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 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2
단요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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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요 작가의 케이크 손. 가제본 서평단으로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제목을 듣고 상상한 건 케이크로 만들어진 손이었는데 읽고 나니 케이크를 만들어내는 손이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신의 손이 닿는 생명체를 케이크로 만들어버리는, 공무원이었지만 이제는 아무 것도 제대로 먹기 힘들고 정상적인 삶이 어려워진 아저씨. 집에서는 방치되고 학교에서는 여왕의 장난감처럼 살아가는 주인공 현수영. 그리고 주인공의 여왕이자 그 여왕 주변에서 괴롭힘당하거나 이용당하는 다른 아이들의 관계가 처절하게 얽힙니다.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누군가의 가해자이고 또 피해자인 이야기는 너무나 생생해서, 길지 않은 이야기지만 단숨에 읽을 수 없었습니다. 작가님의 다른 작품 중에는 마지막까지 손을 뗄 수 없는 이야기도, 장르적인 설정이 압도적이어서 감탄하게 되는 이야기도, 주인공의 성공을 기원하게 되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생각할수록 같은 작가님의 이야기라는 게 놀랍습니다.
케이크 손을 갖고 있는 건 아저씨지만 누구나 케이크 손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주인공의 말이 무척 가슴에 남습니다. 우리는 모두 약점을, 누군가를 해칠 무기를 갖고 있지요. 그걸 어떻게 쓰느냐가 사람의 삶을 여러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거고요.
마지막을 보고 나니 가슴이 막막해지네요. 작가님의 작품 중에 가장 장르적인 면이 적지만, 또 그만큼 무척 현실적으로 생생한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다음 작품이 나오길 기대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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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마법사
해도연 지음 / 구픽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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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 어떤 이야기인지 상상하게 되는 게 있지요. 하드SF의 대명사같은 작가님이 쓰신 판타지라니, 마법사라니, 의아하면서 기대가 됐습니다. 그리고 다 읽고 나서 이 글이 너무나, 충분히, 해도연작가님 답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재난으로 주변의 소중한 사람을 잃은, 벗어날 수 없는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이 다시 거대한 재난에 휘말리고 마지막의 결말로 나가는 배경은 용과 마법이 등장하는 세계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입니다. 강대국의 입김이 작용하고, 직장의 갑질, 대중의 사적 징벌, 사이비 종교, 지역 혐오가 난무하는 세계죠. 그 안의 주인공 세나가 수상한 제안을 수용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져요.
초반의 위화감이 복선이었다는 걸 깨닫는 전율이 있고, 소름돋는 악역이 있고, 반전이 있고, 작가님의 탄탄한 설정을 토대로 속도감있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일단락되면 마지막의 떡밥(복선)이 풀려요. 치밀하고 짜릿합니다. 이런 게 판타지의 재미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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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과 나 - 배명훈 연작소설집
배명훈 지음 / 래빗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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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서평단으로 맛보기 소설을 먼저 읽었습니다만, 전작을 읽고 나니 이 작품들이 화성이주에 관한 외교부 연구의 결과물이라는 게 실감이 났습니다.
화성에 처음 인류가 거주와 정착을 시도하는 단계, 정착하는 단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은 확실히 지구가 아니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를 포함하고 그래서 그 해결방법도 다를 수 밖에 없겠지요. 책을 읽는 내내 그래서 지구가 아닌 세계를, 국가가 없는 세계를 상상하게 되고 지구를 생생하게 느끼게 됩니다.
“붉은 행성의 방식”에서 독자는 순식간에 화성 위로 이동해서 말랑말랑한 “김조안과 함께라면”을 읽고 빙그레 웃음도 머금어보고, “위대한 밥도둑”을 읽고 갑자기 맹렬하게 간장게장을 먹고싶어지기도 하고, “나의 사랑 레드벨트“ 를 읽고 먹먹한 기분에 한참 말문이 막히게 돼요. 긴 화성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기분이라기보다 오히려 내 발 밑에 지구가 있음을 깨닫게 되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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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스 크로싱
존 윌리엄스 지음, 정세윤 옮김 / 구픽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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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면서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서 진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가지는 경험은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30년 전에는 걸어서 오지를 여행하면서 진정한 나를 발견했다는 여행작가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20대의 청년들이 인도로 향했고, 취업용 자기소개서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의 경험을 쓰는 것이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청년들만의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 구석구석 산마다 ‘자연인’들은 얼마나 많은지. 도시 생활에 지치고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자연만이 자신을 받아 주었다는 간증은 TV에서 넘쳐나고 있다. 언젠가 귀촌해서 느긋한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요즘은 30대에 빨리 갓생으로 돈을 모은 뒤에 퇴직하는 것을 꿈으로 삼았다는 사람들도 보인다.


