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이랑 지음 / 창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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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돈이 필요하다. 밥 한 끼를 사 먹더라도 아무리 싼 식당에 찾아가도 6천 원은 넘는 돈을 내야 한다. 입고 먹고 자는 모든 비용을 대기 위해서는 노동을 해야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골라 직장에 들어간 사람도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도 있다. 흔히 할 수 있는 일을 골라 하는 사람들은 좋아서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직업 만족도와 성취감을 중시하기 때문에 돈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좋아서 하는 일을 하는 사람 역시 항상 돈에 목이 말라 있다. 이런 오해에 묶여 끊임없이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사람들을 대표할 직종은 역시 예술계 종사자일 것이다. 저자 이랑 역시 영화 감독, 음악가, 작가를 겸하고 있는 아티스트이다.

예술계에서는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는 값으로 업계 관행때문에 한참 적은 돈을 받고도 제대로 시정을 요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적은 임금 때문에 프리랜서 예술가들은 더더욱 돈에 목이 말라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돈을 번다. 보통 직장이라면 급여가 너무 적은 곳을 떠나오기 마련이지만 예술가들은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예술을 놓지 못한다. 이런 예술계 노동의 악순환은 이곳저곳에서 언급되었기에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구체적인 수치로 나는 얼마를 번다, 돈이 더 필요하다고 자신의 정보를 선뜻 드러내는 예술가는 최근에야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명망 있는 여성 예술가인 이랑 작가가 예술에도 돈은 필요하다라는 말을 책을 통해 이 문제를 가시화하는 선두 주자에 섰다. 작가는 자신의 자금 부족한 자금 사정과 하는 일들, 돈을 벌기 위해 무대에 선다는 솔직한 의견, 돈의 원리를 공부하다가 금융 공부까지 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써서 책으로 엮었다. 더 많은 예술가들과 보수 기준과 협상 요령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랑 작가는 영화, 음악, 글 등 다방면에서 이야기를 짓는 아티스트이지만, 대중에게는 흔히 인디뮤지션으로 알려져 있다. 2신의 놀이로 큰 음악적 업적을 이루었으며, 특히 수록곡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는 인디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들어봤을 유명한 곡이다. 이 앨범으로 이랑 작가는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수상했다. 누가 봐도 그의 예술 행보가 빛나는 영광스러운 순간. 그러나 이랑 작가는 단상에 올라 뜻밖의 말을 내뱉었다. 자신이 받은 트로피를 이 자리에서 경매에 부친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한 달에 100만 원이 안 되는 수익으로 어렵게 아티스트로서의 생계를 이어가는 중이었는데 이 상에는 상금이 걸려 있지 않았다. 그날 저자는 부귀영화에서 영화는 누렸을지언정 부귀는 누리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트로피를 사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초대석에 앉아 있는 이들 모두 저자와 처지가 같은, 자신의 이상을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지갑은 두툼하지 못한 예술가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명예의 상징인 트로피를 앨범 제작사 대표에게 50만 원에 팔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1부 중에서도 첫 꼭지에 수록된 이 이야기는 이랑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예술을 한다는 명예 때문에 불안정한 수입에 묶여 산다는 혹독한 현실을, 그리고 저자는 이를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필요를 남에게 말하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이 입고 먹고 자는 일에는 언제나 돈이 있어야 하고, 이는 프리랜서에게는 특히나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얼마를 받는다는 사실을 터놓고 얘기하는 이는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왜 자꾸 돈 얘기를 하느냐?”라는 핀잔을 잊을 만하면 들려왔고, 동료 뮤지션에게는 너는 왜 돈 얘기만 하느냐, 아티스트답지 못하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저자는 꿋꿋이 노동에 부합하는 보수를 받아내어 자신을 챙기는 일을 망설이지 않았다. 무상으로 하던 인터뷰에 페이를 요청하고, SNS에 자신과 함께 노동하기 위한 요금을 공개했다. 공연에서 티켓값은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공연 후 자신의 앨범과 사인을 적극적으로 판매한다. 코로나19로 수입의 대부분이던 공연과 강연이 끊기자 저자는 좌절하는 대신 돈의 흐름을 공부하기 시작해 금융 회사에 들어갔다. 현재 저자는 트위터에서 스스로를 금융예술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대학에서 영화를 비롯한 예술밖에 모르던 사람이 금융 회사원이 되었다니 실로 놀라운 변신이 아닐 수 없다. 돈을 쫓으며 살다가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감사한 일은, 저자가 금융인의 세계에 입문하고도 여전히 예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비록 예술업계의 낮은 임금으로 고초를 겪긴 했지만 그 때문에 환멸을 느끼고 예술을 아예 놓지는 않았다. 이를 깨달으니 비로소 예술은 저자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말에 진정성이 느껴진다. 기존의 임금이 좀 더 넉넉했더라면 저자가 예술에 몰두할 수 있었을까. 아니, 업계 환경이 괜찮았더라도 코로나19 앞에서는 무슨 대책이 있었을까. 거꾸로 예술만 알던 사람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한 발짝 내딛게 되었으니 축복할 일인가. 어느 것도 의미 없는 추측일 뿐이다. 확실한 것은 저자는 언제든 예술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다만 거기에 항상 제작비가 따라다닐 뿐.

