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쟁 1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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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상은 사소한 듯 보이나 기록으로 남길 때 의미를 가진다. 기록된 일상은 이야기가 되고 역사가 된다. 누구나 일상을 살아가지만 모두 기록하지는 않는다. 그저 흘려보내고 내어 맡긴 채 젖어들며 살아간다.

<나의 투쟁>은 소소한 일상조차 투쟁으로 승화시킨다. 여덟 살 칼 오베는 텔레비전에서 고기잡이배가 가라앉은 사고 현장을 보고 있었다. 화면을 보다가 얼굴 하나가 수면 위로 불쑥 솟아오르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 경험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15쪽).
이로부터 30년이 지나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아이 셋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고충은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없다. 아이 앞에서 화를 조절하지 못해 버럭하다가 후회하고, 집안 일과 부부의 일상은 디테일하게 우리와 닮아 있다.

사춘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 형, 그리고 친척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는 이야기도 기록한다. 순진함과 찌질함을 오가며 일탈의 짜릿함도 맛보며 칼 오베는 성장한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작가로서 일상을 보여준다. “나는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욕구를 가끔 느끼는데, 어떤 때는 그 욕구가 너무 커서 통제가 불가능할 때가 있다. 나는 이 욕구와 동경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글을 쓴다. 글을 씀으로써 세상 밖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글을 씀으로써 나는 좌절한다”(338쪽). 칼 오베는 집에서 작업실까지 20여분을 걸어가는 장면을 수십 장 분량의 이야기로 쓸 수 있는 작가다. 일상에 사유와 의미를 부여하는데 탁월하다. 그것은 일상을 단지 흘려보내지 않고 눈앞에 고정시켜 세밀하게 관찰하기 때문에 가능한 거 같다. 그 앞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은 더 이상 사소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심지어 나무 한 그루조차도 의미를 부여할 때 이야기가 된다.

<나의 투쟁>1권 책은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가 반 이상을 차지한다. 언젠가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했던 칼 오베였기에 아버지의 죽음이 책의 많은 분량을 채웠던 듯하다. 아버지의 장례를 준비하며 알콜 중독자 아버지와 치매 할머니가 살았던 집을 청소한다. 악취의 근원을 찾아 집을 치우면서 아버지의 죽음으로 흐느끼다가 또 끼니를 때우는 일상이 이어진다. 한 사람이 죽음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만나게 되고, 죽음을 마무리하는 과정 또한 삶의 연장 속에 이루어진다.

결국 삶과 죽음은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의 집합 속에 자리한다. 칼 오베의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휴...사는 건 뚜쟁이야. 언젠가 그 여자가 그랬어. 사는 건 뚜쟁이라고. ㅌ발음을 못 했거든.” 칼바람이 세찬 이 겨울에, 이곳보다 더 시리도록 차가울 것 같은 북유럽 노르웨이를 상상해 본다. 고드름처럼 단단하고 투명하게 살아갈 것 같은 그곳의 사람들은 이 책 <나의 투쟁>을 많이도 읽었다고 한다. 그들에게 일상이 투쟁이라면 우리의 일상 또한 단지 소소한 것만으로 채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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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못 2017-12-14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는건 뚜쟁이~ ㅎ 재밌게 읽고 갑니다