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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노자, 그들은 물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ㅣ 동양문화산책 4
사라 알란 지음, 오만종 옮김 / 예문서원 / 1999년 6월
평점 :
사라 알란 지음, 오만종 옮김, <공자와 노자 그들은 물에서 무엇을 보았는가>,1999, 예문서원
은유는 인간사유의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사라 알란은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고대 중국 사상의 바탕에 흐르는 은유는 자연에 대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 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물'에 관한 사유는 뿌리 은유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유가를 노자는 도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유가와 도가는 중국의 전통적인 개념구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그래서 물에는 모든 원리까지 나타난다. 그래서 유가와 도가에서는 물의 원리를 통해서 인간세계의 원리까지 탐구했다. 도가에서 말하는 無爲의 이미지는 물의 이미지와 동일하다. 물은 의도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곳에 생명을 주고, 만인이 싫어하는 낮은 곳까지 거처한다. 여기에서 물은 도와 동등한 개념이며 최고의 善이다. 『說文解字』에서 물은 표준이다라고 설명한다. 표준이라는 것은 도덕적인 표준에까지 이르는 개념이다. 물이 고요할 때 수평을 이루는데, 그것이 목수에게 필요한 水準器의 모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물은 땅으로부터 솟아 나와 끊임없이 흘러나가서 빈곳을 채우고 다시 앞으로 흘러가 바다로 들어간다. 이러한 특성을 공자가 찬미했다. 맹자에서는 이것을 비가 내려서 이룬 도랑물과 비교한다. 도랑물은 금방 말라버리기 때문에, 이러한 성질은 타고난 능력보다 과분한 명성으로 비유된다.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는 데에도 물의 속성이 이용된다. 고자는 인간의 본성은 솟아오르는 샘물과 같다고 했다. 어느 쪽으로 수로를 만드느냐에 따라 그 방향으로 흘러가듯이 인간의 본성도 善과 惡 중에 어느 쪽으로도 치우쳐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맹자는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과 인간의 본성이 같다고 했다. 어느 방향으로 가도록 유도할 수는 있지만, 아래로 흘러가는 본성을 막을 수 없듯이 인간의 본성도 여전히 선하다는 것이다. 물을 부드럽고 약하지만, 가장 단단한 것을 닳게 할 수 있다.
양보하여 다투지 않지만, 결국엔 승리하기 때문에 노자는 최상의 선을 물과 같다고 하였다. 물은 어떤 용기에 담기느냐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 이러한 특성은 사람의 융통성이나 유연성을 뜻한다. 반면에 순자는 통치자를 용기에 비교해서 백성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치자에게 있다고 본다. 물이 고요할 때는 맑으며, 수평이 된다. 때문에 법의 공평성과 정당성과 동일시된다. 또 투명하면서 방대한 양의 물은 성인의 지혜로도 비유되었다. 이렇게 물은 많은 대상들의 뿌리은유로 사용되고 있다.
『孟子』에서는 道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王道를 따르면 물이 바다로 흘러가듯이 백성들이 그에게로 향해간다고 말한다. 道라는 것은 仁이 孝와 悌에 의해 실행되어질 때 생기는 것이다.『論語』에서는 '세계는 오랫동안 도가 없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곧 무질서한 상태를 의미한다. 유가에서는 도가 있을 때 천하는 질서 있게 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道家에서의 도라는 것은 하늘이나 땅, 사람들의 움직임 속에 나타나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이다. 때문에 도를 물과 비교한다. 곧 만물을 위한 수로가 도이다. 그래서 도가 있다 혹은 도가 없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 도는 표현할 수 없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도의 자연적 질서를 한정짓는 것이라고 본다. 儒家에서는 도의 자연적 질서를 강조하였고, 도가는 도의 무정형성을 강조하지만 둘 다 물의 속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물의 속성은 자연의 원리와 인간생활의 원리를 모두 지니고 있다. 물은 고대 중국의 사유체제에서 저변에 깔려있는 너무나도 큰 뿌리은유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이나마 중국의 '물'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그 여러 가지 속성들로 인해 중국의 뿌리은유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