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게 1
어느 굽이 몇 번은 만난 듯도 하다
네가 마음에 지핀 듯
울부짖으며 구르는 밤도 있지만
밝은 날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러나 너는 정작 오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 너는 무심한 표정으로 와서
쐐기풀을 한 짐 내려놓고 사라진다
사는 건 쐐기풀로 열두 벌의 수의를 짜는 일이라고
그때까지는 침묵해야 한다고
마술에 걸린 듯 수의를 위해 삶을 짜깁는다
손끝에 맺힌 핏방울이 말라가는 것을 보면서
네 속의 폭풍을 읽기도 하고
때로는 봄볕이 아른거리는 뜰에 쪼그려앉아
너를 생각하기도 한다
대체 나는 너를 기다리는 것인가
오늘은 비명 없이도 너와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나 너를 기다리고 있다 말해도 좋은 것인가
제 죽음에 기대어 피어날 꽃처럼, 봄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