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근대사상의 교착 문화과학 이론신서 35
윤건차 지음, 이지원 옮김 / 문화과학사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재일 교포인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근대을 서양의 근대와 대비적으로 분석하면서 근대의 본질적 특질을 드러내기 위해 '식민지 근대' 또는 '식민지 근대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식민지 근대는 주체와 타자의 경계짓기를 통한 타자의 배제와 억압을 냐포하고 있다. 물론 저자는 미완으로서의 근대가 가진 해방적 기능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지만 근대가 내표하고 있는 억압적인 측면에 더 주목한다. 따라서 근대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대의 완성과 함께 근대의 초극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때 필요한 것이 근대의 거대 담론의 문제를 해체하고 미시적인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탈근대'의 논리이다.

그러나 탈근대, 즉 포스트모더니즘은 계급, 민족, 국가와 같이 엄연히 우리의 구체적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범주들에서 벗어남으로써 오히려 근대 자본주의의 문제를 은폐하는 역기능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의심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탈근대 논의는 기존의 사회과학적 인식과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한 거대 담론의 통찰을 견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예컨데 80년대 우리의 사회학계 뜨겁게 달구었던 '사회구성체 논쟁'과 같은 진본적 논의들을 탈근대의 논의에 어떻게 연동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는 식민지 근대였다는 발상에 근거해 근대 해악의 극복을 위한 방향으로 저자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을 제시한다. 저자는 포스트트콜로니얼리즘의 기본 논리를 가해자 쪽에서는 '반성'이고 피해자 쪽에서는 '저항'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근대가 내포하고 있는 억압과 배제의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탈근대의 기획은 반드시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발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식민지 근대는 피해자의 구제만이 아니라 가해자도 똑같은 근대의 해악에서부터 탈각해야 한다는 발상을 제시한다. 따라서 한국의 근대가 미완으로 남기고 있는 식민지적 잔재의 청산과 남분분단의 극복을 통한 독립국가의 완성과 함께 일본의 근대가 넘어서야 할 요소인 이데올로기이자 정치체제인 천황제를 탈각하는 것이 상보적인 틀 속에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한국의 근대를 2부는 일본의 근대를 3부는 한일 공통의 근대 극복 문제를 그리고 마지막 4부에서는 저자가 위치하고 있는 '재일'이라는 의미를 성찰하고 있다. 특히 4부의 재일의 논리는 한국과 일본의 근대에 걸쳐 있는 재일의 이중적 성격이 한일의 근대적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는 데서 저자의 진정성, 즉 자신이 처한 구체적 현실 속에서의 학문적 분투를 확인할 수 있다.

일본과의 밀접한 관련 속에서 진행된 우리의 근대를 이만큼 적실하게 성찰하고 있는 책은 드물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체험적 모순에서 비롯된 학문적 논의라는 것,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거센 도전에 직면한 거대담론으로서의 진보 논리를 끝까지 견지하고 있는 저자의 태도는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근대에 대한 성찰과 근대의 문제를 극복한 근대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 나의 학문적 사명이라고 할 때 나는 이 책으로부터 좋은 자극을 얻었다. 최근에 나는 동아시아의 근대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한국, 일본, 중국 나아가 동아시아 전반의 근대를 어떻게 볼 것이며 동아시아의 근대가 보편주의의 이름으로 밀려들어온 서구의 근대와 어떤 길항과 교착의 관계를 맺고 있는가가 끝까지 묻고 찾아야 할 물음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