째보선창의 꿈 / 전재복

조석으로 한번씩
황토물에 누런 베옷을 벗어 빠는 서쪽 바닷가
선잠 깬 어둠이 방파제를 어슬렁거린다

찰진 어둠을 벅벅 문지르며
밤새 잠못 들어 뒤척이던 물의 악보엔
분질러진 음표들만
오르락 내리락 파도를 두둘기는데
멀리 점 하나
점, 점,점...커지더니
만삭의 배 하나 몸 풀러 온다

서해 해풍과 우격다짐 끝에
별처럼 파닥이는 멸치떼 쓸어담고
꽃게 쭈꾸미 새우 박대
휘몰아 돌아오는 고단한 돛대 위
산티아고 노인의 낡은 깃발이 눈부시다
고래가 아니면 어떠랴
작은 저들이 하나씩 물고 온 별들
저마다 윤슬로 반짝이며
수런수런 교향악으로 출렁인다

흐벅진 해초로 엮은 밧줄에
포박되어온 붉은 해가
환하게 하루를 풀어 산청을 열 때쯤
울컥울컥 몸을 푸는 만선의 배
싱싱한 생명의 파닥임으로
왁자하게 살아나는 선창

다시 불끈 아랫배에 힘을 주며
희망을 순풍순풍 해산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