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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 신판
조영래 지음 / 아름다운전태일(전태일기념사업회)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
-조영래『전태일 평전』, 아름다운 전태일, 2011.을 읽고 쓴 서평
전태일 평전을 읽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어찌 보면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호기심은 책을 읽어갈수록 놀람, 경악, 연민, 비통과 같은 혼란스럽고 눈물어린 감정들로 바뀌었으며 결국 마지막에 남게 된 것은 다시금 호기심이었다.
전태일 평전 속에는 가장 세밀하게 묘사된 공간이 있다. 바로 1970년대의 평화시장이다. 하루 14시간의 고된 노동, 무시되는 근로기준법, 그를 통한 인간 소외의 현장은 당시 사회의 폐단 그 자체였다. 전태일은 분신항거를 통해 이러한 노동 세태를 바꾸고자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40여년이 흘렀다.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이제 2018년의 노동자들은 하루 최대 8시간의 근로시간과 7530원의 최저임금을 보장받는다. 그렇다면 2018년의 대한민국은 과연 노동자들이 살기 좋은 세상일까?
나의 호기심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전태일 평전에 담긴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역사일 뿐인가? 지금은 ‘평화시장’과 그 속의 ‘여공들’, 그리고‘전태일’은 행복한 노동자가 되었을까? 그리고 그 호기심은 비통함으로 바뀌었다. 2018년의 대한민국에도 전태일은 존재한다.
인간을 소외시키는 인간 사회
“인간을 물질화 하는 세대”, 전태일이 한 차례 노동 운동을 실현하려다 좌절한 1969년 가을, 그가 잠시 일을 멈추고 쓰기 시작한 일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잃어버린 직장과 와해된 바보회, 노동운동의 정체기를 마주한 그였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는 일기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일기는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그의 일기는 노동운동을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 답을 찾으려 하는 전태일의 고뇌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 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인간이 인간에 의해 소외받고 보이지 않는 권력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를 바꾸고자 했다. 그는 강자가 약자를 억누르고 약자의 기본권을 박탈하는 우리 사회를 뒤집으려 했다. 이것이 바로 전태일 사상이었다.
몇 년 전부터 유행처럼 번진 ‘흙수저’라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SNS를 통하여 유머처럼 퍼뜨려지기 시작했는데, 갈수록 사람들은 금수저와 흙수저를 새로운 신분제처럼 여기게 되었고 이로 인해 등장하게 된 것이 바로 ‘수저계급론’이다. 이에 따라 사회에서, 또 그 축소판인 학교에서는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소득 수준으로 한 사람의 수저를 결정하며, 이에 따라 부와 가난의 대물림이 일어난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계급사회 속에서 살아 왔으며,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내가 중학생일 때 , 학교 주변에는 세 가지의 주거 형태가 공존했다. 32평 아파트와 15평짜리 주공아파트, 그리고 빌라. 학생들은 평소 행실이 안 좋은 친구를 보며 “야, 쟤 15평 주공아파트 살잖아, 쟤네 아빠 풀빵 장사한대.”라고 서슴없이 말하였고, 어른들 역시 우리에게 길 건너 빌라촌에는 절대 혼자 가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당부하곤 했다. 우리 사회는, 또 그 속의 사람들은 가난함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보이지 않는 벽을 쌓아올린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수저계급론에 따르면 흙수저는 금수저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 흙수저도 노력하면 금수저가 될 수는 있다. 아니, 될 수도 있었다. 과거에는!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개천에서 용이 나기도’ 했었다. 즉, 과거의 대한민국은 사회적 유동성이 비교적 높은 편에 속했다. 그러나 올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 인구의 빈곤 탈출 비율은 22.6%로 사회적 유동성이 낮은 편이다. 씁쓸하지만 수저로 계급이 세습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빈부격차가 일어나며, 또 어떻게 이러한 사회 경제적 계급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교육’이다. 