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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드레스를 입은 악마
월터 모슬리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24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되었다. 1940년대 미국만큼은 아니더라도 1990년대의 한국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던 나에게 일상에 만연한 그리고 내재된 폭력의 짙은 향기와 냄새를 이 작품을 통해서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되었다. 그런 시절에 달갑지 않았음에도 이 작품에서 깊게 배어 있는 짙은 폭력의 채취가 반가움으로 느껴지는 건 이런 하드보일드함의 그리움에서 기인하는 거로 생각한다.
마성의 여인으로 묘사된 데프나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의 반전은 작품 전체를 뒤집는 전복감을 주는 이 작품의 백미라 생각한다. 그 순간부터 이야기 전체가 다르게 보이는 힘을 주는 정도로 단순한 의미에서 정체가 드러난 미스터리를 풀었다가 아니라 등장인물이 처한 세계의 윤리와 감정의 무게까지도 한 번에 뒤흔드는 느낌을 준다.
마무리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하드보일드 특유의 비정하지만, 응축된 마무리가 요즘 작품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매끈하게 잘 떨어진 느낌이다. 무심하면서 가벼운 느낌으로 끝나는 마지막 대화를 그 뒤에 남겨진 공허와 여운을 자연스럽게 감당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