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보기 힘든 필름 카메라와 인화한 사진을 줄에 매달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지금이야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그 자리에서 확인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은 그냥 지워버릴 수
있지만
필름 카메라는 현상하기 전까지는 어떤 형태로 사진이 인화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더 인화하기까지의 설렘과 기대감이 존재했었다.
어릴 적 우리 집에서의 첫 카메라 또한 필름
카메라였다.
아버지가 고객으로부터 구입한 필름 카메라였는데, 아버지에게 바가지를 씌워 비싼 값으로 팔았던
것이다.
사진관에서 필름을 구입하고 한 장 찍고 나서 필름이 돌아가도록 레버를
돌리고
다시 찍고 다 찍은 뒤에 감아서(이때 필름에 빛이 들어가면 필름이 빛에 타버려서 한 장의
사진도
찾을 수 없었기에 조심 또 조심했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 아버지가 필름을 만져서 다 타버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등학교 졸업사진은 한 장 밖에 남지 않았다) 필름을 조심스레 빼 낸
뒤에
사진관에 맡기고 며칠 후에 찾아가면 내가 찍은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듯
필름 카메라는 아버지와의 추억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물건이다.

이야기를 쭉 읽어내려가다 보니 글쓴이의 아버지가 사진관을
운영하셨고
사진을 쭉 찍어오셨던 분이다. 강경이라는 지역적 의미 또한 작가가 나고 자란 곳이라
강경의 모습을 더욱더 실감 나게 표현했던 것 같다.
1960년대의 배경으로 서민들의
생활 모습을 어떠한 수식어나 미사여구 없이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사진을 찍으시는 아버지 곁에서 이야기 속
상구처럼 아버지의 보조 도우미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지금은 사진 혹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예전 카메라들이 여럿 등장한다.
더불어 흑백 사진만 있었던 시절 어떠한 식으로 컬러 사진을
만들어냈는지도 알려준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면서 사실을 정확하게 전해 주는 전달자로서의 역할도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추운 겨울 먹을 수 있는 간식이 넉넉하지 못한 시절
고추감주와 찹쌀떡을 먹는 아이들의 모습 또한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고
있다.
"동네에 큰
행사가 있을 때면 늘 상구 아버지가 사진을 찍었어. 상구 아버지의 사진 속에
동네 사람들의 삶과 동네의 역사가 모두
담긴 셈이야. 사진을 찍고, 또 찍은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은 기쁘고 자랑스러웠던 일들, 행복했던 순간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또 기념했단다."
본문 중에서-------
때론
귀찮고 번거로운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남은 것은 사진뿐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아무리 일상적인 모습이라
할지라도 훗날 세월이 지나면 이 또한 추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