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늙은 신부인 레미지오는 어느 날 밤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죽음을 앞두고 병자성사를 요청하는 루치아(루시). 레미지오 신부는 빗속을 뚫고 루치아를 찾아가 병자성사를 해 주지만 그녀는 사람이 아닌 안드로이드 로봇이었다. 레미지오 신부는 기계한테 병자성사를 해 주었다며 절망하지만 루치아는 미리 다 찾아보았다면서 성사 자체로 효력이 있다며 자신은 천국에 갈거라고 말한다. 교회의 영향력 있는 핵심 단체인 호르투스데이에서는 성사를 받아낸 안드로이드 로봇 루치아를 마녀로 규정하고 제이에게 이 마녀를 잡아 올 것을 지시한다. 마녀 사냥꾼으로 선택된 제이는 루치아의 흔적을 쫓으며 이 로봇이 여느 로봇과는 다른 특이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그러다가 레미지오 신부가 실종되고 사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마녀 사냥은 중세의 어느 날 돌연히 시작된 게 아니고 멀고 먼 신화의 시대로부터 이어진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지혜를 얻은 하와. 호기심에 상자를 연 판도라.그리고 첫 마녀 사냥의 희생자들이었던 산파. 산파들은 약초를 캐고 생즙을 내고 달이면서 약과 독의 미묘한 경계를 연구했고 여인들의 출산을 도왔다. 고통받는 여인들의 산고를 도와준 그녀들은 평범한 여인의 삶을 벗어나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탐했다는 죄로 마녀로 고발당하여 재판장에 끌려갔다. 그 계보를 이은 안드로이드계의 마녀 루치아(루시). 사후세계를 연구하고 감히 천국을 꿈꾸어 그 세계의 파수꾼을 자처해 온 근본주의 종교인들과 반안드로이드주의자들을 경악하게 만든 로봇시대의 마녀 루시. 이들은 모두 마녀의 계보를 잇는다 하겠다. 기존 권력 세력이 누리고 있는 가치를 넘보고 또 다른 세계를 추구했다는 이유로 마녀 사냥을 당하는 것은 머나 먼 신화 세대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또 미래에 안드로이드가 공존하는 시대에도 존재함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는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또 감히 넘보고 있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마녀 사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천국에 기계를 위한 자리는 없다.”“천국을 꿈꾼 안드로이드 새 시대의 마녀가 되다.”마녀사냥꾼 제이와 함께 안드로이드 루시를 찾아가다보면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인간보다 더 의리 있고 인간적인 로봇의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모습에 교활하고 남을 속이며 이용하는 나쁜 인간들은 과연 안드로이드 로봇보다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자신의 주인으로 선택한 이에게 충실한 안드로이드 로봇이 차라리 천국에 갈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닌지.. 인간을 더 강화하기 위해 인공눈과 인공장기를 삽입하고 개조하는 것이 어디까지 허용되야 할 것인지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어디인지... 무한히 쓸 수 있는 장기의 개발이나 의료기술의 개발로 늘어난 수명으로 인한 노인문제. 앞으로 이 세상에서 함께 하게 될 안드로이드 로봇과의 공존, 안드로이드 로봇의 인권(?) 등등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소설이다.철학적이고 멋진 표현도 많고 스토리도 독특하고 재미있어서 너무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기억에 남는 구절을 몇 개 적어보았다.“연쇄살인마는 몇십명을 죽이고 끝나지만 종교나 사상이 광기에 사로잡히면 수백 만명을 학살하거든요. 지난 역사가 증명하잖아요.”“대체 늙음이 무엇이기에 한때 히폴리투스와 오리게네스, 테르툴리아누스의 사상을 논하던 사제를 저렇게 존재의 찌꺼기 같은 몰골로 만들어버리는가.”“루시는 로봇의 눈으로 천국을 이해했다. 천국이란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물리적 공간이며 ‘새 삶’이란 말 그대로 리뉴얼된 몸체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병자성사는 이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종의 명령어로서 이 명령어로 말해진 것들은 신의 보증 아래 현실화된다.”“말끔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던 인간 의사들이 아니라 기계를 다루던 기술자가 나를 살려냈다. 인간이 죽이려 한 나를 저 기계가 살려냈다.” “루시. 나야. 이 세계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인간과 안드로이는 어떻게 되는지, 아득한 세월이 흐른 뒤 너는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존재하는지 잘 지켜봐. 그리고 녹슬지 않게 너 자신을 잘 돌봐. ......그리고 무한히 나를 기억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