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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
복거일 지음 / 알음(들린아침)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복거일을 다시 보게 한 명저라고 말하고 싶다.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를 읽었을 때 느꼈던 보수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그대로 느낄 수 있지만 그때와는 달리 이 책은 타당한 논거와 분명한 주장으로 독자를 수긍하게 만드는 힘을 보여준다. '21세기의 친일문제'라는 부제에서 보듯 복거일은 친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즉, 지금까지 친일문제는 '민족정기의 정화'라는 관점에서 논의되었지만, 그 '민족 정기'란 무엇인가를 밝히기 모호한 개념이며, 이러한 모호하고 막연한 기준에 의해 친일문제가 거론되는 것은 대단히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복거일은 이런 비합리적인 친일론이 주로 '민중주의'와 '민족주의'라는 역시 모호하고 막연한 개념의 편견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친일문제를 보는 시각에는 '역사적 관점', '법률적 관점', '윤리적 관점'이 있다. '법률적 관점'의 경우 일찌기 반민법의 사례를 통해 소급입법과 단심제라는 법률 운용상의 문제점을 드러낸 바 있고, '윤리적 관점' 역시 우리가 단죄의 대상이라고 하는, 친일분자들과는 전혀 다른 역사적 맥락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들보다 윤리적으로 더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그들에 대한 윤리적 평가 역시 어렵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관점'은 친일의 문제가 오랜 시간의 경과로 인해 역사적 문제가 되었으므로 타당하지만 그러한 기준에 따른 평가는 역사학자들의 합리적인 학문적 논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친일이라는 개념 자체의 모호성을 지적하고 흔히 비교 대상이 되곤 하는 프랑스의 대독 부역자들의 처리문제가 우리의 상황과는 비교 될 수 없다고 한다. 저자는 <기구가설>과 안병직 등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근거로 하여 일제의 식민 통치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특히 북한과 월남의 경우 일제 식민 통치의 기구들을 해소해 버림으로써 오히려 경제적인 고전을 면치못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주장들은 국내외의 연구 성과들과 당시의 자료들을 근거로 하여 논리의 타당성을 뒷받침 받고 있다. 복거일의 주장이 전혀 새로운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주장이 우리 사회에서 긍정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는 힘들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역사의 어떠한 사태에 대해서도 합리성을 추구하는 정신은 포기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복거일의 이 작업은 완고한 민족주의와 민중주의의 비합리성을 제고하게 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