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권영주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소년은 아래위 입술이 붙은 채로 태어났다. 수술로 입을 벌리고 입술에는 정강이의 피부를 떼어 이식했기 때문에 입술에 솜털이 자란다. 그래서 학교에서 종종 놀림을 받곤 했다. 과묵하고 고독한 소년은 현실에는 없는 어린 소녀 미라와 백화점 옥상의 코끼리 인디라를 친구 삼아 지낸다. 인디라는 어릴 적 인도에서 왔다가 너무 커져버리는 바람에 백화점 옥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생을 마친 코끼리이고, 미라는 집의 벽과 벽의 틈에 끼여 빠져나올 수 없게 된 소녀다.

소년은 한 사건을 계기로 폐버스에 살고 있는 덩치 큰 전직 운전사로부터 체스를 배우게 되면서 재능을 꽃피운다. 그러나 그도 코끼리처럼 거대한 몸 때문에 죽고 만다. 그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구경꺼리가 된다.  

'커지는 것은 비극이다.' 

그날 이후 소년은 이 한 줄을 마음에 새기고 더 이상 몸이 커지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체스판 아래 몸을 감추고 전설적인 체스 기사 알레힌을 본떠 만든 '리틀 알레힌'이라는 인형을 조작해 체스를 두는 삶을 산다. 어떤 상대를 만나든 시처럼 아름다운 기보를 남긴다 하여, 그는 '반하의 시인'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는 오가와 요코의 작품 중에서도 <박사가 사랑한 수식>류의 성장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어딘가 환상적이면서 동화적인 세계가 오가와 특유의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져, 마치 장면장면이 눈앞에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기에게 닥친 시련을 아무런 불평없이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고 받아들이는 등장인물들의 의연한 모습과, 특히 말과 말이 아닌, 마음과 마음의 소통이 따뜻하고도 감동적으로 느껴진다.   

'작은 존재가 세상에 발하는 아주 커다란 기적.'  

책을 덮는 순간, 따뜻하고 아릿한 감정이 마음을 꽉 채우는, 오랜만에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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