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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러멜 팝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늘 느끼는 것이지만,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은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담담하고 특별할 것 없는 주인공들의 일상을 좇다보면 어느새 나와, 나의 일상과 마주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하나의 이야기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듯,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에는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리고 그의 신작 <캐러멜 팝콘>을 읽은 지금, 너무 많은 감상들이 뒤섞여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소설은 신도 레이, 오지 나오즈미, 오지 게이코, 오지 고이치라는, 한 가족을 중심으로 엮인 네 사람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각각의 시점에서 저마다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은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느라 바쁘고, 어떤 사람은 자기 찾기에 바쁘며, 또 다른 사람은 허한 마음을 어떻게도 달랠 수 없어 이것저것에 의지하고, 또 한 사람은 표현할 수 없는 사랑으로 쓸쓸하다.
“행복하지만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는 말인가요?”라는 레이의 물음에,
“엄마는 줄곧 아빠에게 사랑받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라는 게이코 엄마의 중얼거림에,
둘이 살아가면서도 “둘 다 혼자 사는 것 같다”고 하는 게이코의 말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강한 척 살아가면서도 뭔가 마음 둘 곳을 찾는 주인공들의 몸짓에...
구절구절 절절히 공감하며 읽어나갔다.
직접 설명하지 않지만 전해져오는 주인공들의 감정. 그래서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은 주인공들에게 더 아프게, 더 절실히 공감할 수 있는 것도 같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화목한 한 가정이 실은 어쩌면 그들의 유대 자체를 해칠 수 있는 위험한 비밀로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을 목도했을 때의 충격. 그리고 이들의 앞으로의 삶이 이 사계절의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쓸쓸한 예감.
소설은 지금껏 작가가 다뤄온 테마인 ‘현대인이 지닌 깊은 공허함’에 대해 또 한 번 예리한 시선을 던지지만, 이번에는 이들의 삶이 팍팍하거나 황량하게만 다가오지는 않았다.
중반, 이들의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할 때는 씁쓸하기만 하던 이야기가 마지막으로 접어들면서 점점 포근해지고, 소설을 읽고 난 다음에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렇게 걱정하지 마, 자신감 같은 것 없어도 돼’ 하고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격려를 받은 느낌이랄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 하지만 따뜻함을 남기는 소설.
내가 읽은 요시다 슈이치 작품 <퍼레이드> <동경만경> <7월 24일 거리> <랜드마크> <거짓말의 거짓말> <비밀>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았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