 

언제나 돈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독자에게 고백하는 저자의 말투는 덤덤하다. 수입이 적다고 부끄러워하며 저자세를 취하지도 않고, ‘그래도 나는 현실에 찌든 사람들과 달리 예술을 한다며 자아도취하지도 않는다. 그저 노동하는 만큼의 보수를 받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이 얼마인지 알리고, 받은 돈의 가치만큼 열심히 일할 뿐이다. 그리고 예술 노동은 그 범주가 어디까지인지, 어느 정도로 가격이 매겨져야 하는지 고민한다.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해결 방안을 찾아서 움직이고, 도착한 곳에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 동분서주하는 저자를 보며 독자는 자신의몫을 쟁취하는 책임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다만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이 필요하다는 제목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아쉽다. 1부의 꼭지들은 모두 일과 돈의 상관관계라는 뚜렷한 주제를 담고 있지만 2부에서부턴 제목과 다른 내용이 나오기 시작한다. 2부에서는 예술인으로서 사는 삶, 3부에서는 그 중에서도 여성 예술인으로서, 몸과 젠더 때문에 치렀던 여러 경험과 갈등을 다룬다. 4부는 앞 장들에 비해서 꼭지들의 유기적이지는 않지만, 저자와 유대감을 주고받는 존재들과 그들을 향한 저자의 사랑이 듬뿍 묻어난다. 이들 모두 솔직담백하고 재치 있는 저자의 톤이 잘 묻어나며 현대 한국 사회에서 특정한 젠더 역할에서 벗어나 온전히 로서 존재하는 과정이 감동을 준다. 이처럼 재미와 시사성 모두를 잡은 깊이 있는 글이지만, 제목만 보고 아티스트의 생계 이야기만을 기대하고 책을 펼친 독자가 느낄 거리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책에 실린 글들이 모두 이랑 작가의 생각이고 분신인 건 맞지만 돈이 필요하다는 말과 모두 방향이 일치하는 건 아니다. “한국에서 프리랜서 노동자로 먹고사는 이야기라는 카피가 제목과 내용을 절충하고 있긴 하지만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어쩌면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랑이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지금이었던 건 아닐까. ‘노동자가 제목에 들어가고 부제에 이랑이 들어갔으면 책의 정체성을 바로 알 수 있는 표지가 나왔을 법하다. 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하다는 말에 눈길이 안 갈 사람은 없으니, 마냥 나쁜 제목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나 같은 경우는 이랑을 기대하고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만족스러웠지만 예술업계 노동자의 이야기만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 수도 있으니, 혹시 구매를 고려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점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창비 서평단으로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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