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엄청난 폭발력의 사춘기를 겪었다. 이유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아빠가 매로 손바닥을 때리겠다고 하자 그 앞에서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던 적도 있다. 아빠는 그 뒤로 단 한 번도 체벌을 한 적이 없고, 우리 가족에게는 이제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로 남아 있었지만 이 경찰서 에피소드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또 다른 사건을 일으키는 촉매가 된다.


2019년, 만나면 술을 마시거나, 왁자지껄하게 싸우는 대신 교회 이야기로만 몇 시간을 채우는 소위 '믿는 집안'인 친가의 가족 모임 자리였다. 일터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아빠의 형제 하나가 직원들을 전부 데리고 '보신탕' 집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표정 관리가 안 됐고, 강제성이 있는 회식 메뉴를 그런 식으로 선정하는 것 또한 갑질이라고 한 마디 했다. 그는 그때까지도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를 데리고 그 식당에 들러야 되겠다고 장난스레 말했고, 내가 나를 다시는 보기 싫다면 그렇게 하라고 대답하자 돌변해 역정을 냈다. '너(아빠)는 애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냐, 쟤(나) 어렸을 때도 회초리 들었다고 경찰에 신고한 적 있지 않냐,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는데 어떻게 키우면 애 싸가지가 저 정도냐'로 시작된 폭언은 그의 부모이자 나의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앞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 전까지는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큰 소리조차 들어 본 적이 없었던 나였기에 더욱 충격이 컸다.


긴 사족을 덧붙이는 이유는 부모에게 순종적이지 않은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다. 나를 사랑해 주고, 아껴 주고, 항상 잘해 줬다고 생각했던 이는 '제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던 사건'이 너무나도 괘씸한 나머지 십여 년이 지난 후에도 나를 되바라진 애라고 여기고 있었다. 나는 그 사건을 겪고 난 후 일절 가족 모임에 참여하지 않고 있고, 그와 연락조차 주고받지 않지만 나 역시도 '맞아야만 정신 차리는 아이들이 있고, 어쩔 수 없는 체벌은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2017년에 쓰인 이 책은 어제 쓰였다고 해도 믿겨질 만큼 2021년의 현재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 작가는 '촛불로 태어난 정부가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 주기 바라며 책을 마쳤지만 여전히 끔찍한 아동 학대 사건이 연일 매스컴을 타고, 그 배경에는 민간 입양 기관의 사익 추구와 경찰의 무능함이 있다. 허겁지겁 만들어지는 법안은 그저 땜빵 수준에 지나지 않으며 앞으로 몇 명의 아이들을 더 잃게 되고, 앞으로 또 몇 번이나 'OO이 법'이 발의되었다가 폐기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책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정상가족'에 대한 거짓된 믿음은 너무나도 많은 것에 악영향을 끼친다. 미혼모들에게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게 하고, 기혼 여성이 이중 노동을 해야 하는 처지에 순응하게 하며,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존재를 지운다. '공'이 모자라 '사'가 너무 많은 일을 감당하느라 그 안의 모두가 불행해진 상태라는 말에 뼈저리게 공감하며 개인적 차원의 인식 개선과 국가적 차원의 제도 개선을 통해 더 이상 정상성에 집착하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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