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웨이 - The way
바이즈 지음 / 바른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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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유하는 좋은 부작용이 있는 책이지만 치유를 목적으로 읽어서 그 효과를 보기는 어려울 듯 하다. 책을 거듭 읽으면 읽을 때마다 호흡이 안정되고 심신이 편안해진다. 책을 가지고 있다면 부디 ‘마음을 열고‘ 다시 읽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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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웨이 - The way
바이즈 지음 / 바른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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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큰이모는 시각을 잃은 후 얻게 된 예민한 다른 감각들을 활용해 큰이모가 느끼는 풍경을 언니에게 묘사해주었다. 바람이 어제보다 부드럽고 가볍구나. 눈 때문이지 사방에서 지난여름 우리가 쪼개 먹었던 수박 향이 나는구나. 까치 소리가 평소보다 가깝게 들리는구나. "엄마가 묘사해주던 그 세계 역시 정말로 아름다웠어." -백수린, <빛이 다가올 때>


대화(dialogue)는 쌍방향이라는 점에서 독백(monologue)이나 강의(lecture)와는 다르다. 일방향의 말하기는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야기의 중심이 화자에게 치중되어 있고, 만약 화자가 청자를 충분히 배려하지 않거나 청자가 화자에게 적개심을 가진다면 이야기는 전달되지 않거나 왜곡되기 쉽다. 쌍방향의 말하기가 지속되려면 대화의 중심에 화자와 청자가 공존하는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Are we on the same page?"

다시 말해, ​"알겠어?"라는 질문이 반복적으로 등장해야 한다. <더 웨이>는 일방적으로 전달했을 경우 추상적이고 모호할 수 있는 이야기를 대화의 형식으로 이어가고 있다. 노인이 전달하는 이야기를 알듯말듯 하지만 노인이 반복해서 풀이하고 묘사하는 동안 화자는 노인의 페이지에 가까워진다. 이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면 독자도 노인의 페이지에 가까워진다.

저자의 전작인 <나를 잃어버려도 괜찮아>에서 언급했던, 활자를 읽고 기억하는 차원의 독서에 '에고'를 투입하여 모르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도덕경의 핵심 내용이 이어지지만 <더 웨이>는 조금 다른 차원으로 진행된다. 몸과 마음의 관찰은 내가 거대한 우주 혹은 자연의 흐름 속에서 찰나의 순간을 머물고 사라질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투영되는 지식과 감정을 책이나 외장하드로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 것도 아님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너무 많은 것에 감정이입을 하던 시간들이 끝나간다. 우리 모두는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싶어하지만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분류'되는 순간 그 분절 속에 갇힌다.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님이 우리의 본질이자 무소속의 자유가 아닐까. 우리라고 칭하는 데 별다른 이유는 없다. 이 이야기가 독백이나 일방적인 설명, 혹은 어떤 권위를 가지고 하는 평가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그런 명분조차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는 '아무 것도 아님'의 자유로움을 함께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자유도 혼자만 누리면 외로운 법이거늘.

*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의식은 한 번에 한 가지 대상만을 인식한다는 점이야. -19p, 내면의 관찰

행위를 하는 '행위자인 나'라는 것이 없으니, '나의 이익'도 없고, '나의 자부심' 등등도 당연히 없을 거야. 그렇기 때문에 살지만 소유하지 않을 수 있는 거야.
-57p, 문제의 근원

쉽게 말해서, 악하다는 것은 마음이 닫혀 있다는 거야. 선(善)은 그와 반대로 마음이 열려 있다는 것으로 생각해도 좋을 거야. -83p, 수행

재미있는 사실은 마음의 긴장이 몸의 긴장을 일으킨다는 거야. 물론 몸의 긴장은 역으로 마음의 긴장을 일으켜.
-141p, 긴장과 이완

감각을 경험하는 시간은 개인차가 있고, 부딪힌 강도 차이도 있을 수 있어. 그러나 그 감각이 결국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경험을 하게 될 거야.
-190p, 나라는 것

우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마음은 나의 것이라 주장할 수는 있어. 그렇지만 마음이 곧 나라고는 할 수 없는 거야.
-203p, 나라는 것

