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의 맛 창비청소년문학 80
누카가 미오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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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장래희망은 주기적으로 바뀐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을 들을 때는 화가가 되고 싶다 하고, 과학 실험 몇 번에 흥미가 생기면 과학자, 얼마 전 멋진 건축물을 본 이후는 건축가가 되고 싶단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어떠한 꿈도 꿀 수 있겠지만 더 나이가 들면 한 번 선택한 이후 다른 길을 가기란 쉬워 보이질 않는다.

<달리기의 맛>에는 마라톤을 선택하고 그 길을 달려가는 ‘소마’와 ‘하루마’란 고등학생 형제가 등장한다. 둘은 라이벌로 경쟁하기도 하고 서툴게 형제애를 표현하기도 한다. 어떤 마라톤 대회에서 동생 하루마를 위해 오버페이스를 감행한 형 소마는 다리 부상으로 더 이상 뛰지 못하게 된다. 재활에 대한 의지가 희미해지고 마라톤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우연히 요리부원 미야코를 만나게 되고 마라톤에서 요리로 관심사가 바뀐다. 이런 형을 바라보는 동생 하루마는 안타깝고 형의 속내를 알 수 없어 속상할 뿐이다.

소마에게 요리를 가르쳐주는 미야코는 어릴 적 받은 상처 때문에 요리를 하게 됐다. 이런 미야코를 어릴 적부터 지켜봤던 육상부원 스케가와는 친구 소마와 미야코가 사귀는 건 아닌가 해서 마음이 몹시 불편하다. 소마, 미야코, 스케가와 이 셋이 어떤 관계일는지는 책의 뒷부분에 살짝쿵 반전과 같은 재미로 정리될 수 있다.

아스파라거스·토란·돼지고기 볶음으로 시작한 소마의 요리는 앙징맞은 도시락을 거쳐 영양과 정성 듬뿍 담긴 근사한 요리로 진화한다. 동생과 아버지에게 위로와 힘을 실어주는 요리는 자신에게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것이 마라톤을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어서 선택한 결정이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 길이 진정 내 길이야 하고 생각하고 꾸준히 달려간다. 자기 페이스대로 오르막과 내리막을 요령껏 내달려 보지만 숨이 턱턱 막힌다. 맨 앞에서 달릴 때면 뒤에서 좇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신경이 쓰이고, 선두를 차지하지 못할 때는 자신보다 앞서 달리는 사람을 따라잡지 못해 안달이 난다. 이런 것이 마라톤이고 인생이다.

결국 소마는 포기했던 마라톤을 대학에 가서 다시 시작한다. 원 없이 내달린 4년 동안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읊조린다. “난 꽤 만족하고 있어. 배신하지 않아도 되니까. 여러 사람들이라든가, 육상 그 자체라든가, 나 스스로.”(318쪽) 그리고 동생을 위해서 친구를 위해서 이렇게 응원한다. “제대로 달려! 어디까지고 달려가라. 멀리멀리, 나는 물론이고 다른 녀석들이 도저히 닿을 수 없을 만한 높은 곳까지 달려가 줘.”(324쪽)

마라톤과 음식. 그 사이를 오가며 내달리기도 하고 쉼을 얻기도 하는 이야기들 속에서 무언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결단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 막연히 방황하고 있을 사춘기 딸 아이에게도 지금 어떤 선택 앞에서 갈등하는 내게도 이 책이 달림과 쉼이란 큰 선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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