앞서 1970-90년대에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일류 대학 진학이었다. 당시에는 학교 수업 충실히 듣고 공부 열심히 하면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배움과 교육에는 항상 돈이 따라다닌다. 학원비, 과외비, 대학 등록금, 어학연수비 등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고, 스펙을 쌓아 취업을 하는 데도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 계층 이동의 수단이었던 교육마저 빈자와 부자의 출발선이 달라진 것이다. 같은 권리를 가진 동등한 인간들끼리 계급을 나누고 상하관계를 정하여 결국 다른 인간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무리에서 소외시킨다. 이러한 사회를 과연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전태일 평전의 <제1장 어린 시절>을 보면 이러한 사회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전태일과 그 형제들은 수저계급론에 따르면 전형적인 흙수저라고 말할 수 있다. 앞서 1970-90년대에는 사회적 유동성이 높아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이 가능했다고 말한 바 있으나 전태일의 경우 가난함 때문에 교육의 기회를 완전히 박탈당했다. 흙수저 노동자 전태일은 항상 가난했다. 그는 경제적 여유나 힘이 있지도 않았고 배움에 있어서도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항상 자신보다 더 힘겨운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평화시장의 여공들과 재단보조들에게 전태일의 따뜻한 말 한 마디와 관심과 걱정 어린 물음은 삭막한 ‘평화시장’을 살아가는 데 큰 위안과 버팀목이 되었다. 누구도 바꾸려고 하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밑바닥 인생’의 삶에 귀 기울인 전태일의 행동은 인간이 소외되고 도태되는 것을 막고자 한 ‘전태일 사상’이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우리는 ‘흙수저’를 단순 유행어로만 여겼을 뿐, 실제로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거나 의문을 느낀 적은 거의 없다. 앞으로 미래 사회를 떠올렸을 때 빈부격차의 심화, 양극화, 계층화와 같은 사회 문제가 두려워지는 것이 아닌 빈부격차 축소, 계층의 자유로운 이동, 그리고 계급 대통합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우리의 모습이 그려지게 되기를 바란다. 또한 이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당장 우리 사회 속에서 우리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생각해보고 그들을 배척하거나 소외시키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 마치 평화시장의 전태일 같이.
바보로 살지 않겠다
전태일이 20세가 된 1968년, 그는 ‘근로기준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이제껏 이러한 좋은 규정들이 있는 줄 모르고 노동한 지난날의 본인을 ‘바보’라고 칭한다. 또한 그는 법으로 보장되어 있는 근로기준법에 대해 알지 못하고 죽은 듯이 혹사당하고 있는 평화시장 일대의 모든 노동자들도 ‘바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전태일과 평화시장의 재단사들은 그 바보들의 모임인 ‘바보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인 노동운동을 도모하기 시작한다.
바보회는 하나의 노동조합, 즉 ‘노조’이다. 노동자들의 기본 권리인 노동 삼권에서는 단결권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활동하는 행위는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전태일을 비롯한 평화시장 노동자들은 바보회의 조직에 대해 사업주와 평화시장 내의 권력자들에게서 많은 탄압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에도 노동조합은 기업과 사업주에게 눈엣가시로 여겨지곤 한다. 우리나라 최대 기업인 삼성은 노동조합 자체가 없다. 이는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의사가 반영되어 노동자 차원에서 노조 결성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삼성 측에서 사내 직원들에게 통보한 강압적인 방침이라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문제화되고 있다. 반면에 ‘노동조합’이 활성화되어 그들의 권리와 권익을 정당하게 요구하는 기업도 있다. 바로, 현대중공업이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노사 상생’의 모델로 공무원들과 다른 기업체들이 견학할 만큼 한국의 ‘노조문화’를 선도하는 대표적인 노동조합이다. 고용주인 현대중공업 역시 노사의 협의와 합의를 통해 불안정한 노사관계를 극복하고 협력적 노사문화를 구축한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했을까?
