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라, 네가 누구인지를 - 세례를 받는 모든 이에게 비아 에세이
윌리엄 윌리몬 지음, 정다운 옮김 / 비아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이 왜 이제 출간되었나?”

<기억하라, 네가 누구인지를(Remember Who You Are)>을 읽으며 몇 번을 되뇐 말이다. 이 질문을 반복해서 던진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원서가 ‘1980년’에 출간되었다. 나보다 먼저 세상에 등장한 책인데, 이 책이 굳이 국내에 출간되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매일, 매달 좋은 책들이 쏟아지고 있는 출판계에서 굳이 40년 전 출간된 영미권 책을 국내에 소개할 이유가 있었을까? 책을 읽으며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하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둘째, ‘윌리엄 윌리몬’의 단독저서이다. (평신도인 내 관점으로 보자면) 윌리엄 윌리몬이라는 이름은 스탠리 하우어워스와 함께 쓴 책들(<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2006년), <십계명>(2007년),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2008년), <성령>(2017년)(이상 복 있는 사람 출간))이 국내에 하나 둘씩 소개되며 조금씩 알려졌다. (평신도들에게) 세계적인 신학자의 공저자 정도로만 기억되어도 영광이지 않은가? 굳이 그의 단독저서가 나와야 할 이유가 있는가? 혼자서 집필한 책이 이미 국내에 소개된 바 있지만 ‘설교’나 ‘목회’ 분야로 그 영역이 제한적이었다. 이 책은 탁월한 설교자이자 저술가, 실천신학자인 그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셋째, ‘세례’에 관한 책이다. 다른 많은 주제 혹은 예식들 중 왜 하필 세례인가? 그리고 세례에 관해 이야기 할 것이 얼마나 되는가? 세례는 그리스도교 입교 시 중요한 관문이지만 그 의미는 충분히 공유되지 않은 채 세례문답과 예식 절차가 바쁘게 진행되기도 한다. 세례의 성경적, 공동체적인 의미를 충분히 설명해줄 수 있는 도구(책)의 부재도 아쉽다. 이 책은 중요하지만 누구도 속 시원히 알려주지 않은 ‘세례가 가진 함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이유로 본다면, 이 책이 왜 이제 나타났느냐가 아니라) “지금에라도 출간되어 감사하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이든, 후든 세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안타깝게도 나는 그렇지 못했다. 핑계를 댄다면, 그럴 기회 혹은 계기 혹은 도구가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기억하라, 네가 누구인지>는 세례가 우리의 삶, 우리의 믿음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명료하게 알려준다. 저자는「들어가며」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책이며 생명에 관한 책입니다. 그렇기에 세례에 관한 책, 물에 관한 책, 정확하게는 ‘물과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세례에 관한 책이기도 합니다. 저는 세례가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모습이며, 어떠한 방식으로 드러나는지를 알려준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 책을 썼습니다(8p).”
책의 시작에는 2세기 무렵 로마 가정 교회에서 행하던 ‘세례 장면’이 묘사된다(이 부분은 <고린도에서 보낸 일주일>(벤 위더링턴 3세, 이레서원), <1세기 교회 예배·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로버트 뱅크스, IVP)처럼 가상의 이야기로 구성되었고, 짧지만 무척이나 흥미롭다). 초대교회에서의 세례는 ‘복잡하고 고된 과정이었고, 회심과 성장이라는 긴 과정의 정점이자, 교회에 가입하는 것’을 의미하였다(1장). 세례는 우리가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할지라도 ‘우리가 누구인지 정의’하는 의례이다. 세례 받은 우리의 정체성은 바로 ‘왕족’이다(2장).
상당수의 모태신앙들이 어릴 때 세례를 받아 성인이 된 지금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세례는 구원을 확증하는 인장을 찍는 행위이자, 주님의 활동이기에 우리의 ‘주관적인 느낌’으로 인한 ‘재세례’는 불가능, 혹은 반복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이미 그분 안에 있다(3장). 세례는 ‘자녀양육’과도 연결된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을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에게 신앙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를 놓아주지 못한다. 윌리몬에 따르면 세례는 ‘놓아주는’ 시간이다. 언젠가는 더 좋은 선생, 성직자, 친구들에게 아이를 보내주어야 한다. (교단에 따라 입장 차이를 보이는) ‘유아세례’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다룬다(4장).
현대사회에서는 ‘죄’를 무지로 인한 문제 혹은 극복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죄’ 그 자체이며, 우리의 죄인됨이다. 세례는 우리가 죄에 빠져있음과 그리스도의 온전한 속죄를 드러낸다(5장). “구원은 공동체의 산물이며 공동체적으로 받는 선물(113p)”이다. “세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를 상기(113p)”시킨다. 그렇게 세례와 공동체성,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의 유아세례에 대해 한 번 더 말한다(6장).
신-오순절 운동의 영향은 ‘방언 은사’를 ‘성령 세례’라 칭하는 흐름을 낳았다. 우리는 “세례 이후 받게 되는 성령의 산물이나 회심 체험, 견진과 같은 예식들은 매일 세례를 체험하는 일, 매일 세례를 갱신하는 사건으로 이해(144p)”해야 한다(7장). 세례는 거듭남(새롭게 됨)과 연결되어 있다. “세례는 우리 안에 주님의 형상을 형성하고, 그에 걸맞게 우리가 자라도록 돕(170p)”는다. 그렇게 주님의 부름에 일생을 통해 응답하며 살아간다(8장).
세례는 또한 죽음과 겹쳐져 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을 때 예수와 함께 죽었는데, 우리의 이전 사고방식과 행동습관이 죽은 것이다(9장). 무엇보다 우리는 세례를 받은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왕족이자 영원한 주님의 소유임을 세례는 이야기한다. “우리가 받은 세례를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기억하는 일이며 우리가 누구의 것인지를 기억하는 일”이다(212p)(10장)

“세례를 받는 이라면, 공동체와 함께 이 책을 읽으라!”

이 책은 부제처럼 [세례를 받는 모든 이에게] 권할 책이다. 좀 더 확장시켜 세례를 앞둔 이, 어릴 때 세례를 받아 재세례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닐까 고민하는 이, 태어난 아이를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하고자 하는 부모(혹은 예비 부모)도 독자 대상에 포함된다.
아울러, 이 책은 함께 읽어야 할 책이다. 세례 받는 이를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기 원한다면, 세례 예식 이전에 그 의미를 서로 공유하며 각자를 향한 선물이 되기 위해 헌신해야 한다. 이 책은 내용적 측면은 물론이고 편집까지도 그 여정을 위한 맞춤형으로 준비되어 있다. 매 장 시작점의 「읽기 전 생각해 보기」에서는 해당 주제에 관한 각자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도와준다. 매 장 마지막의 「정리해 보기」에는 그 장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상기해 볼 수 있도록 단답형 문제가 출제되어 있고,「생각해 보기」에서는 주제와 관련된 내용을 토론해 볼 수 있도록 열린 질문들이 마련되어 있다. 게다가, 책 마지막에는「인도자를 위한 안내」까지, 세례가 공동체적이라는 걸 책 구성 자체가 몸소 보여준다.
세례를 ‘받는’ 모든 이들과 세례를 ‘받은’ 모든 이들이 다 함께 읽을 책,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온전히 세워갈 책, 바로 <기억하라, 네가 누구인지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