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재난 국가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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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사회의 거대한 뿌리이자 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계급·조직 위주의 불평등한 문화가 형성된 원인을 기존에는 유교의 영향 등으로 뭉뚱그려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는 결국 서구 사회의 선진 문명에 대한 동경만 키울 뿐, ‘우리가 어떤 존재이고 그를 이루는 토태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는 완전한 해답을 제공해주지 못했다. 동아시아인이 위계적인 사회를 형성하고 그 시스템에 오랫동안 따라 살아온 것은 그 나름대로 이유와 이익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성리학이 아무리 시대가 지나며 교조화되었다고 해도, 상류층이 주로 연구하던 교리가 모든 계층에 빠른 시간 내에 두루두루 스며들 수 있었을까? 그보다 조금 더 근본적인, 실생활과 밀접한 요인이 있지 않았을까?

 

저자는 이러한 불평등 구조의 기원이 다름 아닌 동아시아의 주식 이라는 새로운 주장을 들고 우리 곁을 찾아왔다. 저자의 신간 , 재난, 국가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이루는 세 가지 축을 제목에 한눈에 들어오게 담아냈다. 언뜻 보기에 밥상에 오르는 쌀과 불평등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식량이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떠올리면, 쌀이 곧 우리의 의식을 형성하는 요소라는 걸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쌀이 한국인에게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부정할 이는 없을 것이다. 한국인은 밥을 먹어야 한다, 빵은 밥과 달리 속이 안 차서 영 끼니 같지 않다는 말을 우리는 자주 한다. 한국인은 매번 쌀을 찾고, 여느 동아시아인 못지 않게 쌀을 사랑한다. 하지만 쌀을 오로지 식문화의 일부로만 여겨왔을 뿐, 사회의 가장 큰 축이라는 사실은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쳐 왔다. 교과서에서 두레와 품앗이가 상부상조하고 우애를 다지는 우리 민족의 빛나는 정신이라고만 가르쳤을 뿐, 어떤 문화적 배경을 두고 탄생한 것인지, 그 일면에는 어떤 그림자를 품고 있는지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가 잊고 스스로도 모르고 있던, 우리의 의식 깊숙하게 자리잡은 쌀의 존재와 그 생산 체제가 사회에 미친 영향, 그에 따라 국가에게 부여된 재난 관리 책임, 공동체 위주의 생산 체계과 현재 한국 노동시장의 큰 틀인 연공제, 과도한 경쟁의 원인, 위계질서의 불합리성을 타파하고 세계 시장에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방안까지 총망라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이 다루는 문제를 분명히 정리하여, 독자가 책을 읽어나갈 방향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짚어준다.


결국 서로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경쟁하고 연륜을 강조하는 정신, 한국인이 민주화를 이루어냈음에도 위계에 집착하는 이유, 불평등을 싫어하면서도 한편으론 불평등에 기대고 있는 한국인의 모순은 결국 쌀 농사에서 뻗어나온 부정적 일면이라는 것을 이 책은 일깨워준다. 우리 안에 내재된 모순을 헤쳐나갈 수 있을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면 비로소 실마리가 보이게 될 것이다.



*이 리뷰는 문학과지성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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