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말들 - 인생에 질문이 찾아온 순간, 그림이 들려준 이야기
태지원 지음 / 클랩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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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지식이 없어도 글의 호흡을 따라가기 충분하다. 꼭 필요한 지식은 글의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에 채워진다. 매주 방영되는 교양 프로그램처럼 짧지만 알차게 이루어진 각 챕터를 읽다보면 글에 담긴 사유가 본질적이라 쉽게 넘어가지는 않는다. 그림과 대화하며 머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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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말들 - 인생에 질문이 찾아온 순간, 그림이 들려준 이야기
태지원 지음 / 클랩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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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잘하고 싶었고 실패하기 싫었다. 전력 질주하다 실패하는 벽에 깨지고 부딪히기 싫었다. 차라리 노력을 덜 하면 실패하더라도 덜 억울할 것 같아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는 일이 잦아졌다.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이 무기력에 이른 것이었다.
-44p,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무기력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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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장 프랑수아 밀레*, 요하네스 베르메르*, 호아킨 소로야, 테오도르 루소*, 툴루즈 로트레크*, 주세페 아르침볼도, 폴 고갱*, 귀스타브 카유보트, 클로드 모네*, 디에고 리베라*, 칼 라르손, 폴 세잔*, 외젠 들라크루아, 오노레 도미에*,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등 익히 듣고 봤던 화가의 그림들(*표시한 화가는 한국과 미국에서 직관)과 새로 알게된 그림, 스타일을 알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했던 트롱프뢰유 기법과 바니타스화까지.

풍부하지만 과하지 않은 담백한 교양을 충전하면서 진정성 그 자체인 저자 태지원의 우아한 솔직함을 한권으로 만나볼 수 있다.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으로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을 수상한 저자는 출간 후에도 연재를 계속하여, 후속작인 <그림의 말들>로 감동적이면서도 잔잔한 웃음이 감도는 치유의 시간을 선사했다.

연재 브런치북을 통해 저자의 글을 접하고, 매주 그녀의 글을 기다리다가(그녀는 지금도 연재중!) 저서중에 미술에세이가 있어서 구입했는데(읽고 있던 미술책과 쓰고 있던 미술에세이가 슬럼프에 빠져서 시간이 지체됐다.) 특히 종이책으로 만난 그녀의 글에서 그림 감상을 통한 힐링에세이를 오래 연재해온 내공이 느껴졌다.

비록 슬럼프라고 하나 ​읽어본 미술책들의 저자가 대체로 문학자였다. 미술 지식에 더해 문장력까지 쌓이는 뿌듯한 시간을 보냈으나 기억이 금방 증발되어 아쉽다. 그럼에도 미술책은 그림만으로도 소장가치가 충분하다. 언젠가 소로야와 세잔의 원서 도록을 구입할 것이다. (일단 서재부터 확장이전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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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존재하는 규칙은 너무도 세밀하고 촘촘하게 우리의 내면에 스며들어 있어 당연한 것이라 여기기 쉽다. 가령 가족의 역할이나 능력주의, 인간관계와 사회성을 둘러싼 수많은 당위와 규칙들, 우리가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따지고 보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헛것'일 가능성도 크다.
-121p, 마음속 규칙을 파쇄해야 하는 순간

전혀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 씩씩한 척하는 스스로가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해서 괜찮다고 생각해온 건 아니었을까? -163p,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요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던 예술의 고정관념에 물음표를 던진 것, 뒤샹이 현대미술에 남긴 가장 중요한 업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190p, 취향에 등급이 따로 있나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짐을 등에 짊어진 채 오래달리기를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나 아닌 누군가의 삶'에 대한 부러움이 줄어든다.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며 낭비하는 내 시간도 조금은 줄어든다. -220p, 사는 게 놀이터인 사람은 없다는 사실

