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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폭스 갬빗 2 - 나인폭스 갬빗 3부작
이윤하 지음, 조호근 옮김 / 허블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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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체리스가 육두정을 상대로 가망 없는 전투를 벌여도 상관없었습니다. 그저 지금보다 더 나은 세계를, 그 가치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죽고 싶었습니다."


* 마지막 순간, 이스트라데즈는 자폭까지는 조금 지나쳤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도 멜로드라마가 켈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온 육두정에 알리고 죽을 수 있으니 나쁘지는 않았다. 세계가 열기와 잡음 속으로 녹아들 때까지, 그의 멍한 눈은 자기 손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 체리스는 므웬의 문화와 역법이 육두정에 탄압받지 않았더라면 그녀에게 어떤 이름이 붙었을지를 생각해보았다. 수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한 쌍의 백조로 무너져 내린 키루에브의 아버지. 처형된 부모님과 학살당한 동족들. 폭동이 일어날 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사상자. 수백 년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서비터들. 등롱꾼 아이들을 향한 발포 명령. 산개하는 바늘 요새에서 시체 폭탄에 목숨을 잃은 자신의 함대. 이것조차도 그녀가 두 번의 삶을 살아오는 동안 육두정이 저지른 온갖 죄악에 비하면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육두정의 국민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선택을 포기하지 않았다.


> 두 번째 이야기인 '까마귀의 책략'에서는 육두정부에서 보낸 폭탄으로 전 함대를 잃고 가까스로 살아난 '제다오'가 '켈' 분파의 함대를 탈취하며 시작한다. '켈'은 정신 개조 수술을 통해 세뇌 기술을 주입 받아 상관의 명령을 따를 때 마음의 평온을 얻는 군사 작전 특화 분파로, 상관으로 인식한 자의 명령이라면 수년을 함께한 전우에게도 망설임 없이 총구를 겨눌 수 있는 이들이다.


'제다오'는 그저 충성스러운 총으로 쓰이기만을 기다리는 그들에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자 하고, 나아가 우주 제국 전체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고자 한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 수학자라고는 해도 며칠 골방에 틀어박힌 걸로 우주 전체에 적용될 새로운 역법을 만들어낸다는 게 의아하기는 했지만 마지막 편에서 또 다른 이야기들이 전개될 것 같다.


폐허가 된 함선 속에서 인공 기계인 '서비터'의 도움을 받아 살아 나온다는 전편의 결말부도 좋았는데, 새로운 세계의 포문을 여는 '역법 변동' 또한 서비터들과 협력해 일으킨다는 설정도 인상 깊었다. 대부분은 존재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존재들과 꾸준하게 소통하고, 그들에게 진심을 담아 부탁할 줄도 알았던 주인공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신체를 여성형, 남성형, 양성형으로 개조하는 것이 가능하며 가족 관계 또한 굉장히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어머니만 여럿이기도, 아버지만 여럿이기도, 둘 다 여럿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인지 성적 지향 역시 어느 쪽이든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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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폭스 갬빗 - 나인폭스 갬빗 3부작
이윤하 지음, 조호근 옮김 / 허블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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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병사들의 몸뚱이에서 쥐어짜낸 온갖 종류의 붉은색 물감을 한데 모아 써 내려진 신성 모독의 금서가 한쪽 지평선에서부터 반대쪽 지평선까지 전장을 가득 메우며 펼쳐져 있었다.


* 하지만 온갖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생동하는 문화들끼리 서로 맞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잡음 앞에서, 깔끔하게 정리되어 나열된 기록들이 얼마나 부질없어지는지 체리스는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켈 사령부에서 정리한 까마귀 향연의 도시 기록 정보를 열람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자신의 고향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정보로 기록된 모습을 목격했다. 각각의 정보는 물론 전부 사실이었지만, 그 기록 목록은 까마귀 떼가 소용돌이치며 하늘로 날아오를 때 어떤 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 피어오른 흙먼지가 그려내는 신비로운 궤적이 어떤 인상을 주는지 전혀 담아내지 못했다.


