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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계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 지음, 임도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8월
평점 :
읽음으로써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허구에서만 얻을 수 있는 쾌감 같은 것. 마치 히어로 무비에서 빌런을 때려부수는 영화를 찾아 보는 마음으로 읽었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집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 보는 눈이 없을 때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하는 일” 월남이라는 단편 중에 있는 이 문장이 이 책을 관통한다. 집안에서의 일이라서, 남들이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폭력들이 소설의 형태지만 다큐멘터리처럼 다가왔다. 책을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는 것은 폭력의 피해자인 여성이, 아이들이 소설에서 만큼은 살아나길 자유를 얻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뉴스에서 접하는 가정폭력들이 정말로 책속에 쓰인 단어처럼 ’태연히‘서술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이런 것은 하면 안되 라는 말에 착한 아이 컴플렉스에 절여져 무조건적으로 ‘네’하고 따랐던 여성들이 읽었음 좋겠다. 어떤 해방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13편의 단편이 글은 모두 충격적이지만 깔끔했다.
그중에서도 경매, 괴물, 월남, 상중, 코로는 꼭 읽어야하는 단편들이다.
이 단편들을 다 읽고 나서 만나게 되는 옮긴이의 말, 네 벽 안의 괴물-은폐된 폭력을 읽으면 읽는 내내 구름처럼 안개처럼 떠다니던 생각들이 옮긴이의 문장으로 명료해진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
“나르시사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죽은 것들 보다 살아있는 것들을 더 무서워해야 한다고.” 25p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집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 보는 눈이 없을 때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하는 일” 57p
포옹을 하고 눈물을 훔치고 나면 진정한 재회의 순간, 우리는 사실상 이미 달라진 사람들인데 예전처럼 서로를 마주하는 순간, 상대방이 누구인지 모르면서 상대방을 마주하는 순간이 찾아 온다. 아니면 아무도 제대로 마주하지 않는 순간. 67p
포도주와 자유가 선사한 미소. 식탁에 상석에 앉았을 때만 나올 수 있는 미소. 123p
단말마의 고통을 겪는 자들은 신음하고 몸부림치고 운다. 천국과 지옥에 대해 사람들이 했던 모든 말들이 다 거짓말일까 봐. 아니면 오히려 모두 진실일까 봐. 139p
말을 해야 할 때가 있고 행동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이 여자들은 오래전에 행동하기를 그만두었다. 16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