우리는 그렇게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꿈꾼다. 현실의 삶이 너무나 힘들 때, 여길 떠나 어딘가에서는 자신을 위한 공간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하버드대학을 다니는 동안 ‘듣기만’ 하는 삶에 지쳐서 윌 앤드루스는 아버지의 지인을 실마리로 붙들고 부처스 크로싱으로 온다. 거기엔 도시의 수동적인 삶이 아닌, 누구나 부러워할 성공과 모험이 있다. 권총을 장난감 취급을 할 정도의 거친 사냥이 끝나면 물소 가죽을 재빨리 벗겨낸다. 최상급 물소 가죽을 사 줄 중개인도 있다. 앤드루스는 서부의 삶을 들으려고 밀러와 만났지만 곧바로 물소 사냥에 매료된다.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눈을 빛내는 밀러와는 달리 앤드루스가 사냥을 결심하는 이유는 돈이 아니다. 그는 자연만이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 자신을 던지는 일이고, 듣기만 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행동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여성을 그대로 남겨둔 채 낯선 길로 떠난다.

동경했던 ‘멀고 먼 어딘가’는 현실이 되는 순간 매섭게 우리를 공격해 온다. 차라리 물소 떼를 찾아 헤매는 동안이 나았을까. 자연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음을 알고 돌아가자고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 그러나 돌아갈 리 없다. 물소 떼가 어딘가 있을 거라는 밀러의 확신을 윌리엄스가 믿는 한, 전 재산의 절반을 사냥에 투자한 윌리엄스의 믿음이 이 사냥을 지탱한다. 마침내 물소 떼를 찾아냈으니 해피엔딩이 될까? 문득 생각한다. 윌리엄스가 원한 것은 물소 떼인가? 아니, 이 사냥은 밀러의 것이다. 그는 물소 떼를 발견하는 것보다도, 이 사냥 후에 자신이 변화할 것에 더 큰 희망을 걸고 있다. 그는 사냥을 막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윌리엄스가 물소 가죽을 벗기는 일에 익숙해지는 사이, 찰리의 광신이 심해지고 밀러는 살육에 미쳐간다. 이 무리에서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는 것은 슈나이더 뿐이고,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고 조심스러운 것도 슈나이더 뿐이다. 그 어딘가를 찾아 떠나온 윌리엄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서히 자신이 처음 이 사냥을 떠나온 이유를 잊어가기 시작한다. 이미 사냥이 또 다른 현실이 되고 동경했던 자연은 현실로 주인공을 압박한다. 환상을 덧칠해서 보던 이상향으로서의 자연은 가장 혹독한 방법으로 모두에게 공평한 시련을 던진다.

서부란, 사나이들이 자신만을 믿으며 삶을 개척해가는 곳이다. 거기엔 가식이 없고, 개척해야 할 자연과 가장 날것의 인간이 있을 뿐이다. 얼마나 낭만적인가. 내가 스스로 삶을 만들어나가는 곳이란. 그것이 주인공 윌리엄스의 생각이었을지 모른다.

현실에 발을 디딘 채로, 꿈을 꾸는 사람들을 제지했던 슈나이더가 맞이하는 결말.
시간이, 자연이 냉정하게 현실을 눈앞에 펼쳤을 때, 자신을 잃어버린 윌리엄스가 맞게 될 미래는 정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는 유일하게 밀러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인물이지만, 그는 현실 대신 꿈을 택했다. 꿈에 미치고, 신앙에 미치고, 살육에 미친 세 사람은 여행 전처럼 삐걱대는 일조차 없다.

안티 서부극이라는 이 소설을 덮고 나면 거대한 자연과, 소통하지 않는 고집쟁이 인간의 광기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 서술이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것이 역설적이다. 환상이 깨진 인간의 허망한 뒷모습조차도.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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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를 품었을 때 태몽으로 호랑이 꿈을 꾸었고, 산부인과에서 나를 낳았을 때 분명히 음경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나의 유년 시절 내내 읊었다. 아, 내가 딸인 걸 알고는 아빠가 산부인과에 어떤 선물도 사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는서른 번 넘게 들었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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