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소리를 듣다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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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장소를 찾아간 주인공은 17년 전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그때 만났던 사람, 그 사람 때문에 고초를 겪으면서도 그 사람이 궁금해서 다니게 된 학교, 그 곳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와 그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세계. 무엇보다도 '관계'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과정이 독특하면서도 아련했다. 한글 책을 읽지 않던 시기에도 단숨에 읽어버린 친구 추천작 <아몬드>가 생각나는 관계였다. 아픈 아이와 상처입은 아이의 서툴지만 소중한 우정은 사건과 별개로 작품의 긴장감과 감성적 풍성함을 담당한다.

그 소년들이 사건을 하나씩 해결하는 과정은 아주 느리게 시작해서(물론 내가 느리게 읽어서 그렇게 느꼈지만) 점점 대차게 조여온다. 특히 부모의 이혼으로 헤어진 자매를 만나면서 두 주인공의 결속과 작품의 구심력이 수직상승한다. 이 자매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흥미와 소름을 담당한다.

상처입은 아이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스포일러 형님의 등장도 재미있다. 그와 함께 동물과 특히 식물의 다양한 명칭이 등장한다. 아래의 인용문에도 포함된 정원과 숲에 대한 묘사는 활자를 통한 산림욕과 독자의 상상력 확장을 담당한다.

손원평의 <아몬드>에 겹쳐지는,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스타일 2인조 브로맨스에 의외로 잘 어울리는,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처럼 나무나무한 묘사(영어로 읽었는데 나무 이름이 너무 많이 나와서 앞부분을 천천히 읽었고 뒤로 갈수록 빨라졌다.) 한 스푼이 들어간 감성 로맨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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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코가 특별히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아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얀 손으로 마트료시카 인형을 분리해 테이블에 늘어놓는 모습이 마치 정리되지 않은 자신의 자아를 하나씩 꺼내는 것 같다. 색 바랜 슬픈 얼굴의 마트료시카 인형 다섯 개가 테이블에 나란히 놓였다. 유리코는 그중 제일 작은 인형의 이마를 손끝으로 쿡 찔렀다. -81p

어제 다이고에게 '집사란 무엇인지' 설명해 줬지만 설명할수록 현실과는 동떨어진 느낌이라 나도 점점 헷갈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일본의 직업 체계에서는 생소한 일이고, 원래 영국 상류층 집 안의 가사 도우미 직종 중 최상급 지위에 있는 이를 뜻하는 단어로 쓰였다. -126p

정원 너머로 구릉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 풍경을 배경 삼아 정원을 보다 보면 자연의 정취가 물씬 풍겨서 마치 숲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도 들었다. 떡갈나무와 물푸레나무, 매화오리나무 등 구릉지에서 본 고목 아래에 갈참나무와 누리장나무 등 키 작은 나무들이 자라 있다. 잡초들도 마음껏 고개를 뻗었고 그 안에 주황색 백양꽃이 핀 게 보였다. 꽃 위에는 제비나비가 날고 있었다. -134p

"곤줄박이는 먹이를 숨겨 둔 장소를 기억해 뒀다가 대개 겨울이 되면 꺼내 먹는데 그래도 몇 개는 먹다가 남기죠. 그것들이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 땅에 얕게 묻히면 봄에 싹을 틔워요. 상대를 이용하는 쪽이 관연 곤줄박이일까요, 때죽나무일까요." -1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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