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창과 비수 입장총서 21
루쉰 지음 / 솔출판사 / 1997년 9월
평점 :
절판


<아Q정전>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루쉰의 앤솔로지를 읽었다. 명성은 널리 들어왔으나 나에게 그는 구체성의 존재가 아니라 풍문 속의 바람에 불과했었다. 이 책은 솔 출판사의 기획물인 '입장총서'의 21번을 차지하고 있다.

루쉰을 처음 접하는 나에게 루쉰을 전문적으로 번역해왔고 연구해온 편역자들의 이 앤솔로지는 루쉰에 접근하는 적절한 길을 제시해 주었다.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 한국의 윤치호, 유길준, 중국의 양계초, 강유위 그리고 노신. 이들의 공통분모는 동아시아 3국의 '근대'의 논리를 엿보는데 있어 중요한 선지자적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루쉰은 국비유학생으로서 삼국중 가장 먼저 서구적 근대화를 이룩한 일본으로 가 근대의 기획을 체험했다. 루쉼에게서 배워야만 하는 것은 바로 이 근대의 기획에 대한 철저한 자각이 아닐까싶다. 그는 근대를 반성적으로 성찰한 선지자적 지식인이라는 점에서 다른 동아시아의 근대의 서각자들과 구별된다. 오늘날 근대의 기획이 가진 해악들이 우리들 삶의 표층으로 드러나 병리적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마당에 루쉰을 읽는 것은 근대 기획의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근대를 반성적으로 사유하는 계기가 될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진보적 지식인으로서의 루쉰의 강인한 의지와 신념을 엿볼 수 있었다. 아직 페어 플레이가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나 프롤레타리아 문예를 주장하는 대목, 그리고 보수적 지식인들의 비판에 대한 신랄한 역비판이 인상적이었다. 예컨데 다음과 같은 말에서는 커다란 울림이 있다.

'그러므로 혁명 문학가는 앞에 있는 적을 주의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 편에서 수없이 변신하고 있는 밀정도 대비해야 합니다.'([상하이 문예를 일별함], 246쪽)

저 문장 속에는 피아의 확실한 구분과 승리를 위한 전략적 사고가 깃들어 있다.
이 외에도 문학에 대한 루쉰의 입장을 대변하는 다음과 같은 말에도 무게가 느껴진다.

'세상을 초월하면 시나 글 역시 당연히 존재하지 않아야 합니다. 시나 글 역시 인간사 입니다. 시가 있다는 것은 세상사에서 감정을 거두지 못한 증거입니다.'([위진 시대의 기풍과 문장 및 약과 술의 관계], 172쪽)

자족적 문학을 비판하고 문학의 혁명적 가능성을 믿는 루쉰에게 삶에 대한 문학의 치열한 정신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말 그런 책이 아니다. 두고 두고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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