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 전재복
만약에 시간을 거슬러 전생 어디 쯤에 살아진다면
사대부 양반가의 정경부인 따위 나는 싫소
가슴에 불도장을 수천 번 찍어 거북등같은 딱쟁이에
심장을 가둔 공로로 허울좋은 또 하나의 족쇄
효자문 열녀문에 갇히는 건 더 더욱 싫소
시간을 거슬러 내 맘대로 살아진다면
詩畵歌舞에 뛰어난 기녀가 되고싶소
自足에 눈먼 사내들 눈 아래에 두고
참 멋을 아는 이 아니면 실눈도 뜨지 않으리
사랑 하나에 목숨걸고 뜨겁게 불타올라 죽어도 좋으리
청암절벽 높푸른 솔이 되어 걸림없는 바람을 품어보고
창공을 찌르는 대나무 되었다가 맑은 곡조 풀어내는
퉁소가 되어도 좋겠소
나 전생의 어디 쯤 살아진다면 너 아니면 죽겠다는
당신을 꼭 만나 빠꿈살이같은
철부지로 살아도 좋겠소 욕심없이 소박한 사랑에
눈 멀어 살아도 좋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