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책 '어린왕자'는 읽지 않은 사람은 있을지언정 모르는 사람은 없을거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 읽었고 이후 책의 자주 인용되는 부분들로 인해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책이었어요. 이 책은 실제로 다양한 전문가들이 관련된 해설서를 내고 아직까지도 조금씩 새롭게 번역한 버젼도 나오고 있음에도 잘 알고있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리 관심이 가는 책은 솔직히 아니었답니다. 근데 제가 애정하며 구독하고 있는 한 채널에서 이 책의 저자를 모시고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듣고는 지금까지 제가 이해했던 내용들이 피상적이었구나 생각하며 감사히 서평단에 신청하였습니다,
이 책은 숫자에 갇힌 어른들에 대한 해석을 서술하고 있어요.
계량화되는 세계와 계랑화되지 않는 질적인 삶의 세계 사이에 소통이 단절될 때 불행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원망할 것인가?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심한 어른들을 너그러이 봐주는 것밖에 없다.
p 67
작가는 이 모습이 현재 우리 사회구성원들의 모습이라고 지적하죠. 학벌이나 연봉, 심지어 SNS 팔로우 수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 이로 인해 중요한 것, 보이지 않는 본질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 부분은 이후 어린왕자가 만나는 다양한 소행성 사람들에 대한 해석 중 일부에서도 드러나고 있어요. 어린왕자가 만난 사업가는 별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고 끝없이 계산만 하면서 정작 별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끼지는 못하죠. 작가는 이 모습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공허함을 보여준다고 지적합니다.
제가 이번에 놀랐던 점은, 어린왕자의 결말 부분이었어요. 다들 어린왕자가 어떻게 다시 본인의 별로 돌아갔는지 기억하시나요? 전 이렇게 슬픈 결말이었다는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답니다. 어린왕자는 서로에게 길들여진 장미를 위해 황색 뱀에게 자발적으로 물림으로써 돌아갔지요. 장미에 대한 책임감을 다하기 위해서였겠지요?
모든 생명은 덧없다. 그리고 덧없기 때문에 소중하다. 이 덧없는 삶을 누군가는 아침 햇살에 사라지는 맑은 이슬 한 방울처럼 찰나의 삶이라고 말하기도 할 것이다. 결국 삶이 소중한 까닭은 그것이소멸하는 것이기 떄문이다. 사람이 소중한 까닭은 소멸하는 생명에 대한 기억을 더 오래도록 추억 속에간직해 주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어른은 나이가 든 사람이 아니라 죽음을 직, 간접적으로 마주해보고 소멸과 상실을 이해하면서도 끝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 같아요. 어린왕자는 사라졌지만 조종사는 죽을 때까지 그를 기억하며 살아가겠죠. 어린왕자와 관계를 맺었으니까요. 이렇게 기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마음이 화자가 말하고자 한 어른의 조건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 책은 어린왕자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그리고 특히나 종종 마음이 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읽어보면 좋겠어요. 또 저처럼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를 이해하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아이의 말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버리고 쉽게 넘어가버리곤 하는 사람에게 아이의 따뜻한 마음과 시선을 잃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에게도 추천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