* 체리스는 결투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발을 돌려 선실로 향했다. 자리에 눕기 전에 이렇게 물었다. "내가 잠들면 외로운가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잠들기 전 작은 전등 하나를 켜놓았다.


* "이게 내 마지막 도박이 되겠군." 제다오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자네에게는 가능한 모든 것을 가르쳤네. 내 실수를 반복하지 말게나. 잘 있게, 사령관. 그리고... 불을 켜놓아줘서 고맙네."


* "루오." 정적 속에서 체리스의 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4세기 동안 그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른 적은 없었다. 그가 죽은 지 그토록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으므로. 그의 반짝이는 눈과 웃음소리를, 어울리지 않게도 과일 맛 사탕을 좋아하는 입맛을 기억하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으므로. 그의 손 모양도, 둔하지만 믿음직한 손가락도, 이렇게나 선명히 떠오르는데.


* "게다가," 라리스의 반복되는 외침을 뒤덮듯이 세레셋의 목소리가 울린다. "너한텐 계획이 있잖아. 터무니없이 운에 의존하는 계획이긴 하나 그래도 또 모르는 일이니까. 나를 위해서 칠두정을 뒤엎어줘. 내 죽음이 뭔가 의미를 가지게 해줘. 얼른 시작해. 소위가 너를 두고 떠나기 전에. 빨리."


* 그녀는 육두정부의 표준 역법의 맞추어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다른 역법에 따라 삶을 가늠할 것이다. 이제는 라할의 냉정하고 깔끔한 축제, 켈의 열병식, 비도나의 잔혹한 추도 의식으로 시간을 측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턴 함대가 소멸한 날이 역법의 기준이 될 것이다. 모래시계가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반란 또한 필연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남은 삶을 그에게 바칠 것이다. 세상의 모든 바닷물은 사지가 잘려나가고 증발한 병사들을 기억하며, 위조 동전처럼 함부로 던져진 죽음들을 애도하며 밀려들어오고 빠져나갈 것이다.


* 등롱꾼 이단 한 명의 생명은 칠두정부 한 명의 생명과 동등한 값어치를 지닌다. 적군의 목숨은 결코 우리 병사의 목숨보다 못하지 않다. 이 간단한 수식을 그녀는 지금에야 비로소 이해했다. 그러나 켈 사령부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 역법 전쟁은 마음을 다루는 싸움이다. 적절한 숫자를 적절한 마음에 대입한다면, 숫자는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주인이 섬길 가치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비로소 육두정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때가 된 것이다. 저는 주군의 총이오니. 역법 부식이 다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 스타트렉, 스타워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처럼 우주에서 펼쳐지는 전쟁과 모험을 소재로 한 스페이스 오로라 장르를 좋아한다? 다이버전트 시리즈처럼 구역에 따라 성격과 정체성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세계관에 흥미를 느낀다? 헝거게임처럼 정부군에 맞서는 반란군이 등장할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렇다면 당신은 나인폭스 갬빗 시리즈의 잠재적 덕후일 것이다.


엄청난 두께와 거대한 세계관을 자랑하는 책이지만 사실 하루에 한 권씩 읽었다. 내가 넷플릭스에서 스타트렉 디스커버리까지 챙겨 보는 트레키여서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생소한 장르의 책을 읽을 때 중요한 건 얼마나 '흐린눈'이 가능한지라고 생각하는데, 이 '흐린눈' 필터의 적용이 가능한 이들에게는 가독성이 나쁘지 않은 책일 거라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따져 보자면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요정의 언어를 자모음부터 공부하고 나서야 편안한 영화 관람이 가능한 사람과 그냥 '저건 극중에서 요정이 쓰는 언어구나' 인식하면 얼마든지 스루가 가능한 사람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큰 틀과 문맥을 이해한다면 낯선 용어나 세계관의 설정도 책의 흐름에 큰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독서 능력 중 대부분의 스탯을 '흐린눈' 스킬에 몰빵 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여서 쉽게 읽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을 위해 '덕질에 진심인 편집자가 풀어 쓴 나인폭스 갬빗 시리즈 안내서' 아이템도 준비되어 있으니 필요에 따라 이용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책의 세계관 속에서는 달력 보는 방법을 바꾸면 물리학 법칙이 바뀌고 에너지가 생성된다. 그 힘은 달력을 보는 방법, 즉 '역법'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굳은 믿음을 보일수록 강력해지고, 무기의 에너지원이 되거나 광속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등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할 수준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국민들에게 광신도적인 추종을 강요하거나 세뇌, 고문 등의 방법을 이용하기도 한다.