나는 노조와 노사가 협의와 합의를 이뤄냈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랐다. 왜냐하면 협의를 통해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이전까지의, 또 현재의 많은 기업들이 취하고 있는 노조에 대한 사측의 태도와 매우 대비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동 삼권에서는 단체교섭권을 법적으로 명시하여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과 같은 노동 환경에 대한 그들의 요구를 회사 측에게 이야기하고 노사 간에 이러한 요구 사항에 대해 논의하며 협의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지키는 기업은 몇 없다. 기업의 최우선적인 목표는 이윤 창출과 극대화이기 때문이다. 1960-70년대의 평화시장에서도, 현재 대한민국의 많은 대기업, 중소기업에서도 회사 측의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그들의 목적 하에 그 속의 직원들의 권리와 권익은 무시되었고, 묵인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노사 협력 사례는 말 그대로 많은 노동자들의 꿈이 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과 사업장은 노동조합에 대해 삼성과 같은 대응 방식을 취하고 있다. 대기업에서는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원에게 승진의 불이익을 적용하고, 중소기업에서는 아예 삼성처럼 노조 설립을 금지하는 사업장이 적지 않다. 전태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바보회를, 또 이후에 삼동회를 조직하였으나 평화시장 내의 사업주들과 관리인들에 의해서 와해되고 감시당했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당시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노동조합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오히려 노동조합과 그들의 노동운동을 악으로 인식하고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곤 했다.
전태일은 말한다, 서로가 서로의 인간적 필요에 봉사하면서 참된 관심과 애정으로 사회구성원이 연대해야 하고,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당해서는 안 되며, 박탈해서도 안 된다고. 우리 사회는, 또 그 속의 나는 아마 지금도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그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을 수도 있다. 노동조합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그들의 아우성이 아닐까? 전태일은 인간이 인간의 인간성을 박탈하는, 고용주가 노동자의 권리를 묵살하는 사회 속에서 묵묵히 살아간 당시의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바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는 더 이상 바보가 아닌 투쟁과 쟁의의 노동자들이다. 그에 반해 나는 우리들이 바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 가지지 않고 사회에 무지한 우리들이, 노동자들의 요구를 듣지 않는 기업들이, 그러한 사회가 바로 바보이다.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또 바보를 만들지 않기 위해 우리 사회와 그 속의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권리를 존중하며 보장해야 한다, 반드시.
전태일은 죽지 않았다
전태일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부가 권력을 만들고 권력이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이 인간을 물질화하는 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다. 그는 끝없는 고뇌와 투쟁 끝에 결국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는 시위에서 온 몸에 불을 붙이고 사람들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그는 그렇게 평생을 노동운동에 몸 바쳐 싸웠고, 마지막까지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노동운동의 불씨가 되었다.
그의 분신은 현재까지도 우리에게 많은 의미로 다가온다. 이 날 이후 음지의 것으로 치부되던 노동운동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어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게 되었으며, 노동자들이 조금씩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로 바뀌어 갔다. 또한 그의 정신이었던 전태일 사상을 뒤이어, 그를 대신하여 노동운동을 지속해 온 사람도 있다. 바로 그의 어머니이자 ‘노동자들의 어머니’, 이소선 씨이다. 그녀는 처음 전태일이 노동운동을 시작할 때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아들의 투쟁을 만류하기도 하였으나, 전태일의 분신 이후 자신이 못 다한 일을 이루어 달라는 그의 유언을 따라 노동운동가로 활동하게 된다. 그녀는 1970년 11월 전태일의 친구들과 청계 피복노조를 결성하여 농성과 단식 등의 투쟁을 통해 하루 14시간에 이르던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일주일에 하루 휴무를 얻어내는 등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을 개선해 나갔다. 또한 헌 옷을 팔아서 번 돈으로 군사독재 시절 경찰과 정보기관에 쫓기는 노동운동가들과 수배자들을 숨겨주면서 그녀는‘노동자의 어머니’, ‘노동운동의 대모’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체포나 구금을 당하거나 실형을 선고받는 등의 갖은 고초를 겪기도 하였으나 이소선은 1970년부터 별세한 2011년까지 한 차례도 쉬지 않고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과정에 앞장서 투쟁하고, 청년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녀의 노동운동은 아들인 전태일의 사상을 본받아 약자인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에 힘썼다. 전태일의 뜻은 그의 어머니와 그 동료들, 그리고 전태일의 분신 이후 생겨난 많은 노동 단체들과 학생 운동권의 목소리와 행동으로 바뀌어 사회 속에 녹아들어갔다.
