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상징 피카소의 게르니카 걸작의 탄생 4
박수현 글.그림 / 국민서관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피카소의 이름은 이미 다 알고 계시지요?

5살 든솔이도 피카소의 이름은 모르지만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 게르니카는 알고 있답니다.

아이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고요.

이 작품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5살 아이도 어느 정도 느꼈기에 오랜 시간 기억에 남게 되었나봐요.

 

게르니카는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 있는 마을 이름이면서 동시에 입체주의 대명사로 불리워지는 피카소의 대작인

게르니카와 동명입니다.

 

 

 

파블로 피카소는 스페인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쓰고 프랑스 파리로 가게 되었어요.

그 곳에서 입체주의에 눈을 뜨게 되고 기존의 그림과는 다른 시도를 하게 되고

훗날 현대미술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면지의 두 장 모두 게르니카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피카소는 전쟁의 참혹함과 더불어 민간인에게 무차별 폭격을 한 스페인의 프랑코 장군과 독일,이탈리아군대에게

그리고 세계의 모든 이들에게 알리고자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게르니카라는 대작이 탄생되었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게르니카에 폭격이 쏟아집니다.

폭격기는 조용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약 3시간 동안 50톤이나 되는 폭탄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반란을 일으킨 스페인의 프랑코 장군을 도와주려고 독일과 이탈리아가 함께 벌인 일이었습니다.

 

 

이 소식은 뉴욕타임스에 기사화되어 전 세계를 경악 속에 빠뜨리게 되지요.

 

 

 

 

 

만국박람회 출품을 위해 게르니카를 다시 수정을 거듭합니다.

 

게르니카 작품의 크기는

세로 349.3cm 가로 776.6cm의 거대한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그림입니다.

 

 

 

게르니카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이유는 게르니카 속에 담겨져 있는 그림 하나하나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과 흡사하고

말의 울부짖음은 투우 경기에서 소의 뿔에 겁먹은 모습이며

스페인을 상징하는 소의 모습은 스페인 사람들의 힘과 고귀함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더불어,프랑코 독재 정부가 있는 한 게르니카는 스페인 땅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했답니다.

게르니카는 피카소도 프랑코 장군도 세상을 떠난 1981년에 스페인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피카소는 군인이 아니었기에 자신의 감정을 그림으로써 표현했습니다.

이제 평화의 상징이 된 게르니카는 오랫동안 사람들 기억속에 그리고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쟁이란 무릇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합니다.

욕망의 시작과 끝에는 무고한 사람의 희생이 따릅니다.

그 희생은 누구의 강요로 인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집니다.

누구도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에 나가고 싶은 이들은 없다고 봅니다.

전쟁이란...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중의 하나입니다.

 

 

오늘날 게르니카를 보면서 아직도 전쟁이 진행중인 나라에서 교훈을 삼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꿈꾸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