먼 곳에서 온 친구를 만난 '나'도 기쁘고, '나'를 찾아온 그 '친구'도 기쁠 거야. 기쁨은 본디 공명하니까.
-219p, 수행의 성취

있는 그대로 그 순간을 그 자체로 존재하는 자.
-223p, 수행의 성취



<더 웨이>는 마음을 치유하는 좋은 부작용이 있는 책이지만 치유를 목적으로 읽어서 그 효과를 보기는 어려울 듯 하다. 책을 거듭 읽으면 읽을 때마다 호흡이 안정되고 심신이 편안해진다. 책을 가지고 있다면 부디 '마음을 열고' 다시 읽어보기를. 어떤 키워드로 설명하지 않아서 더 좋은 책인데, 바로 그런 이유로 나 역시 한줄평이 불가능한 책이다. 그저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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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잃어버려도 괜찮아 - 개정판
노자 지음, 바이즈 옮김 / 바른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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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견해 등을 나라고, 혹은 나의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 원인이야. 생각은 그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고, 견해는 그저 어디선가 듣거나 읽은 지식의 모음일 뿐인데, 그것을 내 생각, 내 견해라고 집착하기 시작하고, 그 허상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고 감히 행동해. -179p, 삶과 죽음에 대해 2

*

싸이월드 영화평을 블로그에 옮기려고 생애 첫 블로그를 만들었다. 개시도 못하고 삭제된 그 블로그의 이름은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였다. 이 말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다른 모든 시적인 표현과 마찬가지로.

*

그리고, 도덕경은 '시'입니다.

(중략)

노인이 말하는 것을, 독자가 그대로 듣게 하고 싶었습니다. 노인은 단순하고, 쉽고, 명쾌하며, 위트있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며, 또 재미있게 독자에게 이야기를 건넬 것입니다. -5p, 서문

*

시카고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배경으로 산책 사진을 올리면 '드레스 예쁘네요'라는 댓글이 달린다. (많지는 않다.) 예쁨은 아무리 받아도 질리지 않고, 그 맛에 사진을 올린다. 난 허세가 충만하지만 거짓말은 안한다. '아니에요~ㅁㅁ님이 더 예쁘세요.'와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그냥 고맙다고 한다. 봐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

걸으면서도 생각하고, 누워서도 생각하고, 시간이 많은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고민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 과정에 대한 가장 좋은 표현은 '문장이 알아서 마음속에서 해석되기를 기다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p, 글을 마치며

*

고전을 각잡고 덕질해본 적이 있는가? 바이즈 작가는 자신의 언어로 소화할 때까지 <도덕경> 원문을 무한반복했다. 가장 현대적이고 가장 쉬운 일상의 언어로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들에게 남다른 초독을 선사한다. <도덕경>의 취지에 어긋나는 내 자랑은 않겠다. 이 책은 '책에 의존하지 않는 책덕후들의 책'이다.

노인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을 해설자인 바이즈 작가의 현대 한국어를 따라서 떠올리면 된다. 하지만 어떤 해설서는 해설자의 박학다식이 시선강탈을 하고 어떤 책소개는 소개자의 말끔한 미모가 시선강탈을 할 것이다. 책을 읽는다고 책에 담긴 의미나 지혜가 한번에 기억될리 만무하고, 기억된다 한들 그것은 독자의 지식이나 생각이 아니다. 실행과는 거리가 있다.

<나를 잃어버려도 괜찮아>는 노인의 위트, 노인의 개그욕심까지 읽어내고 전달하는 책이다. 동의하고, 기억하고, 실행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나 썼다고 자랑하거나, 읽었다고 자랑하기 위한 책은 아니다. 노인이 어찌나 자랑을 하지 말라고 반복하시는지! 자랑에 살고 자랑에 죽는 나는 자랑의 뒷면에 자리한 그림자를 직면해야 했다. 자랑을 안 하지는 못하겠고, 자랑을 대하는 마음에서 그림자를 걷어보려 하는 중이다.

나의 서재가 곧 나를 의미한다는 생각은 자아비대증을 부른다. 서재는 인적 네트워크일 뿐이다. 내게 지혜가 부족할 때 지원을 해줄 수 있는 보조배터리 같은 언어 창고다. 내적친밀감만 있는 지인인 듯 지인 아닌, 작가들의 언어 창고. 그걸 '내 생각'인양 말하는 행위는 기만이다. 스펙트럼이 넓은 서재는 나의 포용력일 수도 있지만 지적 허세일 수도 있고 그저 물욕일 수도 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종이가 귀해서 책 욕심을 가지지 않는다. 책에 부여되는 여러 의미 때문에 물욕의 연장선에서 책을 들인다. 다른 물건보다 소비의 죄책감이 훨씬 적기도 하고.