전체주의와 군국주의 체제를 갖춘 우주 제국은 성격과 정체성이 각기 다른 여섯 개의 분파로 나뉘어 있다. '육두정부'는 '역법'을 하나로 통일하고 같은 믿음을 보이지 않는 자들을 '이단'으로 칭하며 그들을 소탕하기 위해 우주 전쟁을 계속한다. 결국 공동의 목표라는 미명하에 개인은 사라지고 오직 집단과 집단의 신념만이 남는다.


전략적 요충지인 요새 중 하나가 '이단'의 손에 넘어가자 '육두정부'는 불멸의 망령인 '제다오'를 이용하기로 한다. 이 인물은 한때 명장으로 칭송받던 전술의 천재이지만 특정 전투에서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100만명 이상을 학살한 이로, 이제는 영혼만 남아 사람에게 '결박'될 수 있는 병기로 개조된 상태이다. 장교 '체리스'는 대의를 위해 제다오를 받아들이고, 하나의 육체 안에 두 영혼이 공존하게 된다.


'체리스' 본인의 수학 능력과 '제다오'의 전략으로 요새를 탈환하는 것에 거의 성공하지만 '제다오'의 계획을 알게 된 '육두정부'는 그를 죽이기 위해 폭탄을 보내 함대 전체를 날려 버린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체리스'는 목숨을 경시하고 신념을 강요하는 육두정부를 뒤엎고자 하는 제다오의 계획을 알게 되고, 그가 자행한 학살은 가장 희생이 적은 선택지였음을 알게 된다.


PS. 이 책을 추천하는 데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 또한 한몫한다. 충성스러운 엘리트 장교인 주인공도, 주인공이 호감을 느낄 만한 외모의 소유자도, 주인공의 옆에서 충언을 하고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 주는 이, 얼굴에 커다란 상처를 가진 백발의 대장 역시 모두 여성이다.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주인공을 유혹해 죽이는 것이 목적인 외계인이나 구해야 할 공주, 민폐 조종사 같은 뻔한 역할이 아니라 각자의 능력을 통해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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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한나 렌 지음, 이영미 옮김 / 엘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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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이 매끄러운 세계의 인간은 모두 절대적인 이상향에서 살고 있어요. 고통이나 슬픔을 느껴도 그것들이 없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실제로도 언제든 그 가능성을 실현시킬 수 있죠. 사랑받지 못하면 사랑ㅂ다는 현실로 가면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원하면 그것을 이룬 현실로 옮겨가면 되고요. 그들에게 있어, 하나의 가능성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저차원 생물이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자 공포의 대상이에요. 무엇보다 이 세계의 적들이에요.

# "그게 같은 사람이라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죠? 아내를 사랑할 수 없게 된 남편은 이미 다른 사람 아닌가요? 만약 인간이라는 존재가, 원래 그렇게 기분을 조금씩 변화시키며 과거의 자기를 잇달아 죽여가고 있는 거라면 어때요?"

# "아마 인간에게는 '나'와 비교해 '너'라는 존재가 훨씬 더 모호한 연속체여도 상관없는 게 아닐까요? (중략) 인격이 어제와 달라졌다 해도, '당신'이 '당신'이라는 사실만으로, 사랑은 계속될 수 있어요. 인간의 마음은 새로운 '나'라는 파도에 연달아 삼켜지는 모래성처럼 약한 것이니까, 절대적인 '나'는 없어요. 그래서 나와 마찬가지로 불연속적인 '당신'과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나'라는 것의 환영을 쌓는 것 아닐까요?"

#너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안다.
네가 바로 이 이야기의 결말이니까.

