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영국에서 태어난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는 80여편의 추리소설을 집필하고 영국추리협회 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추리소설 전문작가다. 하지만 이 소설은 중년여성의 고독과 허망, 가족구성원들과의 관계와 자신에 대한 성찰을 그렸다.

주인공 조앤은 영국런던의 인근도시에 살고 있다. 남편은 잘 나가는 변호사이고 삼남매는 올바른 양육으로 큰아들은 농장을 운영하고 있고 딸들도 부유한 주식중개인과 번듯한 공기업에 다니는 남편과 잘 살고 있다. 자신도 정원을 가꾸고 지역병원의 이사이며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는 활기차고 우아한 삶을 살아간다고 자부한다. 부유하고 자상한 남편과 잘 자란 자녀들은 그녀의 자랑이다. 그녀는 전형적인 40대 후반 중산층의 남부러울 것 없는 여성이다.

어느 날 조앤은 바그다드에 사는 막내딸의 중병소식에 병문안을 갔다가 영국으로 귀가한다. 도중에 기상악화로 인해 기차운행이 수일간 중지되어 사막 한가운데 있는 기차역숙소에서 며칠 동안 발이 묶이게 된다. 준비했던 책을 다 읽고 지인도 없으며 마땅히 소일거리도 없던터라 휴식하는 기회로 삼으려하지만, 마침 만난 동창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조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귀여운 바버라 레이가 네 딸이었구나. 다들 그 아이가 불행한 가정에서 도망치기 위해 맨 처음 청혼한 남자와 결혼했다고 알고 있거든.”p,17

넌 늘 지독하게 냉정했지. 네 남편이 연애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더라는 말을 해줬어야 하는데!” p,18

조앤은 과거를 회상하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남편 로드니는 지독히도 변호사 일을 싫어했다. 농부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었다. 그러나 조앤은 남편이 하고 싶어 하는 농장 일을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단호하게 물리쳤다. 아이들의 진로와 결혼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관철시켰다. ? 가정의 안정과 자녀들의 안락하고 부유한 미래를 위한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녀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자식들이 하나같이 달려들어 버릇없이 굴다니. ‘난 내 자식들이 이렇게 무례한 줄 몰랐다조앤이 흐느끼며 말했다” p,100

 

남편 로드니는 왜 기차가 역을 떠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을까? 남편은 지친 듯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다가 갑자가 고개를 들고 기운차고 경쾌하게 플랫홈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조앤이 돌아오자 휴가는 끝났다고 했다. 아이들은 아빠만 따르고 의지했다. 왜일까? 조앤은 깊은 생각에 빠진다. 사막한가운데 숙소에서 회상하던 조앤은 드디어 깨달았다. 자신의 삶은 허깨비였다고! 멍청이요 헛똑똑이였고 언제나 누구보다도 우월하다고 자부하며 우쭐했었다. 겸손치 못했다. 남편한테는 더욱 미안했다. 그토록 좋아하고 하고 싶어 했던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 아이들한테도 자신의 의견이 최선인양 자기 기준의 상자 안에 밀어 넣었다. 아이들의 의견은 무시되었다. 그것은 자녀를 위해 어른인 부모가 해야 되는 의무요 책무였다고 자부해왔다. 아이들의 성공과 미래를 위해 당연히 지불해야 할 댓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돌아가면 남편에게 용서를 구하고 새롭게 변하리라고 생각했던 조앤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예전의 그로 되돌아간다. 왜 깨닫고도 바꾸지 않았을까, 변할 수 없는 건가? 아니면 현재의 안정적인 삶을 해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아직도 농장에서 농부의 아내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닌지?

작가는 왜 사막한가운데에서 느낀 성찰의 결과를 도로 아미타불로 만들어 놓았을까? 아마도 조앤은 예전처럼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익숙함이 더 편리했을지도 모른다. 좀 더 큰 행복보다는 익숙함과 편안함에 안주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바뀌지 못하는 조앤은 그녀의 한계다. 그렇다면 남편 로드니의 책임은 없을까? 남편은 왜 아내의 반대에 저항하지 못했을까? 자녀를 모두 출가시킨 지금쯤은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삶을 아내한테 설득시키고 과감히 실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삶에 대한 모험과 도전을 감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비굴하게 아내의 핑계를 대는 것은 아닌지? 모험에 대한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도 아내의 길들임에 익숙해졌다. 그렇다. 용기 부족한 로드니는 그의 정신적연인 레슬리의 용기 충만함을 인정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용기를 지닌 여인이라고! 레슬리 부인은 아내 조앤과는 정반대의 세속적인 불행한 삶을 살아왔다. 부침 심한 전과자에 주정뱅이 남편, 가난, 병과 죽음. 그러나 로드니는 레슬리의 인생이 서글프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환멸과 가난과 병을 헤치고 나아갔으며 활기차고 유능하고 분주하게 살았다. 자기 삶을 살다간 레슬리와 부유하고 안정적이지만 타인이 조종한 삶, 그리고 허깨비인 조앤의 삶 누구의 삶이 가치 있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조앤은 사실 2천년 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중산층 중년부인들의 전형이다. 어쩌면 이리도 똑같을까? 외관상 조앤이 큰 잘못을 한 것은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한 가정의 안정된 삶과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 아내와 어머니로써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 이라고 자위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그러나 상대에 대한 배려심은 부족하다. 남편과 자녀들과의 충분한 대화와 설득 혹은 조율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빠진 것은 아쉽다. 그리고 부와 안정만이 행복의 가치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기에 조앤은 외톨이다. 자기 기만의 삶을 사는 그녀는 결코 충만한 행복감은 느낄 수 없다.

이 소설은 자신과 가정의 행복에 대하여 그리고 인생의 참된 가치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중 후반기에 들어선 중년부부들이 성찰하고 고민한다면 남은 후반기의 삶이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허위와 가식을 떨쳐 버리고 있는 그대로 나의 삶을 살자. 인생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다. 누구에게 보여주는 삶은 가짜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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