*

언어에 얽매이지 말고,
'생각'과 '언어'와 '나'라는 동일시를 한 번 멈춰봐.
그렇게 할 수 있으면,
'나 없음', '도', '무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경험해 볼 수 있을 거야.
-87p, '도'는 개념이 아니야

*

두 사람의 대화라는 형식을 취함으로 흔한 오류를 사전에 방지한다. 해설자는 책을 매개로 독자와 노자를 이어줄 뿐이다. 나를 잃어버려도 괜찮다니까. 독자는 노자의 목소리를 자신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시대의 모국어로 들을 기회를 가진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읽다가 좀 쉬고 산책하고 낮잠을 잔 후에 다시 읽어보자. 읽다가 나를 잃어버려도 괜찮으니까. 책을 마주하고 멍때렸다면 다음 날 다시 읽어보자. 원래 '시'는 그런 거 아닌가.

어려운 책을 해설하는 대단한 '나'가 아닌 잃어버려도 괜찮은 '나 없음'의 수고로움으로, 기댐에 사랑으로 보답하는 해설자 바이즈 작가의 마음은 바다와 같다. 때로는 달이 아닌 손가락을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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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잃어버려도 괜찮아 - 개정판
노자 지음, 바이즈 옮김 / 바른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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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대화라는 형식을 취함으로 흔한 오류를 사전에 방지한다. 해설자는 책을 매개로 독자와 노자를 이어줄뿐이다. 나를 잃어버려도 괜찮다니까. 독자는 노자의 목소리를 자신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시대의 모국어로 들을 기회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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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소리를 듣다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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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장소를 찾아간 주인공은 17년 전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그때 만났던 사람, 그 사람 때문에 고초를 겪으면서도 그 사람이 궁금해서 다니게 된 학교, 그 곳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와 그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세계. 무엇보다도 '관계'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과정이 독특하면서도 아련했다. 한글 책을 읽지 않던 시기에도 단숨에 읽어버린 친구 추천작 <아몬드>가 생각나는 관계였다. 아픈 아이와 상처입은 아이의 서툴지만 소중한 우정은 사건과 별개로 작품의 긴장감과 감성적 풍성함을 담당한다.

그 소년들이 사건을 하나씩 해결하는 과정은 아주 느리게 시작해서(물론 내가 느리게 읽어서 그렇게 느꼈지만) 점점 대차게 조여온다. 특히 부모의 이혼으로 헤어진 자매를 만나면서 두 주인공의 결속과 작품의 구심력이 수직상승한다. 이 자매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흥미와 소름을 담당한다.

상처입은 아이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스포일러 형님의 등장도 재미있다. 그와 함께 동물과 특히 식물의 다양한 명칭이 등장한다. 아래의 인용문에도 포함된 정원과 숲에 대한 묘사는 활자를 통한 산림욕과 독자의 상상력 확장을 담당한다.

손원평의 <아몬드>에 겹쳐지는,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스타일 2인조 브로맨스에 의외로 잘 어울리는,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처럼 나무나무한 묘사(영어로 읽었는데 나무 이름이 너무 많이 나와서 앞부분을 천천히 읽었고 뒤로 갈수록 빨라졌다.) 한 스푼이 들어간 감성 로맨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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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코가 특별히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아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얀 손으로 마트료시카 인형을 분리해 테이블에 늘어놓는 모습이 마치 정리되지 않은 자신의 자아를 하나씩 꺼내는 것 같다. 색 바랜 슬픈 얼굴의 마트료시카 인형 다섯 개가 테이블에 나란히 놓였다. 유리코는 그중 제일 작은 인형의 이마를 손끝으로 쿡 찔렀다. -81p

어제 다이고에게 '집사란 무엇인지' 설명해 줬지만 설명할수록 현실과는 동떨어진 느낌이라 나도 점점 헷갈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일본의 직업 체계에서는 생소한 일이고, 원래 영국 상류층 집 안의 가사 도우미 직종 중 최상급 지위에 있는 이를 뜻하는 단어로 쓰였다. -126p

정원 너머로 구릉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 풍경을 배경 삼아 정원을 보다 보면 자연의 정취가 물씬 풍겨서 마치 숲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도 들었다. 떡갈나무와 물푸레나무, 매화오리나무 등 구릉지에서 본 고목 아래에 갈참나무와 누리장나무 등 키 작은 나무들이 자라 있다. 잡초들도 마음껏 고개를 뻗었고 그 안에 주황색 백양꽃이 핀 게 보였다. 꽃 위에는 제비나비가 날고 있었다. -134p

"곤줄박이는 먹이를 숨겨 둔 장소를 기억해 뒀다가 대개 겨울이 되면 꺼내 먹는데 그래도 몇 개는 먹다가 남기죠. 그것들이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 땅에 얕게 묻히면 봄에 싹을 틔워요. 상대를 이용하는 쪽이 관연 곤줄박이일까요, 때죽나무일까요." -1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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