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시재라, 서남 전라도 서사시
조정 지음 / 이소노미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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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60년대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 사는여성들의 실화를 서사시로 재탄생 시켰다

​죽은 아우들의 바깥으로 나온 장기를 다시 몸 안으로 넣고 몸을 닦아주는 한 여성, 총살 당한 딸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여성, 방바닥에 갓난아기를 버려 두고 도망쳐야 했던 여성, 식칼 하나 들고 밭으로 향하는 여성 등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나는 이 시집을 읽기 전에 죄를 지었다. 초반에 이 서사시를 받았을 때 뭣도 모르고 재밌겠다는 말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한번 바깥으로 나온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겠지만 이 시집을 읽으면서 영남 여성들의 한 맺힘을 통감하고 명복을 빌며 그 죄를 용서 받고자 했다.

​이 시에는 정말 많은 이들이, 여성이 죽어갔다. 나는 살인자 놈들에게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따져 묻고 그들이 죽인 방식 그대로 너희도 똑같이 죽어야 하지 않으냐는 그런 마음이 생겨났다. 읽다보면 아마도 '이유는 없을 것이다.' 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왠지 그들만의 '그 놈의 이유'가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서사시에는 '최제천'이 만든 '천도교'가 등장한다. 아마 학교 다닐 때 언뜻 교과서에서 들었던 것 같다. 삶이 얼마나 고달팠으면 인간이 종교를 만들고 그 곳에 삶을 의존할까 싶다. 종교가 생기고 믿는 이유도 그런 거겠지만

​가족이나 자식을 잃거나 혹은 폭력적인 남성의 이야기 속에서 언제나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던 것은 여성이었다. 여성으로서 참아야 할 것도 많은 시대일 것이기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남성과 같은 인간임에도 제 몫을 챙기지 못하고 오로지 '희생'의 존재로만 여겨지고 그것이 타당하고 믿는 사회 속에서 그 시대의 남성들은 과연 얼마나 죄책감이나 양심을 느끼고 살았을지. 물론 지금도 미친가지겠지만

​나는 영남에 그 어떤 관련 연고가 없다. 그럼에도 영남 사투리가 크게 어렵지 않았고 사투리가 시의 전달을 깨기는 커녕 시가 내포하는 이야기를 더 강하게 잘 밀어주는 것 같아서 좋게 읽었다. 마치 내가 그 아낙네들의 옆자리에 앉은 것 처럼 그렇게 생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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