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애인은 없다네 창비시선 380
이창기 지음 / 창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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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내게 던져진 질문이 아니다

* 이창기 *

 

우린 서로 만난 적이 없으므로

침묵이 먼저다

왜 그래야 했는지 동기가 불분명하므로

침묵이 먼저다

검찰이 수사하고 있으므로

침묵이 먼저다

내부 고발자의 진술을 배제했다 해도

침묵이 먼저다

결정적인 증거가 조작되었다 해도

침묵이 먼저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므로

침묵이 먼저다

정부의 발표를 듣고 난 뒤에도

침묵이 먼저다

 

침몰하는 배에서 보내온 학생들의 문자와

모든 약속

그들이 함께 나눈 이야기가

증거불충분으로

파기 환송된다 해도

우리 안에 자유에 대한 열망이 있어

괜찮다 다 괜찮다

다시 시작하자고 울부짖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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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먼저인 세상

침묵을 스스로 택한 사람들이

무겁게 입 닫고 무너져가는 시간

소리를 잃고 침묵하는 자신을 대면하기 어려워

엉뚱한 소리 지르고 발광하며 해소하는 시대

그래야 겨우 숨 붇이고 살 수 있는 시간

침묵이 먼저다

그렇게 침묵하며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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