이처럼 인생의 유한함, 생의 부질없음을 전달하는 정물화 장르를 '바니타스화'(Vanitas는 라틴어로 헛되고 덧없는 것을 뜻한다)라 불렀다. 주로 꽃과 함께 해골, 썩은 과일, 연기나 모래시계, 악기 등을 그림에 나타내는데, 이런 사물들은 '죽음'이라는 인간의 숙명을 상징한다. -255p, 화양연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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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지원 작가는 성실하게 글을 쓰면서 자아성찰을 하고 그 과정을 아주 진솔하게 브런치와 지면으로 담아내기에 배경지식이 없어도 글의 호흡을 따라가기 충분하다. 꼭 필요한 지식은 글의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에 채워진다. 매주 방영되는 교양 프로그램처럼 짧지만 알차게 이루어진 각 챕터를 읽다보면 글에 담긴 사유가 본질적이라 쉽게 넘어가지는 않는다. 저자가 어려운 말을 해서 독자를 잡아두는 것이 아니라, 쉬운 말로 깊은 질문을 하기에 독자 스스로 깨닫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가볍지만 사유를 곁들인 정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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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서
에르난 디아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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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단숨에 읽었다‘는 리뷰를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 그럴 집중력이 내게는 없다. 그럼에도 어느 구간에서만큼은 ‘단숨에 읽게‘되는 <백년의 고독>과 <고래>를 잇는 작품이 바로 이 책이다. 그 어떤 작가보다 깊은 곳을 섬세하게 건드리지만 누군가를 불쾌하게 하지 않고도 재미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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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서
에르난 디아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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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세계가 제 1세계에 고유의 것을 하라고 요구하는 경우는 없다. 스웨덴 사람에게 바이킹 복장을 하고 시상식에 나오라거나 하는...... -정지돈,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61p

***

​과학과 철학의 근본적 질문으로 촘촘하게 엮어가는 어느 스웨덴 소년, 아니 미아의 미국횡단기는 리뷰어들이 코맥 매카시나 허클베리 핀을 외치게 했다. 이들의 이름은 알지만 읽어본 적 없는 나는 소설이 끝나고서야 춘희를 생각했다. <고래>의 춘희, 끝없는 혼자만의 작업으로 장인이 되어버린 벽돌공 춘희, 백 년의 고독 중에서 반 이상을 떠맡고도 공백으로 자리했던 춘희.

<트러스트>로 한국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에르난 디아스의 데뷔작 <먼 곳에서>는 철학박사인 그가 44세에 발표하자마자 단숨에 미국 문단을 사로잡았으며, 사유와 항해와 미국 로드트립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내게도 마력을 발휘하며 다가왔다. 게다가 이 섬세한 번역은 다름 아닌 <워터댄서>의 역자 강동혁 선생님의 작품이다.

***

삐삐 혹은 리스베트(스밀라)와 춘희가 연상되는 이 고독한 소년은 평생 성장하는 거구의 남자, 지키지 못한 소녀의 살인 누명으로 타락한 전설이 되어버린 거인, 사자 후드를 쓴 괴물이다. 그가 길 위에서 배우고 익힌 과학과 의술과 가죽공예와 사랑은 나머지 우리가 늘어놓고 흥정하는 나머지 모든 것들을 무색하게 한다.

깊이감 있는 미국소설이라면 그러하듯 전반부는 공부하듯 읽어야 하지만 핑고와 헬렌과 에이서를 통해 반복되는 그의 시련은 고통스러운 페이지터너였다. 그의 상실이 희석될 세월까지 따라잡으려면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아주 길다고 할 수 없지만 실제 분량보다는 충분히 영겁으로 느껴지는 세월을 지나 마침에 중년과 노년 사이의 어느 쯤에 와 있는 그를 본다.

***

​그들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뉴욕이었다. 아메리카에서 둘 다 이름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뉴욕이라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30p

​침대에서, 아픔을 느끼며, 혼자 있자니 기분이 좋았다. 리누스를 잃은 이후로 경험해온 대단히 깊은 슬픔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도 좋았다. 그는 슬픔과 편안함을 구분할 수 없었다.
-50p

​신은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다. 신은 인간이 된 무언가를 창조했다. -91p

로리머는 이민자 행렬이란 쭉 늘어나 가늘게 기어가는 선이 된 거대한 도시라고 했었다. 그 말이 맞았다. -152p

헬렌은 실제로 그 이름을 발음하려고 노력한, 아메리카의 몇 안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177p

마침내 슬픔이 그를 따라잡았다. 그는 절대 다른 사람들을 마주볼 수 없을 것이다. 한번 더, 혼자서, 텅 빈 공간에 서 있는 지금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216p

그러나 죽음이라는 선물이 주어지자 호칸은 중독된 근육을 마지막 하나까지 사용해 그 선물을 밀어냈다. -222p

하지만 세상이 돌아왔다. 에이서가 의미와 목적으로 찰랑거리는 세상을 다시 가져다주었다. -267p

그는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았다. 그냥 더이상 디딜 발걸음이 없었다. -284p

"걸었다." 호칸은 질문의 마지막 부분에만 대답했다. -304p

***

책을 '단숨에 읽었다'는 리뷰나 추천사를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 그럴 집중력이 내게는 없다. 그럼에도 어느 구간에서만큼은 '단숨에 읽게'되는 <백년의 고독>과 <고래>를 잇는 작품이 바로 에르난 디아스의 <먼 곳에서>다. 그러나 이 계보에도 치명적 오류가 있다. 디아스는 그를 은유하는 그 어떤 작가보다 깊은 곳을 섬세하게 건드리지만 누군가를 불쾌하게 하지 않고도 재미를 선사한다. 필력도 최고였지만 그의 생애에 새겨진 경험과 사유가 더욱 탐나는 작가다.

