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
프랜시스 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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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읽을수록

사랑의 실천을 하도록

이끄는 힘을 가진 책.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져, 교회라는 장소에 모여,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무엇을 보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가? 그것에 대한 답은 포괄적이며 함축적이며 신학적인 당위성으로 예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분은, 믿는 자들을 지극히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은혜의 확증이요, 믿지 않는 자들에게 기꺼이 드러내신 실체적인 계시이다. 하지만 예수라 말만하고 끝낸다면 그것은 다시금 허공에 맴도는 메아리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분이 오시기 전에 예비하던 이들의 삶과 그분이 이 땅에 계시며 보이신 삶, 그분을 따르는 자들의 삶을 우리는 관망해야 한다. 예수를 보인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 안에 거하며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가 되려는 것, 연합에 초점이 맞춰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나 다른 조건들로 이루어진 우리 각자가, 그 다양함의 고유성을 인정하며 함께 연합하는 삶의 모습은 마땅히 예수를 비출 것이다. 그렇게 예수는 세상에 또렷하게 드러날 것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나와 다른 누군가를 배척하는 것은 너무도 쉽다.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으면 된다. 무시해도 된다. 가까웠던 사이더라도 멀어지면 그만이다. 그를 향해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비판을 해도 되고,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비난을 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질 뻔한 나를 위한 선택이라고 세상은 격려한다. 누구라도 그렇게 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또 그런 사람이라며 나를 위로한다. 나 또한 때론 그렇게 해도 괜찮지 않을까하며 안심하려 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런 선택들은 언제나 아픈 손가락처럼 내게 남아있다. 후회로 얼룩졌으며 조금은 더 신중하고 건강한 방법은 없나 고민하게 된다. 망각이라는 능력을 겸비한 인간이기에 편안하게 잊고 살아가다가도 밀물처럼 밀려올 때가 있다. 그렇기에, 어쩌면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예수로 살아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미워하고 원망하는 저들을 위해서도 죽으신 그분의 사랑에 더욱 힘입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분열의 원리로 옅은 관계 맺음, 그 피상적 사랑에 주목한다. 거기에 연합이라는 진리에 대한 무관심까지 더해지면 그 끝은 불 보듯 뻔하다. 우리는 그것을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 또한 미움과 분열로 가득 찬 현재의 삶에 안주해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진심어린 기도가 기억난다. 자신에게 있는 사랑이 아닌 것들이 전부 사랑으로 바뀌었으면 하던, 미움 다툼 질투 그것들의 그 크기와 깊이만큼 사랑하고 섬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나는 그것을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이를 믿으며 사랑의 실천을 하는 데까지 나아가기를 소망해본다.

#예수로하나될때까지 #프랜시스챈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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