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세계 - 페미니즘이 만든 순간들
손희정 지음 / 오월의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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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페미니즘.
2016년-2019년까지의 칼럼과 글을 한대
묶어 페미니스트로써의 자기성찰을 담아낸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나로써는 생각도 못한 발상이다. 타인을 통해서 페미니스트를 성찰해 왔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관점을 사고를 갖는 의식보다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것들을 통해서 나를 표현했을뿐 정작 나의 의식은 제대로 점검한 적이 없는 것 같다. 페미니즘은 자신도 중요하지만 사회운동이라는 것을 반드시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포커즈가 남성에게 집중되어 있겠지만 우리의 상대는 가부장제라는 것을 잊지 말이야 할 것이다. 그들도 마찬가지이다. 페미니즘은 사회운동이라는 사실과 여성만의 해방운동이 아니라는 것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평등은 남녀 모두의 상호적 권리이기 때문이며, 그것을 배제한 것이 가부장이다. 이 사상은 성불평등을 야기하고 모자라 남성들간에도 불평등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그렇기에 남녀 모두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의식을 갖춘다면 남성들간의 권위의식에서 탈피할 수 있다. 탈피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가부장의 무기인 특권의식이다. 이 특권은 남성중심이나 남성우월주의로도 불린다. 이 무기가 남성을 오랫동안 유혹하고 휘둘러왔다. 이것을 버리는 순간 남성으로써의 남자다움을 잃는것이라는 사상을 주입시켰다. 이 것은 남성들이 한 사회를 소유하고 관리하기 위해서이다. 때론 자기네들의 입지를 위해 자기보다 못난 남성을 따돌렸는데 여자같은 여자보다 못난으로 권력을 쟁취하고자 했다. 성불평등은 결국 그들의 이간질에 불과하다. 남성들은 여자보다 못난 남성이 되지 않기 위해 자기네들간의 남성성을 지키기 위해 여성을 사회에서 따돌리고 그래야 했다. 서열문화에서 살아남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가부장은 그렇게나 무섭고 어리석다. 가부장은 허황된 남자다움을 가르치며 그들을 포섭한 뒤 그들을 실컷 이용했다. 그리고 난 뒤 그들의 주도적 무게에 대한 부담감을 회피하고 있다. 결국 그 스트레스는 여성들에게로 돌아갔고 그것 또한 가부장은 남자다움이라며 설파했다. 남성들이 특권을 놓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남성성과 그들간의 열등한 취급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뼛속깊이 만연해 있는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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