(문학동네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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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이름이라도 - 나의 생존과 운명, 배움에 관한 기록
임승남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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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을 관통한 극적인 요소는 그만큼 회오리처럼 20세기를 살아온 한반도의 민생 그 자체였다. 그러니 그 자신은 단지 그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동시에 이토록 평범한 사람이다.

그는 평범조차 힘들게 쟁취한 사람이다. 평범을 어찌 정의하냐는 문제가 있겠지만, 가정이라는 울타리와 긴급연락처가 있는 삶이 평범이라면 그는 평범을 쟁취하는 데 인생의 거의 전부를 바쳤다. 그리고 스스로도 뿌듯한 업적인, <전태일 평전>을 출판한 돌베개의 사장이 되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쓰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 마지막 과업이 가장 어려웠을 것 같다.

오해를 예방하기 위해 지인의 권유로 출판한 첫번째 자서전에는 진심을 그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렇기에, 굳이 한번 더 회고록을 낸다면 이번에야말로 저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내면의 고통과 죄책감이나 욕망까지 드러내고자 했을 것이다. 책으로 먹고 살 정도를 넘어서 섭외 1순위 영업부장이었던 저자도 본인의 진솔한 이야기를 쓰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다. 그 어려운 일은 해냈기에 그의 오늘이 조금은 더 뿌듯했으면 좋겠다.

절망과 굴욕의 80년대, 그중에서도 내가 기억할 수 없는 전반전의 이야기까지 평범한 사람의 관점으로 빠르게 돌아볼 수 있다. 만약 심장이 약해서 <1987>을 아직 못보고 있는 독자라면 그 해의 상황도 간략하게 볼 수 있다. 본격적으로 현대사를 다룬 전문서적은 사거나 선물받아도 쌓아두기만 하고 읽지 못했다. <이토록 평범한 이름이라도>와 <전태일 평전>이야말로 역사덕후가 아닌 평범한 책덕후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줄 책이 아닐까. 가방끈이 짧아서 서러웠지만 남부럽지 않게 유명한 책들을 팔아보고 만들어 본 옆집 할아버지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독자들이 그렇게 접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일반 아이들이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다니듯 나에게는 아동보호소, 소년원을 거쳐 서대문교도소에 들어 오는 것이 정해진 코스였다. -43p

​이는 씨를 말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성시키는 일이었다. 감옥에 한번 들어오고 나면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혀 본격적으로 도둑질의 길로 들어서는 경우가 많았으니 말이다. -54p

​나 역시 저 국화꽃처럼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음지에서 자랐지만, 어떻게든 발버둥을 치다 보니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게 되었구나. 가슴이 벅차오르며 한없이 뿌듯해졌다. -84p

​내려놓을 것이 별로 없어서일까, 나는 남들보다 쉽게 뇌를 맑게 비우고 최상의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97p

나 같은 놈이 평범한 인간으로 변신하면 이 사회의 물이 조금은 맑아지는 줄로만 알고 죽기 살기로 발버둥 쳤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을 노예나 머슴처럼 다루고 부려먹는 또 다른 이들이, 실은 부모의 사랑도 받고 교육도 정상적으로 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144p

​지금 이곳 사람들은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면 숨을 쉬고 살아갈 수가 없기에 가슴에 있는 한을 누른 채 살고 있는 겁니다. -185p

전태일 열사의 원고는 나이 어린 미싱사와 시다들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노동부나 서울시청 같은 곳을 찾아다니다 한계에 부딪히자 스스로를 불사른, 가장 순수한 이웃 사랑 이야기라는 판단이 들었다. -194p

​간첩은 잡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다. 고기를 잡다가 실수로 북방한계선을 넘어가 북한에 억류되었다가 풀려나온 어부들도 사회가 어수선하면 다시 잡혀 들어가 온갖 고문을 거쳐 고정간첩으로 재탄생되곤 했다. -201p

​나는 점잖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둑질이나 하며 구질구지란 절도 죄명으로 들어오다가 국가보안법으로 들어왔으니 스스로 흐뭇했던 것이다. -227p

*

​인간다움을 쟁취하고 본연의 순수함을 발견한 그의 여정은 오직 그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기에 더욱 소중하다. 오히려 활자가 풍족한 시대에 우리 자신의 언어를 확보하는 일을 게을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새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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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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