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종교개혁 이후,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높여드린다고 배웠다.
그런데 육아는?
이 곳은 영 아닌거 같다. 하나님께서 늘 동행하시고 그분의 영광을 높여 드려야 하는데 도대체 우째 해야하는가 싶다.
첫 아이가 태어난지 50일이 막 지났다. 지금도 아이를 재우고 숨죽여
키보드를 두드린다. 20분 후 아이는 깰 예정이다. 분유를 준비해두었고,
기저귀도 미리 세팅을 해두었다. 남은건 나의 마음가짐 뿐…
육아는 ‘함께’ 하는 것이며, ‘아빠’가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그랬다.
맞다 가장이기에, 더 주도적으로 해야한다. 그런데 말로는 그렇지만
‘도와준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기저 밑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한 챕터에서 머리를 한대 얻어맏았다.
우리가 잘 아는 모세의 기도다.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섷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면, 주님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주십시오 (출 32:32 새번역)
모세는 그 32로 들어가는게 아니라 그 ‘사이’로 들어간다. 자신의 이름을 지워달라고 간청할 만큼, 사랑의 마음이다. 이 마음이 내 안에 있는가?
저자의 글을 빌려본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나의 남의 일이 아니다. 내 아이이고 부부가 함께 키우는 것이다. 모세처럼 사이로 뛰어 들어가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다. 그 틈새는 아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부모 모두를 부르시는 자리이다. 진정한 가정의 리더는 바로 그 틈새를 발견하고 들어가 갈라진 곳을 메우는 사람이다.
성별의 문제가 아닌, 상대를 살아하고 헌신하려는 사람의 몫이다. 어렵지 않다.
먼저 발견한 사람이 시작하면 된다. 자 이제 모르는 척, 안 보이는 척은 그만하고 저기 쌓여 있는 아이 젖병부터 씻어보자. (42쪽)
특별히 모든 부모님들께, 특별히 신생아를 둔 부모님께 선물하면 더 없이 좋을 책이다. 엄마 보다 아빠들에게 말이다. 이 책이 다시 한번 아내를 사랑하고, 아이를 사랑하는 아빠들의 몸을 움직이는 귀한 동력이 될 것이다.
송창식 선생님의 '담배가게 아가씨' 가사를 패러디 해본다.
“나는 지금, 분유 타러 간다” (아다다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