# 다만, 나에게도 어렴풋한 희망 같은 게 있습니다. 어쩌면 내가 죽은 후, 언니가 지금까지처럼 다른 사람을 계속 끌어안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친동생을 죽게 만든 수단으로 세계를 계속 선도해나간다는 가책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해지지는 않을까요. 나의 주음이 마치 어떤 주문처럼 언니를 옭아매어 만약 언니가 이제는 그 힘을 쓰지 않고 있다면, 내가 목숨을 던진 보람은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너무 염치없는 이야기라는 것 또한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 한나 렌 작품의 등장인물들도 때로는 다른 나, 다른 세계라는 가능성에 안이하게 뛰어들어버릴 것 같으면서도 최종적으로는 지금의 나와 이 세계를 받아들이기로단호하게 결심한다. (중략) 오히려 SF적 상상력이 다른 나, 다른 세계의 가능성에 등장인물들을 직면시키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과 이 세계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그것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 작가 한나 렌이 데뷔한 지 9년 만에 발표한 첫 SF 소설집. '여섯 편의 단편마다 국경을 뛰어넘고 역사를 비틀며 충분히 멀리 갔다고 놀라워할 때 한 걸음 더 가버리는 과감함이 빛난다'라는 정세랑 작가님의 추천사가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구절일 것이다.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에서는 무한한 평행 세계를 마음대로 드나드는 것이 가능해져 모두가 꿈꾸던 삶을 산다. 사랑하는 이가 죽어 괴롭다면 그가 죽지 않은 세계로, 사랑받지 못해 괴롭다면 사랑받는 세계로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들. 하지만 그런 세계에서 불행한 사고로 '승각 장애'를 입어 돌아갈 수 있는 샛길도, 옆길도 사라져 버린다면? 나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것이 유일한 세계임을 알면서도 그 차에서 도망치지 않을 수 있을지, 매끄러운 세계를 포기하고 친구의 옆을 지키는 용기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을지 한참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미야하에게 건네는 권총>에서는 타인과의 소통 욕구가 식욕만큼 강해지게 만들거나 특정 인간을 영원히 사랑하게 만드는 등의 임플랜트 개념과 극적인 효과를 위해 권총 모양으로 생긴 장치를 사용했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엉켜 버린 주인공들의 관계가 어떻게 끝날지 궁금했는데 '중편 소설이었던 것을 갑자기 서사시 차원의 소설로 바꾸어 준다'는 소설 '동급생'의 결말처럼 마지막 한 문장이 주인공들의 지난날들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홀리 아이언 메이든>에서는 동물이든, 사람이든 끌어안기만 하면 누구보다 온순하게 만들어 버리는 '개심' 능력을 가진 언니와 그의 동생이 나온다. 일찌감치 능력을 알아본 군의 고위급 간부가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데려와 포옹하게 한 뒤 전쟁의 판국이 바뀌고, 나아가 세계 정세까지도 변할 상황에 처한다. 끝에 와서 언니를 저지하고, 본래의 자매 관계로 돌아가고자 희생을 택한 동생이 안쓰럽고 기특하게 느껴졌다. 언니 앞에서 죽은 동생이 죽음의 주모자와 하수인을 찾는 수수께끼라며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싱귤래리티 소비에트>는 개인적으로 가장 SF의 매력이 잘 나타났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소비에트 연방은 모든 국민의 뇌 절반을 인공지능 '보댜노이'의 연산 자원으로 사용한다. 패전한 미국의 인공지능 '링컨'은 좌절하는 국민들을 사이버 공간으로 이주시켜 자유주의가 승전한 가상 세계 속에서 살게 한다. 두 개의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체스 말로 전락해 버린 인간들, 클론으로 재생산된 레닌 부대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해졌다.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에서는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탄 신칸센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저속화' 현상이 발생해 기차 칸 안의 시간만 2600만 분의 1 속도로 저하된다.

내용이 어렵다는 평이 있어 걱정했는데, 일본 이름과 지명 때문에 쉽게 읽히지 않았던 <제로 연대의 임계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독성이 좋은 편이었다.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기발한 설정 외에도 아름다운 묘사와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번역 또한 돋보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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