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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물었던 기억은 있는데 대답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내겐 내가 하는 질문만 중요한 것일까. 애초부터 나는 상대의 대답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처럼, 단지 대화는 두 사람 사이에 말없이 존재하는 시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도구 그 이상은 아닌 것처럼 상대의 대답이 전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마사카즈와 하야토의 대화도 그랬다.

"에이 참... 내가 말했잖아. 기억 안 나?" 마사카즈는 매번 하야토에게 묻는다. 두 사람은 같은 방에 기거하는 절친한(?) 회사 동료사이이다.

한편 블루칼라인 철근공 하야토와 화이트칼라인 설계사 이누카이. 이 두 주인공은 같은 업계에 종사하면서도 전혀 다른 삶을 보내고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이 있지만 모두 다 공허하긴 매한가지라는 듯, 각자는 나름대로 고독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매일 같은 일상들인데 읽고 있자니 묘하게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나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두 주인공에 어렴풋이 내가 겹쳐진다.

느닷없이 시작된 카운트다운을 의아해하면서 읽었는데 점점 그 템포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카운트다운의  끝에 만나게 되는 어떤 사건(여기서 밝히는 건 소설에 대한 예의가 아닐 듯 하다)과 그 사건을 바라보는 냉정한 소설의 시선으로 책을 덮고 나니 잠시 멍해진다.(<퍼레이드>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리고 먹먹해진다. 이리도 무거운 주제를 이렇게도 가볍게 그리다니. 그 맛에 요시다 슈이치를 읽는지도 모르겠다. 요시다 슈이치를 만나는 일이 계속 즐거운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눈치 채지 못한 사이 조금씩.. 천천히.. 깊숙하게 파고들어와 가슴에 휑한 구멍을 내고는, 너무도 빨리 스윽 빠져나갔다. 그 동공을 메우는 것은 마치 네 몫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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