이렇게 전태일의 투쟁과 어머니 이소선의 헌신에 영향을 받은 학생 운동권과 노동 단체들은 그 당시에 급속도로 많아지게 되는데, 그 속에는 노동자들의 정치인으로 알려진‘심상정’도 있었다. 심상정은 현재 정의당 소속의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인 여성 정치가이다. 그녀는 1980년대 대학 재학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러 30여 년 동안 노동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노동 운동에 앞장서 왔다. 1980년 서울대학교 최초로 총여학생회를 창설하고, 초대 총여학생회장이 된 그녀는 구로공단에 위장취업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노동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녀는 위장 취업으로 구로 공단에 취업해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1985년 6월,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 최초의 정치적 연대파업 투쟁인 구로동맹파업에 나섰다. 1970년대부터 이어져 온 대한민국의 수직적 경제 성장, 그 이면에는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장기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노동자의 희생이 있었고, 그녀가 마주한 1980년대 초의 노동 현장에서도 이러한 상황은 여전했다. 그녀와 구로 공단의 노동자들은 노동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 구로동맹파업을 추진하였으나 당시 정부와 경찰은 노동조합 결성과 쟁의를 폭력적이고 강압적으로 탄압하였고, 결국 이는 일주일 만에 마무리되게 된다. 당시 이 파업 이후에 44명의 노동자가 구속되고 1천여 명의 노동자가 해고되었으며 구로동맹파업의 주동자였던 그녀도 이 사건 이후 10년 간 수배되다가 1993년 검거되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게 된다. 이후 민주노총에 몸담아 지속적으로 노동 운동에 앞장서 오다가 2003년, 그녀는 본격적으로 진보정치운동에 가담하기 시작했으며 현재까지도 그녀는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사회 하층민들을 위한 정치를 구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그녀의 노동 인생은 전태일 분신 사건 이후 활기를 띤 대학생들의 노동 운동 중 하나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대학 졸업 이후에도 노동운동에 몸담으며 하층민들과 소외계층을 위해 투쟁하고, 세상과 맞섰다.
이렇듯 전태일의 분신 이후에는 노동문제와 노동운동이 단순히 노동자들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로만 여겨지지 않았다. 그의 분신과 전태일 사상에 영향을 받은 그 시대의 지식인들도 지속적으로 노동운동에 참여하며 노동자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결국 전태일의 외침에서 시작한 노동 문제는 전태일의 뜻을 이어 받은 다른 노동자들과 지식인, 그리고 그들이 일군 단체들로 하여금 사회 속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이를 통해 현재 우리 사회 속에서는 노동권과 근로기준법이 보편적으로 준수되고 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2018년의 세상 속에서는 노동자들의 권리와 권익이 눈에 띠게 향상되었고, 근로기준법 또한 노동자들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울타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울타리 안에 과연 모든 ‘노동자’들이 속해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잘 모르겠다.
여성, 청소년, 외국인 노동자,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이들이 사회적 소수자라는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는 인종, 문화, 종교, 성별 등의 이유로 다수의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적은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사회적 소수자에 속한 사람들은 여러 영역의 사회적 활동에 상당한 제약을 받곤 한다. 그 사회적 활동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노동’이다. 그들은 노동활동을 할 때 마땅히 누리고 요구할 수 있는 그들의 권리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하고, 또 사업체들은 그들이 약자라는 이유로 그들을 착취하고 그들의 권리를 묵살한다. 이러한 상황은 전태일의 분신 이후 보편화된 노동 인권이 과연 ‘모든 사람들’에게 보장되고 있는 지에 대해 의문을 남긴다.
