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회학 대우학술총서 구간 - 문학/인문(논저) 47
김현 지음 / 민음사 / 1988년 8월
평점 :
품절


대우학술총서로 기획된 이 책은 문학사회학의 개괄적 해설과 서지정리를 담고 있다. 불문학자이자 비평가로서 당대 최고의 필봉을 날렸던 김현의 저서라는데서 각별함을 느낀다. 그가 남긴 여러 저작들은 아직도 한국에서 문학하는 이들이 지나가야할 길로서 남아있다. 다분히 현학적인 서구추수를 보이곤 하지만 그것은 한국문학 비평가로서의 불문학전공자가 가지는 한계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서양학이 일본이라는 제국주의의 굴절을 거치면서 그 학문적 전통이라는 것은 치졸할 수 밖에 없었고, 지금까지의 우리 서양학은 그 굴절된 전통의 회복을 사명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문학의 사회적 성격이야 문학의 본질적 성격이지만 그 학적 전통은 그리 유구하지 못하다. 그것은 그 학적 결과들을 정리하고 있는 이 책의 양적 질적 빈약함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스타알부인과 텐느로 부터 출발한 서양의 문학사회학은 몰리에르류의 풍토론이었다고 할 수 있겠고, 그 학적 쇄신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전통을 가진 독일에서 이루어졌다. 마르크스주의의 기계론적이고 교조적인 문학사회학적 해석은 계급투쟁 반영으로서의 문학론을 내세웠던 플레하노프를 쥬다노프같은 이들이 정치적으로 악용할때 발생한다. 그 해악를 정치한 논리로 극복하려했던 이들은 루카치와 바흐친 그리고 골드만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아도르노, 벤야민, 로웬달, 마르쿠제 등이다. 이들의 작업에 대한 연구물들은 이 책의 저작당시보다 풍성하게되었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문헌학의 작업으로 문학사회학의 뛰어난 업적을 남긴 아우얼 바하의 <미메시스>, '비기능적 책읽기의 사회적 조건을 밝히는 사회학'으로서 문학의 '생산 - 배본 - 소비'를 천착한 에스카르피, 독자의 중요성을 일깨운 수용미학으로서의 문학사학을 정립한 콘스탄쯔학파의 야우스와 이져, 이들의 작업들은 문학사회학이 인접학문들을 능동적으로 흡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있다.

한국의 경우는 1920년대의 카프를 중심으로한 계급문학론의 소개와 비평적 활동, 그리고 79년의 김치수의 <문학 사회학을 위하여>와 한국사회과학연구소에 내 놓은 <예술과 사회>가 있었고, 그 질적 양적 빈약함을 숨길 수 없는 처지이다. 물론 이 책의 저작당시와는 달리 60년대 이후의 민중 민족 문학론과 순수 참여논쟁은 문학의 사회적 성격과 사회의 문학적 반영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을 유도했고, 그 결과물로서의 다양한 저작들이 나와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략 20년 전에 쓰여진 이 책은 지금과 비교할때, 많은 부분 증보가 필요하지만 저자의 부재는 못내 아쉬움을 남긴다. 지금은 많은 번역물들과 우리 나름의 문학사회학적 연구수준을 갖추고 있는것처럼 보여지지만 그 내실은 어떠한지 함부로 속단할 처지는 아닌것 같다. 그리고 서앙의 경우는 프레드릭 제임슨, 레이몬드 윌리엄스, 테리 이글턴과 같은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문예비평 그룹과 프랑스의 삐에르 부르디외 같은 이들의 문학 사회학적 작업들도 언급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저서는 '문학의 자율성을 최대한도로 인정하면서, 문학의 사회적 성격을 규명하려는 시도의 잠정적인 결과'임을 당당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문학의 자율성과 문학의 사회적 성격은 여러모로 서로 대치관계에 있고 논쟁적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서로 배반적인 이 관계의 논리적 성찰은 우리의 끊임없는 노력을 요구한다.

문학사회학의 연구가 주로 소설사회학적 연구로 치우쳤다는 것은 그 나름의 반성을 촉구하지만, 소설의 장르적 성격이 얼마나 사회적인가를 역설적으로 입증한다고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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