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트 옵션 - 탈기독교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선택
로드 드레허 지음, 이종인 옮김 / IVP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올해 3월에 IVP를 통해 국내에 출간된 <베네딕트 옵션(Benedict Option)>은 미국에서 “2017년 3월 출간 즉시 화제를 일으키며 아마존 서점에서 기독교 윤리, 정치&사회 이슈 등 여러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책”이다. 이렇게 흥행에 성공한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제목만 들어서는 어떤 책인지 알 수가 없는데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저자도 생경한데 누구인지 등 떠오르는 여러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책을 펼쳤다.

먼저, 저자가 궁금했다. 로드 드레허(Rod Dreher)는 미국의 대표적인 자유보수 언론매체인 ‘더 아메리칸 컨서버티브’의 선임 편집인이자 작가이다. 대학에서 언론학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종교, 문화, 정치를 넘나드는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감리교인으로 자라 가톨릭을 거쳐 현재는 그리스 정교회 신자로 살고 있는 그의 종교적 이력은 에큐매니컬한 글을 쓰기에 적합한 것처럼 보인다. 그의 여러 책들 중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이 책은 그의 다양한 특징들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책의 제목인 <베네딕트 옵션>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이 제목은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암시하고 있었다. 6세기, 청년 베네딕투스(Benedict)는 전도양양한 젊은이들이 교육을 마치기 위해 향하던 로마에 도착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범죄와 부패에 물든 로마에 큰 충격을 받고 혐오감을 느껴 숲과 동굴로 들어가 3년 간 기도하고 관조하는 삶을 살았다. 이후 베네딕투스는 동굴에서 나와 수도원장이 되어 열 개의 수도원을 세우게 된다. 그는 수도승과 수녀들이 그리스도께 성별된 검박하고 질서 있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작은 책자를 집필했고, 그게 ‘성 베네딕투스의 규칙’이라 불리게 되었다(33~34p). 베네딕투스가 보인 혼란스런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께 신실한 모습을 결코 잃지 않는 모습을 오늘날에 주목하여 그 정신과 기조, 태도를 ‘베네딕트 옵션’이라 부르고 있다.
로드 드레허는 이렇게 성 베네딕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로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의 <덕의 상실(After Virtue)>을 언급한다. 매킨타이어는 그의 책에서 오늘의 문화적 시기를 서로마 제국의 몰락에 비유하며 복구가 어려운 정도의 심한 몰락에 처한 로마 사회에 대해 성 베네딕투스가 한 선택, 그 사회를 떠나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한 행동을 매킨타이어가 주목한데서 착안해 ‘베네딕트’라는 ‘옵션’을 책의 주제로 삼는다. 매킨타이어에 따르면 “정의주의(모든 도덕적 선택은 개인이 옳다고 느끼는 바를 선택하기를 표현하는 것일 뿐이라는 발상)에 지배당한 근대 서구 사회에서는 개인의 의지를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것이 최고선으로 여겨지는데 반해, 덕이 지배하는 사회는 객관적인 도덕적 선과 그러한 선을 공동체에 구현하기 위해 인간에게 필요한 실천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는 사회(36p)”이다. 덕을 상실한 시대는 야만주의의 상태와 다름없으며, 근대 서구는 야만주의 지배하에 사는 사회로 진단된다. 그렇기에 현대에서는 ‘덕 있는 삶을 영위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는 것에 힘쓰기를 매킨타이어는 요청한다. 청년 베네딕투스가 실천했고, 매킨타이어가 강조한 ‘암흑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이 세워가는 대항문화와 정신, 그리고 전략’을 이 책에서는 ‘베네딕트 옵션’이라 말한다.

