리로 지내던 어느 날, 동양철학을 만나면서 삶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블로그 글이나 PPT 발표 자료처럼 쉽고 재미있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읽어보니 철학을 어렵지 않게,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저자는 7명의 철학자를 소개하며, 그들의 사상이 자신을 어떻게 허무감의 바다에서 건져냈는지 들려준다. 붓다, 노자, 장자, 달마처럼 이미 알고 있던 인물도 있지만, 용수보살, 신란, 구카이처럼 생소한 인물의 사상도 소개된다(하긴, 달마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달마가 중국인인 줄 알았다--;;;)

저자가 소개하는 동양철학의 개념들이 내가 즐겨 읽는 영성(spirituality) 관련 책들(예: 디팩 초프라, 에크하르트 톨레, 웨인 다이어, 마이클 싱어, 켄 윌버, 데이비드 호킨스 등)과 맞닿아 있어 더욱 감동적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경계선은 환상이며, 모든 것은 픽션이라는 개념들이 바로 그런 예다. 서양의 영성가들이 동양철학의 영향을 받은 점도 있지만, 결국 진리를 향하는 길은 서로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에게 그랬듯이, 이러한 동양철학의 개념은 오늘날 마음의 문제로 힘든 젊은 세대에게도 충분히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다. 저자가 강조하듯, 동양철학의 매력은 결국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템플스테이나 명상에 관심을 갖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마음이 지쳐 있을 때, 철학의 언어는 생각보다 훨씬 따뜻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7명의 철학자 중 누가 가장 마음에 들었는지 독자에게 질문한다. 나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용수보살, 만물이 ‘공(空)’이라고 말한 그의 사상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는 이 세계가 언어의 허구성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가족도 회사도 국가도 모두 허구라고 말한다. 결국 우리는 픽션 속을 살아가고 있다는 그의 사유가 깊이 마음에 남았다.

그때 공의 철학을 알지 못했더라면 고립 → 자기혐오 → 한층 더 깊은 고립이라는 악순환의 고리에 휘말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의 철학을 알게 됨으로써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빛나는 장소에서 안심하며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딱히 사회에 복귀했다고는 할 수 없다. 이불 속에서 지내기는 마찬가지니까. 그러나, 비록 이불 속에 파묻혀 지낼지라도 '그래도 괜찮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154쪽)
저자는 또한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페이지가 무엇인지 묻는다. 나에게는 이불이 그려진 페이지가 가장 좋았다. 이불 속에 파묻혀 지내도 ‘괜찮다’고 느끼며 웃을 수 있는 여유!!!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가 아니라, 내 마음이다.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려 있다.
가끔은 내 주변의 관계나 규칙, 제도가 얼마나 단단해 보이든 실은 언어와 약속으로 만든 허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본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가볍게 숨 쉴 수 있게 된다. 나를 옭아매던 것들이 사실은 스스로 만든 허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철학을 어렵게 풀지 않는다. ‘무아’, ‘공’, ‘무위자연’ 같은 어려운 개념도, 저자가 일상 속에서 이러한 개념을 체감한 경험을 예로 들어 쉽게 설명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공(空)’을 느낀 순간으로 졸업식 날 교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날의 방, 단체 회식 자리에서 고립되었을 때 등을 들곤 한다. 이런 글을 읽다 보면, 나 역시 삶 속에서 ‘공’을 느낀 순간이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나 자신 따위는 없다』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흔들리는 우리에게, 삶을 불필요하게 무겁게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동양철학을 어렵게 느끼는 사람, 힘겹고 무거운 인생을 조금은 가볍게 해주는 철학의 세계와 만나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