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오늘의 일본문학 5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주목받는 일본의 젊은 작가, 이사카 고타로. 에쿠니 가오리, 오쿠다 히데오, 요시다 슈이치, 가네시로 가즈키 등, 이름만으로도 기꺼이 책값을 지불하게 되는 ‘보증된’ 작가. 그의 신작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를 읽었다.

감상은, 더도 덜도 아닌, 띠지에 있는 문구 자체였다.

 

통쾌【痛快】 1) 아주 시원하여 유쾌함. 가슴이 상쾌하여 아주 유쾌하다고 느낌. 혹은 그러한 모양. 2)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를 읽은 모든 독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뱉는 찬사.


이 책의 주인공들은 네 명의 갱, 곧 은행강도들이다. 평소에는 공무원으로, 카페 주인으로, 또 파견직 사원으로 평범하게 살아가지만, 이들은 저마다 독특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 한번 뭉쳤다 하면, 이 능력을 발휘하여 멋지게 은행을 턴다. 그렇다고 유혈이 낭자하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느냐? 그렇지 않다. 이들의 제1원칙은 ‘아무도 상처 입히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4분 혹은 5분. 인생에서 아주 귀중한 시간이지만, 그리 큰 지장을 초래할 정도는 아닌 그 시간 동안 얌.전.하고 심.플.하게 은행을 턴다. 그날도 이들은 순조롭게 은행을 털고 돌아가는 중이었지만, 황당하게도 그 노획물을 강도당하면서 예상치 못한 사태에 휘말리게 된다.


이 소설은, 마치 1시간 30분짜리 영화를 보듯 스피디하게 흘러간다. 이사카 고타로의 문체는 4인조 ‘명랑한 갱’들이 바로 눈앞에서 활극을 벌이고 있는 듯 생생하다. 쿨하고 스마트한 이들의 플레이를 쫓아가다보면, 어느새 책을 덮고 마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난 첫 느낌은 ‘유쾌하고 상쾌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이 가진 진정한 맛은, 코미디 영화처럼 가벼운 스토리 속에, 자폐아 문제나 왕따 문제, 거짓 명분으로 전쟁질이나 하는 저 먼나라 대통령, 판단력 부재의 일본인, 우리의 고정관념, 은행의 문제 등, 이 활극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보이는 테마를 이질감 없이 녹여낸 작가의 재치에 있다고 하겠다. 또한 생각하게 하는 대사들도 재미를 더한다.

가령, 이렇다.

“겉모습이라는 건 중요하지.” “사람들은 그렇게 겉모습에 속기 쉽다.” p.22


인간에게는 교육욕이란 게 있다. 한 번뿐인 인생살이에 자신이 없으니, 남 앞에서 선생이라도 된 양 떠벌이고는 안심하는 것이다. p.27


사람들은 단시간에 조종하기 위해서는 그 나름의 채찍질이 필요하다, 고 나루세는 이따금씩 말한다. p.49


은행 금리는 알고 있겠지? 소수점 이하의 퍼센트는 없는 것과 같잖아. 더군다나 페이오프라나 뭐라나 그런 말들까지 나오고 있어. 고객의 예금을 보호하지도 못하는 게 무슨 은행이야. 은행이라는 건 원래 ‘이자를 받으려고’ 이용하거나 혹은 ‘믿고 돈을 보관하기’위해 존재하는 곳 아닌가? p.54


올바른 것이 늘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건 아니에요. 55p.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재치가 돋보이는 단어풀이가 특히 재미있었다. ‘회의’에 대해 ‘회사원의 노동시간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 참가자 수에 비례해 시간이 길어짐. 목소리 큰 사람이 주도권을 잡음. 효과적인 결과를 얻는 경우는 드물고 막판에 보면 시작 전 상태로 돌아가 있는 경우도 많음’이라고 정의내린 부분에서는 일종의 통쾌함마저 느껴졌다.

이것이 재치덩어리 이사카 고타로의 힘이자 매력인 것이다.

가볍게만 보이는 명랑한 갱단의 분투를 쫓다보니, 교노의 장황한 연설을 들은 느낌이다. 황당무계하고 엉뚱하지만, 듣다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가볍지만 진실이 들어있는 교노의 연설처럼, 가벼움을 가장한 이 소설에는 ‘올바른 것이 늘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건 아니다’라는 작가의 심원한 메시지가 숨겨져 있는 것도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