대표적인 사회적 소수자, 여성의 노동인권에 대해 한 번 알아보자.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노동이 기계화됨에 따라 여성 임금노동자는 급격하게 증가하게 된다. 초기에는 경공업 공장에 미혼의 청년층 여성들이 고용되었으나, 시대가 변화할수록 기계·화학 공장이나 사무·판매 등 서비스 분야에 기혼의 장년층 여성들이 대거 고용되는 등 여성 노동은 산업화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여성들의 지적 수준이 함양되고 그에 따른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보다 다양한 산업에 여성들이 투입되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산업 속에서도 여성 노동자에 대한 인권 문제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2018년 10월 11일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의 인권이 쟁점이 되었다. 국내 항공사 승무원과 골프장 캐디의 사연이 국정감사장에서 공개되었는데, 그들은 몸에 딱 달라붙는 유니폼을 입고 근무하며 고객들의 성희롱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한 ‘캐디’는 자영업자로서 계약을 맺는 특수 고용직으로 분류되는 직업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근로 감독이나 노동법의 적용에서 배제되어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기에 더욱 불리하다. 이밖에도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많은 여성들은 고객으로부터 그들의 노동권을, 또 본질적으로 그들의 인격을 침해당한다. 일부 사람들은 여성 노동자가 판매하는 물건이나 제공하는 서비스를 얻기 위해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하고 나면 그 ‘여성’노동자 또한 물건처럼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들을 조롱하고 비하하며 추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그릇된 소비자 외에도 여성 노동자의 권익을 보장하지 않는 인물들은 바로 기업과 고용주들이다. 그들은 여성 노동자에 대한 소비자의 갑질을 방관하며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요즈음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유리벽과 유리 천장이 그 사례인데, 유리벽과 유리 천장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배제되고 더 중요하고 수준 높은 일을 처리하는 데에 기용되지 않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정한 기준을 넘어서지 못하게 하는 기업과 고용주들의 태도가 기반이 되어 형성된다. 근로 환경에서의 여성의 권리 침해 문제를 은근슬쩍 감추고 덮으려는 고용주들과 우리 사회의 태도가 여성 노동 인권에 대한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있다. 앞으로도 여성들의 노동 인권을 묵살하고 그들의 권익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이 벽은 점점 더 높아지고 더욱 더 단단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성의 노동 인권에 대해 더욱 큰 관심을 가지어 이 문제를 바라보고, 또 문제를 제기한다면 이 벽은 점점 낮아져서 언젠가는 사라질 수도 있다.
또한 이는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라 청소년, 외국인 등의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과 여러 사회 하층민, 소외계층에게도 나타나고 있는 문제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들의 노동을 천시하고 이들의 노동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 사회 전체가 침체되고 퇴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고용주의 입장에서도, 또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도, 모든 사람들에게 근로기준법에 따른 노동 인권을 차등 없이 똑같이 보장하는 것이 마땅함을 기억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은 우리 사회를 도태되는 인간 없이 통합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다.
혼자 하는 장군 없다
17살 고등학생의 시선에서 바라본 전태일 평전 속 이야기는 충격적이고 놀라웠지만, 마냥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1970년이든, 2018년이든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는 소외계층과 그로 인한 인권 문제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에 대한 책임을 소외 계층에게만, 또 부당한 대우를 하는 권력자에게만 전가하고 있다.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인 과제이다. 우리는 지금 인간적인 도리를 다 하고 있는가?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들의 문제에 귀 기울이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을 과연 인간이라고 볼 수 있는가?
우리는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몇 가지를 기억하도록 하자. 우리 사회의 모습과 세상의 뉴스에 호기심을 가지자. 그리고 그 속의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고 귀 기울이자.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의외로 간단하지만 그 일을 통해 우리가 이끌어 낼 수 있는 결과는 모든 사람들에게 놀라움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