세 번째, 그렇다면 ‘베네딕트 옵션’에서는 무엇을 다루고자 하는지 궁금했다. 그것은 올바른 ‘진단’과 적합한 ‘대안’이다. 로마에 실망한 베네딕투스와 정의주의에 빠진 근대 서구를 꼬집은 매킨타이어처럼 현재에 대한 적절한 이해와 진단이 필요하다. 더불어, 로마를 탈피해 ‘수도원’을 만들고 ‘규칙’을 세운 베네딕투스와 야만주의를 벗어나 ‘덕 있는 새로운 공동체’를 세울 것을 강조한 매킨타이어처럼 구체적인 대안 전략이 뒤따라야한다. 그렇기에 이 책 <베네딕트 옵션>에서는 서구 사회에서 대두되는 다양한 주제들과 그에 따른 기독교 공동체로서의 문제 진단 및 대안전략에 매우 충실하게 임한다. 미국사회의 정치(4장), 교회다운 문화 보전(5장), 신앙전수를 위한 공동체(6장), 그리스도인 형성으로서의 교육(7장), 급변하는 사회에서의 일과 노동(8장), 성에 대한 이슈(9장), 기계, 기술의 발전(10장)과 같은 매우 구체적인 주제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현대 사회를 살아갈 때 고민하게 되는 것들이다. 서구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던 기독교가 급속도로 몰락하는 것을 가까이서 목격하고 있는 로드 드레허 입장에서는 이런 주제들의 선택이 비교적 쉬운 작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양한 영역들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대안적 태도와 삶의 모습은 결코 쉽게 행동할 수 없는 것들이다. 즉, 상당한 결단과 헌신이 뒤따르는 선택이다. 로드 드레허가 제시하는 대안들은 보수기독교적 태도를 기반으로 한 신앙고백의 일환이며, 그런 선택들이 현대에서 성 베네딕투스로 살아가기 위한 방편들이라고 믿는다. 개인주의화 되고, 불신앙이 지배하는 서구사회의 극심한 위기에서 그가 제시하는 대안들은 매우 급진적으로 다가온다. 이런 ‘진단’을 통한 위기의식 공유와 급진적인 공동체적 ‘대안’ 제시가 이 책이 미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이유로 보인다(그들은 자신들의 근간으로 자리하던 기독교의 존폐위기에서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진단과 대안에 목말라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진단’과 ‘대안’들이 우리 한국사회에서도 유효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나의 경우 상당 부분을 공감하며 읽었지만, 몇몇 주제에서는 동의되지 않는 세부 적용들도 있었다. 급변하는 서구 사회 속에서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는 기독교에 대해 보수적인 관점으로 대안을 제시해 가는 저자의 배경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기독교와 연결점을 보임과 동시에 차이점도 나타내고 있다. 예를 들면, 파편화된 서구 사회에는 없는 유교문화(혹은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공동체문화) 같은 것들이 한국사회에는 존재하기 때문에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진단과 대안은 반드시 우리만의 것들로 재해석 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한국사회 안에서의 재해석뿐만 아니라 저마다 이루고 있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재해석으로까지 이어질 때 비로소 책이 주는 의미를 온전히 흡수하게 되는 것이라 믿는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에서 기독교 공동체로서 살아가기 위해 숙고해봐야 할 중요한 것들을 상당히 많이 제공받을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의 베네딕트 옵션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면서 그리스도 공동체를 세워갈지’, ‘다음세대 아이들에게 물려줄 유산은 무엇일지’ 같은 질문들을 던지며 이 책을 읽게 될 때, 우리는 우리만의 베네딕트 옵션을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세상에 있지만 세상과 다른 공동체가 되어가는 우리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풍성해 질 것들을 기대해본다.

“베네딕투스의 사례는 오늘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자신의 시공간에서 맞이하는 도전에 창조적으로 응답하고자 하는 작은 무리의 신앙의 동지들이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철저하게 열어 그들을 통해 흐르는 은혜를 나르는 통로가 됨으로써 또한 그 은혜를 특별한 삶의 방식으로 구현함으로써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가를 시사하기 때문이다(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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